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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감사절 특강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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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15-11-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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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감사절 특강
말씀 | 누가복음 17:11-19
요절 | 누가복음 17:17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10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하십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까?  그런데, 치료 받은 10명 중 단 1명만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이 사마리아인을 더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때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간구했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에 걸리면 피부가 비늘이 덮인 것 같이 됩니다. 나병은 라틴어로 ‘비늘’(Lepra)에서 나온 영어 ‘Leprosy’라고 불립니다. 1873년 노르웨이의 의학자 ‘Gerhard Armauer Hansen’이 병원균을 발견하여 오늘날 ‘한센’병이라고 불립니다. 이 병은 피부접촉으로 전염이 되고, 예수님 당시에는 불치의 병이므로 나환자들은 철저히 격리되어 마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성전 출입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 나병환자의 고통이 어떠했을까요? 나병에 걸린 이후 그들은 절망과 눈물, 어두움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운명주의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 마을에 들어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망 중에 희망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귀신을 내쫓고 여러 모양의 병자들, 나병 환자들을 고치셨다는 소문이 그들 사이에 쫙 퍼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께 탄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통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함께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나병이라는 고통 앞에 민족주의나 지역감정은 없었습니다. 동변상련은 민족적 감정까지 초월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예수님께 오직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내세울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100% 예수님의 긍휼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예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여 구하는 그들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눅18장을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눅18:10-13을 같이 읽어봅시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바리새인은 탁월한 삶을 살았고 그 삶을 자랑하며 그 행위를 의지하여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반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세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눅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의로운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지하는 의로운 행위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의 의는 우리가 결코 의지할 수 없는 더러운 옷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다만 예수님의 긍휼입니다. 100% 주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으며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세리와 같이, 10명의 문둥병자와 같이 오직 예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나병 환자가 제사장들에게 자기 몸을 보일 때는 두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병인지 아닌지 확진을 받기 위해서, 둘째는 병이 나았음을 확인하고 사회에 복귀하기 위하여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들의 몸에서 여전히 고름과 짓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치유 판정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며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명하셨들 때,  물은 여전히 그냥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인이 순종했을 때, 가는 길에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록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앞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더 확실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신뢰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 멸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까? 그들에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주시겠다고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려운 광야의 현실 속에서 약속을 불신하였습니다. 히3: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보이는 어려운 현실을 더욱 믿었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어려운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확실한 것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문둥병이 있는 현실이 실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실제입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어려운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며 의지하므로 보이는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가다가 깨끗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몸에 이상을 느껴 쳐다보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내리던 고름이 그치고 딱정이가 떨어지고 썩었던 피부가 어린 아이와 같은 살로 회복되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그들의 떨어져나갔던 신체의 일부는 회복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에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나병의 그 깊고 깊은 어둠에서 빠져 나오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두움과 슬픔과 절망을 해결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일생 일대 이런 은혜의 순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이 사마리아 사람은 먼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표한 것을 볼 때 그들이 나음을 받은 것은 가다가 바로 된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시기 전에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무엇을 드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에게 가진 것이 없었지만 마음과 온 몸으로 주님께 감사를 표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은 아홉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7,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감사하러 돌아오지 않은 아홉에 대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아홉 명은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였을까요? 만약 그들이 정말 순종하기 위해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저런 말씀은 안 하셨을 것입니다.

  열 명중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뿐임을 예수님도 강조하십니다. 확률로 10%입니다. 이는 무엇을 보여 줍니까? 은혜 받는 사람은 많아도 감사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쉽게 보이는데, 실제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죄악된 인간의 본성을 따라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 역시 그러하지 않습니까?
 
  돌아온 한 사람 이방인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시했고 그들이 타락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와 또 이곳에서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하는 자세를 예수님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왜 누가는 이렇게 감사한 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인 것을 강조해 기록을 해 놓았을까요? 이는 선민의식, 특권 의식에만 사로 잡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바르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꼬집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장차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 그들이 오히려 유대인보다 모범을 보일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와 감사를 한 그에게 어떤 축복을 주셨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는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영혼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감사할 때 주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우리 인생 목적은 일생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편에는 감사라는 말씀이 75번이나 나옵니다. 시편 기자는 축복의 때에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고난의 때에도 감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실패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질병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나의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욱 신뢰할 때,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확실한 실제라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해서 반드시 선을 이루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드리는 감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또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감사하는 생활은 이 공동체를 더욱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깊이 맛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100%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긍휼과 공로만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실제입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므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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