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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강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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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16-01-03 09:12

본문

2015년 히브리서 제 6 강
말씀 | 히브리서 7:1-28
요절 | 히브리서 7:24,25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심을 말씀합니다. 그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대제사장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1-15).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는 왕들을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10분의 1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첫째로 '의의 왕'이고 다음으로 '살렘 왕', 곧 '평화의 왕'입니다. 멜기세덱은 바로 만왕의 왕이요(계 19:16),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습니다.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히 6:20).
 
4절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족장 아브라함도 그에게 10분의 1을 바쳤습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써 직분을 감당하였고, 아브라함은 그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영접하고 그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이었습니다. 레위 자손 가운데 제사장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지만 율법을 따라 자기 백성에게서 10분의 1을 거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로부터 나오지 않은 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10분의 1을 취했고 약속을 받은 그를 축복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축복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크고 우월한 존재임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것은 레위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위대하고 우월합니다.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움 받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만일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열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아론 계열의 제사직분으로는 온전한 죄사함을 얻을 수 없었고 최소한의 죄의식만 떨칠 수 있었습니다. 심령 깊은 곳이 새로워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는 하되 여전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처럼 레위 계통의 제사로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에 제사직분이 바뀌어졌고 율법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인 계명으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모든 제도는 장차 올 참된 것을 위하여 임시로 마련한 것이기에 참된 것이 오면 마땅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레위지파의 사람들만이 제사장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레위지파 출신이 아니라 유다지파이십니다.  그 지파에 관해서는 모세가 제사장직과 관련해 아무것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은 멜기세덱과 같은 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볼 때 더욱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누구를 붙들어야 합니까? 가장 높으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작년 3월 31일 미국 아틀란타에서 윌리 마이릭(Willi Myrick)이라는 10살 먹은 소년이 유괴범에게 납치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나이인데 보통 아이들 같으면 겁이 나서 찍소리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윌리는 납치되어 끌려다니는 3시간동안 차안에서 계속하여 복음성가를 불렀습니다.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세(Every praise is to our God).”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아무리 납치범이 욕을 하고 협박을 해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윌리가 3시간 동안 찬송을 부르자 납치범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그는 윌리를 풀어주고 도망갔습니다. 윌리는 나이는 어린데 성숙한 믿음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 소년이 귀한 것은 누가 높은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흉기를 들고 있는 납치범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윌리는 예수님이 더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했습니다. 그때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서 납치범의 마음도 녹아내리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소년의 믿음은 아주 실제적인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상관에게 잘 보이고자 하고 돈과 권력의 줄을 붙들고자 합니다. 그것이 복의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예수님을 통해서 옵니다. “그가 얼마나 높은가 생각해 보라.” 우리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을 굳게 붙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16-25). 16,17절을 보십시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라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오 생명의 부여자이십니다.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리셨고, 야이로의 딸과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제사장이 율법에 의해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이처럼 귀한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여 폐지됐습니다. (이는 율법이 아무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약하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장 직분이 인간의 죄를 완전히 속량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익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단번에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레위 계열의 제사장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생명은 불멸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19절의 ‘더 좋은 소망’은 예수님이 모든 성도들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저를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세습적으로 제사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된 것은 맹세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해 주는 분이 되셨습니다. 구약의 언약은 율법에 기초한 언약이지만 예수님의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인친 언약이기 때문에 그 보혈을 의지하면 누구나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론부터 AD 70년까지 제사장이 83명이 갈렸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늙고 병들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리 않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힘입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보혈의 피로써 믿는 자들의 죄를 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힘입어 나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해 주십니다. 현재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구원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예수님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에 눈 돌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의지하면 모든 것이 다 완성됩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62번을 보면 인간의 어떤 선행도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않으며 죄로 오염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 62문,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없습니까? 답,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원튼 원치 않튼 죄를 짓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한계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하소연할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계적인 상황 앞에서 울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그때 주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이 나의 편이 되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셋째, 단번에 자기를 드려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26-28).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 되기에 합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제사장이 되시는 이유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악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악이 없다는 말은 ‘교활하지 않고’, ‘순수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더러움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더러움이 없다는 말은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이라는 뜻으로 제의적 순결성을 나타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정결 예식을 통해서 자신을 깨끗이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순결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정결 예식이 필요 없습니다.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도덕적으로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죄인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으신 분으로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분이란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해 제사 드리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해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같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으로 단 번에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27).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5:3; 레 4:3-12; 16:6-10).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4:15). 그가 드린 단 한 번의 제사는 자신의 몸을 인류의 구속을 위해 드린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는 단번에 자기를 드려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습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그 제사도 불완전했습니다. 제사 제도 본래의 역할을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온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제사 제도를 두신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9:45,46).”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로 멀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의 백성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은혜를 공급받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과 고귀한 모습이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제사 제도의 근본 목적은 죄로부터 구원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사람이 회개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모양의 죄를 짓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그러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께 나아가 간구할 때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높으신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을 굳게 믿고 신뢰하며 모든 문제들을 그에게 아뢰며 주 예수님을 구하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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