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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요한복음 제 24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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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15-10-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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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요한복음 제 24 강 
말씀 | 요한복음 21:1-25
요절 | 요한복음 21:15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합니다.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 심문받으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세번째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순간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칩니다.(눅22:61)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큰 소리 쳤던 베드로는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깊이 절망하였습니다. 그는 감히 예수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의 실패를 회복시키십니다. 말씀을 통해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사랑고백하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20장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확신 가운데 신앙고백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현실 문제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하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그물을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제자로서도 실패했고 이제 어부로서도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4절.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실패하고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실패한 그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도우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힘없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지만 그들의 팔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잡은 물고기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과거에도 그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피라미 한 마리 잡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서  말씀을 전하신 후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고 두 배 가득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리며 말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무서워 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처음 그가 예수님을 따르던 때를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 하자 시몬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매고 바다로 다이빙을 하여 헤엄을 쳐 주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볼 수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맛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밤새도록 일을 한 제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생선숯불구이와 떡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였습니다. 물고기가 그렇게 많았지만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제자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또는 부인하고 떠난 마음의 상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용서한다’는 등의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죄에 넘어지고 주님을 슬프시게 합니다. 자신을 자학하며 정죄하고 누워 있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 게바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이름, 시몬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시몬은 그가 변화되기 전의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과거에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죽을지언정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실패하였고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다시금 제자의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그와 사랑의 관계성을 다시 맺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의 기초는 나의 완전함이 아닙니다. 그 기초는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한결같은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 허물많은 베드로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 사랑에 감동되어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또 여기서 이 사람들은 이것들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부와 명예보다 자기의 꿈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날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며 따랐지만 사실 자기의 꿈을 사랑했습니다. 지상 메시아 왕국, 그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을 꿈을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을 부인하고 통곡하며 자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 얻는 것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TV 드라마 보는 것을 더 사랑하기도 합니다. 아이돌 가수는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이제 대기업 취업이 우상이 되며 결혼 때가 되면 형제, 자매가 우상이 되고 나이 들어서는 노후문제 해결이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것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정답은 예수님의 변함없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장발장을 변화시킨 것도 율법이 아니라 신부의 용서와 사랑이었습니다. 고후5:13-15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전 같으면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한 목숨 다 바쳐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도 아시잖아요’라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경험한 그는 이제 겸손해졌습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 과신이 깨어졌습니다. 주님이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겸손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그 양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부르실 때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제는 내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이 그의 양에게 있습니다. 그의 양을 섬기기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도, 세 번째 질문도 같았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베드로는 근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을 의심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자신의 행동을 볼 때, 그것은 당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꿈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도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면서도 고백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께서 왜 세 번씩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하신 걸까요?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를 책망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의 실패를 회복시켜 주기 위함입니다. 세번 사랑 고백하므로 베드로의 실패를 만회하고 다시금 제자의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그에 대한 믿음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양을 맡기십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결점 투성이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악됨과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깊이 절망합니다. 이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도 우리는 주님의 변함없는 한결같은 사랑을 기억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신하고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나의 허물과 상관없이 주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롬4:3-5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주님의 크신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감동되어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는 젊어서는 스스로 원하는 대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은 베드로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순교할 때 자청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은 예수님과 같이 똑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자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세번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주님의 사랑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일 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20, 21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됩니다. 다른 사람은 저렇게 사는데 나만 이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회의하며 손해의식을 느끼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주님이 나를 부르신 길이 있고 그 길로 주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희생하고 사랑을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희생합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이 주신 길을 따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덮고도 남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허물과 죄를 덮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 사랑을 영접하고 이 사랑에 깊이 감동되어 주님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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