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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히브리서 제 2 강 죽음의 고난을 맛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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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15-11-01 09:07

본문

2015년 히브리서 제 2 강
말씀 | 히브리서 2:5-18
요절 | 히브리서 2:9
죽음의 고난을 맛보신 예수님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지난 시간 우리는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천사보다  뛰어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을 맛보셨습니다. 왜 천사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 되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을 맛보았습니까? 예수님의 고난이 현재 혹독한 박해 가운데 있는 히브리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말씀을 통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음의 고난을 맛보시므로 능히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본래 창조주시오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고난을 받으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를 높이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올 세상을 통치하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현실은 어떠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아직 그에게 온전히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악과 악인들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형통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재림하여 최종 심판하실 때까지 사탄이 남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본래 천사보다 뛰어난 분이신데 잠시 동안 천사보다 낮아져 죽음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9절을 다시 보면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죽음과 전혀 상관 없는 분이, 죽음을 맛 보실 이유가 전혀 없는 분이 자신을 죽음의 세력에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죽음의 세력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봅니다. 또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있는 여러 고난들이 더 이상 고난이 아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여러 모양의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크리스천들 역시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능히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예수님을 제일 많이 믿는 부류는 노예들이었습니다. 당시 전 6천만 로마시민의 3분의 1이 노예였습니다. 이 노예들이 기독교를 바로 믿어서 로마를 복음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노예는 마음대로 사고 팔고 죽이기까지 했답니다. 막 때리고 쇠사슬로 묶고, 이렇게 모진 학대속에서도 그들은 외양간 같은 데에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고관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밖으로 나가보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옵니다. 노예들이 외양간 같은 데에 모였는데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인 자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주인의 일이 잘되게 해주시고, 주인에게 건강을 주시고, 주인 가정에 평화를 주시고,… 이렇게 기도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그 자리에 뛰어들어갔습니다. "나도 예수 믿겠다고 하고 그는 쇠사슬을 다 풀어주고 그들과 함께 울면서, 그 동안 사람 대접을 하지 안 했던 것을 잘못했다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노예들은 모진 고난을 견딜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원수 같은 주인을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로마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에게도 여러 모양의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이 때 원망과 불평대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나에게 있는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며 우리는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택하신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일을 위해 구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자기의 고난을 통해 그 성품상 온전케 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온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직분상 온전케 되셨습니다. 그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 사역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구세주로서 온전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의 댓가를 치루셨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기 때문에 구원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구원은 미완성으로 남게 됩니다. 그의 죽음이 구원을 완성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습니까? 선행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면 없어질까요? 도리어 죄가 더해 질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가 더해질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형벌을 받으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인해 죄의 댓가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지불되었습니다. 우리가 만원을 빚졌으면 만원만 갚으면 됩니다. 어느 누구도 만원을 빚졌다고 백만원 또는 천만원을 갚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생명의 댓가로 창조주 예수님의 생명의 댓가가 지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훨씬 넘치게 그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완전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댓가를 지불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죄사함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심판과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구원의 창시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임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11절. 첫째로, 우리를 형제라 부르십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성도들은 다 한 근원인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 값을 주고 사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셨습니다.

  둘째, 마귀를 멸하시며 마귀의 종 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지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만 없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심으로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사망권세에 시달리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그 형벌로서 죽게 되었지만 죄 없는 예수님이 내 대신 죽음의 형벌을 치루심으로 믿는 성도들은 사망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와 연합되심으로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믿음이 독실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임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다 방에서 나가게 한 후 남편과 손을 마주잡고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톱 레이디의 찬송을 열심히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의 소망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의 찬송소리는 기쁨이 가득했고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로마의 키케로는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으로 그들의 목이 잘리우면서도 찬양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차라리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나의 철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분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삶과 죽음으로 증거하고 있는 저들의 하나님을 무엇으로 부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사망권세로 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 UBF 일용할 양식에는 고린도전서 부활장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활 말씀을 보며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고전15:52-54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우리의 몸은 결국 다 썩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장차 썩지 않는 몸을 주십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몸의 기능들을 하나씩 상실하게 됩니다. 치아의 기능을 상실해서 결국 틀니를 하게 됩니다. 뇌기능이 떨어져 이것 저것 계속 잊기 시작하다가 치매가 됩니다. 관절이 약해져 진통제 없이는 살 수 없게 되고 때로는 인공관절 수술을 합니다. 머리는 빠져서 점점 대머리가 되며 눈은 약해져 점점 보이지 않게 되고 백내장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기능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우울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썩을 것, 죽을 것에 썩지 아니함과 죽지 아니함을 덧입혀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보잘 것 없는 씨앗에서 꽃이 나오는 것 처럼 보잘 것 없는 내 몸에 영광스러운 새로운 몸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고전15:42-45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 세월이 가면 갈수록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주님이 주신 부활의 약속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친히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셋째,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주님은 긍휼과 자비가 충만하십니다. 또 그는 신실하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보셨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모양의 시험을 받았고 이기셨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잘 이해하고 도와주십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심판과는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부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 학생들이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크신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예수님께 신앙고백하고 믿음을 드리므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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