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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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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16-08-1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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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 16 강
말씀 | 사도행전 17:1-34
요절 | 사도행전 17:11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오늘 말씀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서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뢰아 사람들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우리에게 성경을 대하는 좋은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베뢰아 성도들의 자세를 우리도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세상을 뒤집어 놓는 복음(1-9).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자기의 관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했는데 그가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요 그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바로 그 그리스도입니다. 문제는 유대인 중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복음이 분명히 증거 될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야손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끌어내려고 찾았습니다.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자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바울의 가르침은 과격하지 않은데 어떻게 천하를 어지럽게 했을까요? 어지럽게 한다는 말은 뒤집어엎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돈 잘 버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니 루스드라가 뒤집어졌습니다. 에베소에서는 우상은 신들이 아니라고 말하니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돈을 벌지 못하게 되자 그 사회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하자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가 뒤집어졌습니다. 로마는 다신교 사회이고 황제는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신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고 왕은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뒤집어졌습니다. 사실 복음은 그를 믿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버립니다. 돈과 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영접할 때 가족이 뒤집어 지고, 학과가 뒤집어 지고, 한 사회가 뒤집어집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살펴보더라도 복음으로 인해서 이 나라가 얼마나 놀랍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34).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기 까지 영적인 싸움이 사회 속에서, 가족 속에서, 개인 속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은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변혁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둘째,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베뢰아 사람들(10-15). 데살로니가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후 형제들이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로부터 서쪽으로 40Km 떨어져 있고 베르미우스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마게도냐의 도시입니다. 베뢰아의 오늘날 지명은 베리아(Verria)입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처럼 상업 도시의 번성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세공업과 농업, 석공업의 중심지로 그 이름을 떨쳤습니다.

  바울은 베뢰아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 강론하였습니다. 말씀에 대한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너그럽다는 것은 고상하다, 선입관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배우고자 하는 큰 열망을 가지고 온 마음으로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강론을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해서 면밀히 조사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했을 때 많은 사람이 믿고 헬라의 귀부인과 적지 않은 남자가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번 이마가 목자님 메시지에서 안암 UBF 2세 동규형제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가 삼수를 하며 고통할 때, 그는 모든 원망과 불평을 내려놓고 양식을 매일 먹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새벽 6시 학원에 도착해서는 제일 먼저 양식을 먹었습니다. 수능 당일에는 그동안 은혜받은 일용할 양식 3장을 뜯어서 가방에 넣고 수능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을 때, 그는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 가운데 수능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좋은 성적으로 고대 통계학과 장학생으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는 자들을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 JBF학생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풍성한 열매 맺는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아덴 전도(16-34). 베뢰아에서 말씀 역사가 있는 것을 알게 된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몰려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곧 바울을 인도하여 아덴까지 이르렀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아덴은 지금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의미합니다. 아테네는 헬라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당시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였습니다. 파르테논, 올림피우스의 제우스 신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철학, 수사학, 문학, 과학 등 다방면에서 학문의 꽃을 피웠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이기도 하며 에피큐로스, 스토아 학파도 이 곳에서 활동했습니다. 아덴은 철학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곳입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난 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한 뒤(BC431-404) 쇠퇴하기 시작하여 결국 로마에게 정복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 당시 아덴의 문화적 영향력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했으나 각종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격분한 바울은 회당에서,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복음과 헬라 철학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쟁론하던 어떤 사람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이 예수님과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혜와 철학을 숭상하는 사람들 답게 지적 호기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을 많이 알아도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은 놀랍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학 혁명은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반면, 성경은 너무나 오래된 책이지만, 인생의 근본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본 인간의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세상은 살기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위험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우리가 바쁜 세상의 삶 가운데서도 근본적인 문제와 해답을 제시하는 성경에 마음을 드림으로 정말 지혜로운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 주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합니다. 22,23절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아덴 사람들은 여러 신들을 섬겼으나 혹시 알지 못하는 신도 있을 수 있는데 그 신을 섬기지 않아서 재앙을 당할까 두려웠습니다. 그 신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섬겼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섬겨야 할 참된 신이 누구신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합니다. 우리는 다 그의 소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없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주로 섬겨야 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으나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회개하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듣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반응은 어느 시대나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그들에게 맞게 헬라적으로 전했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변하지 않고 동일했습니다.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은 부활을 믿고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부활을 증거할 때 조롱하는 사람도 있지만 듣는 사람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우리 JBF 학생들도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그것이 그러한가 날마다 깊이 묵상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가운데 풍성한 열매맺는 삶, 가장 지혜로운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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