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2강 이방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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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12 강
말씀 | 사도행전 13:1-52
요절 | 사도행전 13:47
이방의 빛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의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세계 만민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사도바울을 이방의 빛으로 구별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땅 끝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영접하며 또한 사도바울의 선교신앙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성장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안디옥 교회(1-3).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는 쟁쟁한 성경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국적 모임이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로마, 유대인으로 국적이 다양했습니다. 성경 선생들이 중심이 되어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을 때 말씀이 흥왕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은 이때 교회를 어떻게 더 키울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렇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금식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내부의 필요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방향을 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이에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인물들이요 안디옥교회에 꼭 필요한 일꾼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세계 선교를 위해 따로 세우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세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복음의 원수를 대적한 구브로 전도(4-12). 4,5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렀습니다. 구브로는 동부 지중해에 있는 폭 100Km, 길이 225Km의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술사 엘루마는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을 썼습니다. 이 때, 사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사울의 이름이 이때부터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인데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사역을 하면서 겸손의 중요성을 배웠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닮고자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마술사 엘루마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영적인 분노로 원수를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의지하여 악령을 내쫓았습니다. 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11).” 바울이 믿음으로 그를 책망하고 저주하자 엘루마가 맹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 저항하는 세력, 대적의 세력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나 애인, 가족 등이 믿지 못하게 옆에서 훼방합니다. 세상에는 악한 영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복음을 믿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그러나 이런 대적의 세력도 성령의 권능 앞에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울과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성령의 권능을 덧입을 때 우리는 죄악된 이 시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온 시민이 말씀을 듣고자 모인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와 이방의 빛으로(13-52).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마가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권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16-2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하나님께선 이렇게 그 약속대로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고 증거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바울의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경고합니다. 40-4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반어법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촉구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길을 멸시합니다. 사람의 노력을 강조하고 사람 자체를 강조하고 싶어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했는데 그것이 헛되다고 하니 멸시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들은 거저 주시는 은혜를 말하면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합니다. 자신들이 뭔가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합니다. 사람들은 실패자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으로서 자신을 인정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죄인입니다. 다 부패한 존재입니다. 바울의 메시지의 결론은 부활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이 복음의 메시지를 멸시하고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의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멸시하고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오직 부활하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깊이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두 사도는 그들과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가운데 놀라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방향을 잡았습니까? 46,47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부르심을 거부하자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는 이런 방향을 잡을 때 이사야 49:6절 말씀을 근거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너로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이방의 빛은 이방인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은 어둡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여 어둡습니다. 죄와 죽음 권세 아래서 고통하다가 영원한 심판에 던져질 수 밖에 없습니다. 흑암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이요 흑암 가운데 비추는 큰 빛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빛이 먼저 우리에게 비취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빛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죄악된 존재인가 발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런 죄인된 나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깨닫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홍같이 붉은 나의 죄가 양털과 같이 희게 변하는 은혜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믿는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십니다. 주님의 복음이 흐르는 통로로 나를 쓰십니다. 48절을 보십시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리고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49).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빛이십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또한 빛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때, 내가 이방의 빛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빛 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므로 예수님 안에서 내 인생의 모든 해답을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의 빛으로 쓰임 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사도행전 13:1-52
요절 | 사도행전 13:47
이방의 빛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의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세계 만민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사도바울을 이방의 빛으로 구별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땅 끝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영접하며 또한 사도바울의 선교신앙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성장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안디옥 교회(1-3).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는 쟁쟁한 성경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국적 모임이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로마, 유대인으로 국적이 다양했습니다. 성경 선생들이 중심이 되어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을 때 말씀이 흥왕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은 이때 교회를 어떻게 더 키울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렇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금식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내부의 필요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방향을 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이에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인물들이요 안디옥교회에 꼭 필요한 일꾼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세계 선교를 위해 따로 세우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세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복음의 원수를 대적한 구브로 전도(4-12). 4,5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렀습니다. 구브로는 동부 지중해에 있는 폭 100Km, 길이 225Km의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술사 엘루마는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을 썼습니다. 이 때, 사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사울의 이름이 이때부터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인데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사역을 하면서 겸손의 중요성을 배웠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닮고자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마술사 엘루마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영적인 분노로 원수를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의지하여 악령을 내쫓았습니다. 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11).” 바울이 믿음으로 그를 책망하고 저주하자 엘루마가 맹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 저항하는 세력, 대적의 세력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나 애인, 가족 등이 믿지 못하게 옆에서 훼방합니다. 세상에는 악한 영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복음을 믿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그러나 이런 대적의 세력도 성령의 권능 앞에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울과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성령의 권능을 덧입을 때 우리는 죄악된 이 시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온 시민이 말씀을 듣고자 모인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와 이방의 빛으로(13-52).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마가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권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16-2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하나님께선 이렇게 그 약속대로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고 증거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바울의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경고합니다. 40-4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반어법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촉구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길을 멸시합니다. 사람의 노력을 강조하고 사람 자체를 강조하고 싶어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했는데 그것이 헛되다고 하니 멸시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들은 거저 주시는 은혜를 말하면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합니다. 자신들이 뭔가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합니다. 사람들은 실패자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으로서 자신을 인정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죄인입니다. 다 부패한 존재입니다. 바울의 메시지의 결론은 부활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이 복음의 메시지를 멸시하고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의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멸시하고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오직 부활하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깊이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두 사도는 그들과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가운데 놀라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방향을 잡았습니까? 46,47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부르심을 거부하자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는 이런 방향을 잡을 때 이사야 49:6절 말씀을 근거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너로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이방의 빛은 이방인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은 어둡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여 어둡습니다. 죄와 죽음 권세 아래서 고통하다가 영원한 심판에 던져질 수 밖에 없습니다. 흑암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이요 흑암 가운데 비추는 큰 빛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빛이 먼저 우리에게 비취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빛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죄악된 존재인가 발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런 죄인된 나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깨닫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홍같이 붉은 나의 죄가 양털과 같이 희게 변하는 은혜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믿는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십니다. 주님의 복음이 흐르는 통로로 나를 쓰십니다. 48절을 보십시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리고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49).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빛이십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또한 빛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때, 내가 이방의 빛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빛 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므로 예수님 안에서 내 인생의 모든 해답을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의 빛으로 쓰임 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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