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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1-2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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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마가
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15-12-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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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 히브리서 6:1,2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첫째, 영적 어린 아이와 성숙한 사람 (5:11-14). 11절을 보십시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저자는 6절과 10절에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임을 언급한 후 멜기세덱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영적인 깨달음이 둔하고 너무 어려서 이를 설명하기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들에게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논한 후에 7장부터 멜기세덱 대제사장론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점에서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습니까?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게을렀습니다.
11절에서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에서 둔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노드로스' 인데
이것은 '게으른'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6:12절에 나오는 '게으르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말씀을 듣는 데 게으른 것은 타성에 빠져서
말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깨닫고
이를 내 것으로 삶고자 노력하는 영적 의욕이 없는 상태로서 영적인 게으름뱅이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말씀으로 자기 만족에 빠져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별다른 것이 있을까" 하는 식으로 듣습니다.
말씀에 대한 영적 소원이 없기 때문에 영적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늘 새롭고 신선한 감동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지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고 험한 세상을 살 힘을 공급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은 날로 날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스피릿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에 게으른 자들은 신앙생활이 타성에 빠져서 점점 스피릿을 상실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둘째로, 그들은 가르침에 있어서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 '때가 오래므로'라는 말씀은 그들이 말씀 교육을 받은지 상당 기간이 흘렀음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 말씀을 들은 기독교 제 3세대에 해당되는 사람들로서 오랫동안 말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성경선생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성경선생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쌓기에 힘써야
하고, 형식주의와 매너리즘에 빠져서 영적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영적 성장을 위해서 부단한 자기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산모가 갓난 아기에게 젖을 풍성하게 먹이기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섭취하듯이, 성경선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젖을 풍성히 먹이기 위해서 많은 것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경륜으로 보면 마땅히 성경선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어서 오히려 가르침을 받아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3:18)고 권면했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영적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영적 체험 면에서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게 하는 복음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적으로는 알 수 없고 체험으로만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이론적인 믿음은 힘이 없지만 말씀에 기초한 체험적인 믿음은 내적인 힘이 있습니다.
무디 선생의 성경 가장자리에는 T. P. 즉 Tested and Proved (해 봤더니 그대로 되더라)는 표시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기만 하면 놀라운 영적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으며
그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14절은 그 비결을 말해 줍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연약하여 잘 넘어지고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또 분별력이 없어서 실수를 많이 합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와 축복에 관한 말씀은 잘 받아들이지만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헌신, 희생, 주권신앙 등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은 다 뱉아 버립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숙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입니다.
지각은 지적인 감각이 아니라 심령의 감각으로서 도덕적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또 연단을 받는다는 것은 헬라어로 '김나조'로서 "벌거벗고 운동하다"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4:7,8절에 보면 보면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연습하는 것이 바로 '김나조'입니다.
우리 인간은 육(body)과 혼(soul, 정신)과 영(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
리의 육체는 운동을 통해서 연단할 때 튼튼해지고 강건해집니다.

또 정신세계도 책을 많이 읽거나 학문적인 연마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고 또 수련을 통해서 건전하고 강인한 정신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세계도 영적인 연습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성개발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영성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에 힘쓰고, 신앙생활에 기름 역할을 하는 신앙서적을 읽기에 힘쓰고,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적인 단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 훈련한 후에 당장에 성과를 보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금메달을 얻기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된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이 요구되듯이, 썩지 아니할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의 초보에 머물지 말고 영적 성장에 힘쓸 것 (6:1-3).
저자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으로 어린 상태를 지적한 후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물지 말고 영적 성장에 힘쓸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는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입니다.

죽은 행실이란 죽음 혹은 정죄를 유발시키는 행실들을 가리킵니다.〈12사도의 교훈집〉에 보면 사망의 길에 이르는 죄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인, 간통, 색욕, 간음, 도적질, 우상숭배, 마술, 마법, 강탈, 위증, 외식, 표리부동, 사기, 교만, 악의, 거만, 자랑" 이런 죄악들은 죽음을 낳는 죄악들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진실된 회개 후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입니다.
세례들은 당시 유대인의 결례와 요한의 회개의 세례, 그리스도의 세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성령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 성령의 내적 세례를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안수는 세례시, 환자 치료시, 직무 위임시, 성령 강림시에 안수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세상 종말에 있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요5:28,29). 영원한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것으로서 둘째 사망을 의미합니다(계21:8).

이상을 살펴볼 때 그리스도 도의 초보인데도 상당한 수준처럼 보입니다. 이는 기초를 견고하게 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관한 교훈의 터를 견고하게 닦아야 합니다. 그 후에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영적으로 성장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영적으로 어려서 자기 중심적인 요소, 인본주의적인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또한 인간적인데서 벗어나 영적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불순종과 반발심의 사람이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매사에 불평하는 불평의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는 감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으로 성장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영적 성장이 막힌 자는 자신도 답답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괴롭히게 됩니다. 특히 가까이에 있는 동역자를 가장 많이 괴롭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자신도 기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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