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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15강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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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16-08-06 23:12

본문

2016년 사도행전 제 15 강
말씀 | 사도행전 16:1-40
요절 | 사도행전 16:9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우리는 지난주까지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대해 배웠습니다. 1차 전도여행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요한이 동행했습니다. 이 여행은 AD47에서 49년까지 약 2년간 이루어졌고 이동한 거리가 무려 2,240km나 됩니다. 이 여행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격렬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성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원정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그를 돌로 친 사람들이 있는 루스드라 성에 들어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받아야 할 것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굳게 했습니다. 그 결과 소아시아 여러 도시에 교회가 개척되고 이방인 가운데 제자들이 굳건히 서는 역사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곧바로 2차 전도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은 출발하기도 전에 삐그덕 거렸습니다. 이 여행에 마가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일하러 가지 않은 마가요한을 데려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바나바는 한번 더 기회를 주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더니 결국엔 이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바울은 마가요한을 데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각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2차 전도여행에 대한 바울의 당초 계획은 1차 전도여행을 다니며 개척한 도시들을 다시 찾아가 제자들을 굳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16:4,5을 봅시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이렇게 1차 전도여행을 다니며 세운 제자들을 굳게 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다 마친 사도바울은 그 다음에는 브루기아와 갈리디아, 무시아를 지나 소아시아의 북쪽인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6,7절을 봅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을 전할려고 하면 이상하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성경에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로 유대인 회당에서 들어가 말씀을 전한 기회를 얻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다니는 곳마다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대일 약속을 한 양들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 일대일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하는데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는 마차가 사고로 제시간에 못오고 비두니아로 가는 모든 교통이 막히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자신이 계획한 전도여행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며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의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일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이는 성령께서 막으시고 하나님의 영이 허락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는 하나님은 바울이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 복음을 전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을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로마로 보내서 그를 통해 황제 가이사와 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를 향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시기 위해 몇 번의 사인을 나타내셨습니다. 첫째는 바나바와의 결별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실라를 데리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실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로마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럽개척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보내신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의 계획대로 아시아 전도를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부터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막으셨습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고자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애쓰고 밀어붙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거푸 두 번이나 사인을 보여주셨는데도 하나님의 뜻을 바울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두 번, “2”라는 숫자는 증거의 숫자요 확정적인 숫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두 번 정도 사인을 나타내시면 이를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무시아를 지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이때 이런 사도바울은 깨닫게 하실려고 하나님이 쓰신 마지막 카드가 무엇입니까?

16:9절을 봅시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드로아로 내려갔다가 그날 밤에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의 환상에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이 그를 향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애타게 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하나님께서 왜 그의 길을 막으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10절을 봅시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여기서 “인정함이러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심미바조인데 그 뜻이 격렬한 논쟁을 통해 설득당했다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이는 하나님은 유럽을 향한 당신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 방법으로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시고 바울을 설득하셨고 드디어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그 하나님의 마음에 설득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는 내가 원하는 길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두 길이 같으면 더 할 나위없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때론 그 길이 달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길을 막으시고 우리를 설득하시는 일이 있을수 있습니다. 바로 본문 말씀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경우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로마의 심장부로 보내 그를 통해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인 가운데 복음을 전한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유대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장소는 유대땅을 벗어났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유대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의 길을 막으시고 그를 택하여 부르신 당신의 길로 당신의 계획대로 그의 전도여행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의 삶에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저의 인생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입시 시험을 치를 때 저의 계획 가운데는 홍대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지도 않게 전기대학 입시에 낙방하였고 후기대학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당시 광운공대와 홍익대학교가 있었고 저는 담임선생님께 이 두 대학중에 어느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좋은지 상담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주저하지 않고 홍익대학교가 역사가 오래 됐다고 하시며 홍익대학교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광운공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홍대는 2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있었는데도 저는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바람에 홍대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홍대에 합격했을 뿐 아니라 일대일 목자님을 통해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캠퍼스 목자로 부르셨음을 깨닫고 대학교 4년 내내 캠퍼스에서 전도하며 제자양성에 헌신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평신도 목자로서 남아 캠퍼스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면 저의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하셨음을 인정하고 지난 저의 삶과 현재 저의 삶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잠언16:9 말씀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했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고 우리의 계획이 무너지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계획이 무너지고 실패한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계획과 그 분의 인도하심이 시작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분의 인도하심을 설득당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를 깨닫고 무엇을 했습니까? 11절을 봅시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그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마게도냐에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자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즉시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우리도 애를 쓰지만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막힐 때 그 때는 하나님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찾았다면 그의 부르심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지체하지 말고 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이렇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분의 계획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함으로 나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로 즉시 나아가는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2-14절을 봅시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바울은 아시아로 가고자 하던 자신의 계획을 꺾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어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에 나갔다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들 가운데 그가 가고자 했던 아시아의 리디아 지역출신인 자주장사 루디아가 복음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이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그가 찾던 회당이 없어서 실망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하나님은 그를 루디아에게 인도하셨고 그녀를 빌립보 교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계획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이 더 좋고 더 선한 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나의 모든 계획, 나의 모든 삶을 맡길 수 있는 믿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바울이 그녀에게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의 주인이 이익의 소망이 끊어짐을 인해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 상관에게 고소를 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차꼬에 채워서 꼼짝을 못하게 만들어 놓아 그들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힘든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꺾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바로 많은 매와 깊은 감옥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저의 계획을 꺾으시고 인도하신 이유가 고작 이런 것입니까? 제가 언제 이곳에 오겠다고 했습니까? 비단길은 아니어도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깨달아지자 그들은 이런 상황을 그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 속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째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를 모든 죄수들이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최수 중에 단한명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감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 안에서 이렇게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매일 같이 집과 학교, 공부 공부 공부 그렇다고 여러분에 삶에 이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어리지만 여러분들도 내가 누군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친구관계 이성문제, 죄문제로 인한 수많은 고민들로 마치 창살만 없지 내 삶이 감옥같다고 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높고 완전하신 계획 가운데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이를 바라봄으로 감사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기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합니다.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방학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느냐보다 방학에 어떤 만남을 가졌는가 학창시절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번 방학에 여러분들이 많은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그 안에서 공부해야할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내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 이것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이미 인생의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은혜를 여러분들 안에 넘치게 부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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