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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19강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바울(행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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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16-09-0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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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도행전 19 강
말씀 | 사도행전 20:1-38
요절 | 사도행전 20:31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바울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도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후원으로 3차에 걸쳐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그가 개척한 도시마다 다 의미가 있고 열매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도바울이 가장 많은 시간, 가장 많은 힘과 마음을 쏟은 곳은 에베소였습니다. 전도여행을 할 때 그는 한 도시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는 삼년을 머물며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같이 제자들과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술하던 자들이 마술책을 모아 불태울 정도로 한 도시가 변화되고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파될 정도로 큰 역사가 있었던 곳이 바로 에베소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이렇게 삼년간을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섬겼던 에베소를 떠나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고별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인 한 사람, 그 안에서 가장 값진 보화를 발견한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위대한 믿음의 거장을 만날 수 있고 그를 통해 복음의 진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위대한 믿음의 거장은 우리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오직 그가 가르친 주님과 그의 말씀만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의 부탁을 겸손히 받아들여서 그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를 위대하게 한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의탁하여 오늘 말씀을 준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 비록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준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오늘 말씀을 통해 주고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장.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긴 바울(1-24)
바울이 지금 고별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14,15절을 봅시다.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그곳은 밀레도입니다.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고 에베소를 지나 밀레도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다시는 에베소의 제자들을 보지 못할 수 있었기에 바울은 밀레도에서 사람들을 에베소에 보내어 교회장로들을 밀레도로 오라 청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2,23절을 봅시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그리고 25절 하반절을 봅시다.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래서 바울은 이번이 이 땅에서 그들을 보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들을 만나고 있고 그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만 바울의 고별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에베소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바울이 가장 먼저 한 말씀이 것이 무엇입니까? 18-21절을 봅시다. “18.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먼저 아시아에서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에 대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구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래동안 알고 지낸 친구를 다 안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본 것과 들은 것 외에는 그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번이 마지막일수도 있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에게 그를 알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나를 오픈하는 것, 그래서 나를 알게 하는 것, 나의 삶을 나눈 것 이것이 주님 안에서 우리의 만남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둘째는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그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그들로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는 것은 지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만 기억하게 것은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이미 알고 있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 자신에 대해 알게 하고 기억하도록 에베소에서의 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 자신에 대해 알기를 원하고 기억되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모든 겸손과 눈물입니다. 19절을 다시한번 봅시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모든 겸손과 눈물, 이것은 에베소에서의 삼년간 바울의 목자생활을 표현한 한마디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지식이 높고 소득수준이 높아서 매우 교만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을 섬기려면 일방적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많이 들어주고 대화를 해야 했습니다. 일이 많고 바쁜 바울이 이렇게 양들을 섬기기 위해선 모든 겸손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겸손은 영어로 “great humility”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보통이 겸손이 아니라 큰 겸손이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양들을 섬겼을 때 그들 안에 말씀을 겸손히 듣고 배우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양들을 섬기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양들이 그를 그토록 상처주고 힘들게 한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무지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죄인 중에 괴수인 그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 크신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와 같이 무지와 교만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 가운데 방황하는 양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삼년 동안을 눈물을 흘리며 양들을 섬긴 것입니다. 이렇게 눈물로 양들을 섬길 때 그의 진심이 양들을 감동케 하고 양들이 말씀을 받고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억되기를 원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양들을 섬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은혜를 받고 섬기게 되는 모든 것, 양을 치는 것, 예배를 섬기는 것, 찬양을 인도하는 것, 청소하는 것, 기도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그 모든 것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모든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겸손과 눈물로 그것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대학가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해 할 때 그것은 사람을 섬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공부하는 것도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모든 겸손과 눈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일을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로 공부하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찾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실제적인 삶입니다. 이렇게 내 삶을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은 반드시 풍성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든 겸손과 눈물로 매일 매일의 삶을 생명으로 건져 올리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그가 전하여 가르친 복음입니다. 20-21절을 봅시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사도바울은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람들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양들을 가르쳤습니다. 양들이나 리더들에게 이런 바울이 때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태우며 가르치고자한 가르침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음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도바울의 메시지를 통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헌금하는 것, 봉사하고 섬기는  것 등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말씀공부하는 것, 소감쓰는 것, 일대일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것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믿음이 빠질 때 그것은 사람의 일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그 안에 이것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것이 공부하는 일이라도 그 안에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에 회개와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이 됩니다. 그것은 종교생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무엇을 하든 우리 안에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예배자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정리해봅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의 만남에서 그는 그들이 알기 원하는 자신에 대해, 기억되기를 원하는 자신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겸손과 눈물입니다. 그것은 그가 전한 복음입니다. 곧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삼년간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그는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기억되길 원했던 것은 이런 자신의 섬김이 아닙니다. 자신의 헌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이렇게 섬기고 목숨을 걸고 가르치고자 했던 그 복음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는 우리를 섬기신 목자님들의 섬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섬김만 기억하면 안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토록 섬기며 가르치고자 했던 그 복음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복음을 기억함으로 여러분들의 지식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신앙으로, 행동하고 열매를 맺는 신앙으로 계속하여 성정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2장. 가장 아름다운 이별(25-38)
우리는 1장을 통해 오늘 본문의 주된 메시지를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을 부록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 묵상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차 전도여행을 통해 수많은 도시들에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열매를 맺은 믿음의 영웅, 믿음의 거장인 사도바울은 개척한 교회를 순회하며 제자들의 섬김을 받으며 얼마든지 여생을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에 안주하지 않고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는 과거 자신과 같이 아직도 율법에 대한 무지한 열정과 교만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원수노릇을 하고 있는 그의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한 가지 염려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29-31절을 봅시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여기서 사나운 이리는 유대의 율법주의자나 이원론을 신봉하는 영지주의자와 같이 당시 유행하던 이단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밀레도에서 그의 고별메시지를 듣는 장로들 중에 그렇게 복음의 원수노릇을 할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에 이미 이야기 했지만 다시한번 그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그 복음을 기억하라. 그 복음을 잊지 말라. 그 복음을 지켜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그가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면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을 뻔 했고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이번이 그들과는 실제적인 마지막 만남이었고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이별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32절을 봅시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이 삼년이나 머물며 모든 겸손과 눈물로 섬긴 곳이지만 그래봐야 그들은 삼년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죄악과 어둠은 너무나 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은 무엇에 부탁합니까? 그는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그들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그들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그들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실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별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제1장 모든 겸손과 눈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바로 제2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이런 만남을 만났고 앞으로도 예수님 안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만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예수님 안에는 아름다운 이별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주 말씀이긴한대 참고로 행21:1을 한번 봅시다.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여기에 작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작별이란 말을 영어로 보면 tear away 라고 쓰고 있습니다. 작별이란 이처럼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움이 있습니다. 이별은 사랑한 만큼 아프고 사랑한 만큼 그리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떠나는 마음이나 떠나보내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렇게 찢어지는 아픔 가운데 어디서 위로를 얻습니까? 어디서 그 아픔을 극복할 힘을 얻습니다. 바로 주와 그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는 떠날지라도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이 남아 그들을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고 그들의 믿음을 거룩한 기업으로 든든히 세워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와 그 은혜의 복음에 부탁하는 자의 이별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이러한 이별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도 아름답지만 이별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긴 사도바울과 주와 그 은혜의 복음에 부탁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있는 사도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사도바울처럼 모든 사람들을 모든 겸손과 눈물로 섬김으로 아름다운 만남을 만드시고 또한 주와 그 은혜의 복음에 부탁하는 아름다운 이별도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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