2015년 요한복음 제 4 강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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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 4 강
말씀 | 요한복음 3:1-21
요절 | 요한복음 3:3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지성인 니고데모가 나눈 대화인데 주제는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사회적으로는 관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어두운 영혼을 안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다 갗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에는 빛이 없었고 삶의 기쁨과 행복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아무리 인간조건이 좋아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그 나라의 빛과 생명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에 니고데모는 기이히 여겼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거듭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율법적인 종교 생활로 사람은 거듭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둘째 증거의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아도 한 말씀이라도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바리새인이 될 뿐입니다. 셋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실과 세상만 바라보면 어둠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신기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존 뉴톤은 아주 어린 시절 영국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는데, 여섯 살 때 고아가 되어 기독교 가정이 아닌 친척집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기독교가 놀림을 받고 그는 핍박을 받게 되어, 이런 가정 환경에서 탈피하기 위해 그는 바다로 도망쳐 영국 해군의 견습 선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떠나 아프리카로 달아났고,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인 노예 상인과 협력하였으나 그의 집에서 매우 잔인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젊은 뉴톤은 이 같은 대접을 피해 해안으로 달아나 구조를 요청하는 불을 피웠고 마침 영국으로 돌아가던 노예선에 발견되어 그 배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조차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럼주를 보관해둔 창고에 몰래 들어가, 그것을 선원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 취하게 되었습니다. 인사불성이 된 그는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선원 중의 한 사람이 작살로 그를 찔러 건짐으로써 겨우 익사 상태에서 구조되었습니다. 이 일로 그의 넓적다리에는 주먹 크기의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뉴톤이 타고 있던 배가 스코틀랜드 근처에서 항해가 거의 끝날 무렵 큰 폭풍을 만나 배는 항로를 벗어나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배가 가라앉아 물에 빠져죽고 말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때 그는 어린 아이였을 때 배웠던 말씀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말씀들을 떠올렸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존 뉴톤이 다음의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구원은 그것을 받을 만한 공로가 없는 이에게 그러므로 바로 당신과 나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이며 믿고 영접하는 자와 영접하지 않은 자는 각각 어떻게 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였씁니다. 이런 세상은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불신하는 자는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믿지 않는 것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둠의 삶에서 돌아셔서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어두움의 삶에서 돌아서십시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니고데모처럼 율법적 열심, 종교적 경건, 사회적 성공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들리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남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를 통한 거듭남의 길을 여신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자기 열심과 업적과 노력으로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감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 | 요한복음 3:1-21
요절 | 요한복음 3:3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지성인 니고데모가 나눈 대화인데 주제는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사회적으로는 관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어두운 영혼을 안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다 갗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에는 빛이 없었고 삶의 기쁨과 행복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아무리 인간조건이 좋아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그 나라의 빛과 생명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에 니고데모는 기이히 여겼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거듭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율법적인 종교 생활로 사람은 거듭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둘째 증거의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아도 한 말씀이라도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바리새인이 될 뿐입니다. 셋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실과 세상만 바라보면 어둠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신기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존 뉴톤은 아주 어린 시절 영국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는데, 여섯 살 때 고아가 되어 기독교 가정이 아닌 친척집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기독교가 놀림을 받고 그는 핍박을 받게 되어, 이런 가정 환경에서 탈피하기 위해 그는 바다로 도망쳐 영국 해군의 견습 선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떠나 아프리카로 달아났고,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인 노예 상인과 협력하였으나 그의 집에서 매우 잔인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젊은 뉴톤은 이 같은 대접을 피해 해안으로 달아나 구조를 요청하는 불을 피웠고 마침 영국으로 돌아가던 노예선에 발견되어 그 배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조차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럼주를 보관해둔 창고에 몰래 들어가, 그것을 선원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 취하게 되었습니다. 인사불성이 된 그는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선원 중의 한 사람이 작살로 그를 찔러 건짐으로써 겨우 익사 상태에서 구조되었습니다. 이 일로 그의 넓적다리에는 주먹 크기의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뉴톤이 타고 있던 배가 스코틀랜드 근처에서 항해가 거의 끝날 무렵 큰 폭풍을 만나 배는 항로를 벗어나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배가 가라앉아 물에 빠져죽고 말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때 그는 어린 아이였을 때 배웠던 말씀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말씀들을 떠올렸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존 뉴톤이 다음의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구원은 그것을 받을 만한 공로가 없는 이에게 그러므로 바로 당신과 나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이며 믿고 영접하는 자와 영접하지 않은 자는 각각 어떻게 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였씁니다. 이런 세상은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불신하는 자는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믿지 않는 것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둠의 삶에서 돌아셔서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어두움의 삶에서 돌아서십시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니고데모처럼 율법적 열심, 종교적 경건, 사회적 성공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들리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남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를 통한 거듭남의 길을 여신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자기 열심과 업적과 노력으로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감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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