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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11강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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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16-07-0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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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 11 강
말씀 | 사도행전 11:19-12:25
요절 | 사도행전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최근에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전해진 경위와 그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행전에 여러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3대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성경강림사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성령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사건으로 그 열매로 이 땅에 탄생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도바울의 회심입니다. 그를 통해 복음이 소아시아와 유럽에 전해지고 복음이 세계화되었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지난 주에 배운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사건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는 이방인 가운데 첫 가정교회의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이는 안디옥 교회의 탄생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기념비적인 사건인 이유는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행11:19-21절을 봅시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렀는데 그들은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이르러 헬라엔에게도 전도를 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던 성도들이 최초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곳이 바로 안디옥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로 탄생한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주의 손이 함께 하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무엇을 했습니까? 22-24절을 봅시다.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어린 신자들이 몰려드는 안디옥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인 바나바를 책임목자로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며 그들이 예수님께 깊이 뿌리내리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몰려오는 어린 양들을 바나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그가 찾은 동역자가 누구입니까? 25절을 봅시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이 때는 사울이 회심한지 13년이 흐린 뒤였습니다. 그 동안 사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3년간 아라비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 교회를 핍박한 전력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그의 회심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그를 아무도 동역자로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사울의 고향인 다소까지 찾아가서 그를 동역자로 초청합니다. 그리고 1년간 열심히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말씀으로 섬깁니다. 그랬더니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26절을 봅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일 년간 모여서 큰 무리를 가르쳤더니 안디옥 사람들이 말씀으로 변화된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의 삶도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최근에는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서는 은둔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일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삽니다. 식사기도도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홍대 주변에 있는 클럽에도 가고 할 건 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설마 교회에 나오겠어 싶은데 교회에 나옵니다. 그들이 이렇게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 걸치고 은둔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기 위해선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변화된 안디옥 교회 제자들은 일 년간 바나바와 사울이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참여하며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대학에 들어와 목자님과 성경을 깊이 공부한 후에 말씀을 받고 거듭났습니다. 여러분 목자2세라고 다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나를 변화시킨 한 말씀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이번 여름수양회에서 한 말씀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방 땅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이 퍼져가고 있을 무렵 복음의 발원지인 예루살렘에는 유대의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1세에 의해 혹독한 핍박이 일어납니다. 행12:1-3을 봅시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헤롯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 유월절 후에 백성들 앞에 끌어내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헤롯의 감옥은 상옥, 중옥, 하옥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하옥은 중범죄인을 가두는 감옥으로 그곳에 갇히면 이는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베드로를 가둔 감옥이 바로 이 하옥이었습니다. 게다가 헤롯은 베드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를 두 쇠사슬로 묶고 두 군인이 감옥 안에서 그를 지키고 파수꾼이 문 밖에서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베드로가 살아나갈 소망이 전혀 없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도 잠을 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홀연히 역사하셨습니다.

7절을 봅시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이 말씀에서 ‘홀연히’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원문에는 ‘홀연히’라는 말씀 앞에 ‘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인생길이 막힌 것 같을 때 어디도 길이 없는 것 같을 때 절망적일 때 그때 홀연히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사역에 새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길이 막힐지라도, 끝난 것 같을지라도 그 가운데 길을 내시고 그 가운데 대반전을 만드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하나님께서 홀연히 여러분에 삶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헤롯의 손에서 베드로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이끌어 감옥을 나올 때 베드로는 처음에는 생시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감옥을 나와 있음을 깨달았고 급히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고 하는 여자아이가 나왔다가 베드로인줄을 알고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들어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로데에게 네가 미쳤다고 말하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힘써 참말이라고 하니 그때는 그러면 네가 천사를 본 것이 틀림없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방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2절을 봅시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그들은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왔다고 하니 미쳤다 하고 그의 천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베드로를 위해 무엇을 기도한 것입니까? 혹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장렬히 순교하도록 기도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베드로가 석방되도록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베드로의 탈출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만 그러나 결코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곧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한 도시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바로 옆에 술집이 생겼습니다. 예배시간마다 술집에서 떠드는 소리, 음악 소리, 술 취한 소리가 교회까지 넘쳐들어 왔습니다. 교인들은 모두 술집이 나가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정말 그 술집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은 교회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교회 대표로 나온 집사는 우리가 기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것 때문에 술집이 망했겠느냐고 펄쩍뛰었습니다. 술집 주인은 하나님이 응답해서 자신들이 망했다고 주장하고 집사님은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판결은 어떻게 났을까요? 드디어 판사의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술집 주인, 믿음 있음. 교회 대표, 믿음 없음.” 판사는 술집 주인에게 그 교회에 나가도록 권면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모순이 우리 안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참된 믿음으로 기도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홀연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21-23절을 봅시다.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당시 헤롯은 매우 탁월한 연설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바로 동녘에서 해가 뜰 무렵에 은빛 비늘로 장식된 연미복을 입고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그의 연설에 매료된 백성들이 크게 부르며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열광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영광에 도취되었던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의해면 그는 그 당시 5일간 심한 복통을 앓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헤롯의 최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지만 마땅히 돌려야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그는 그를 대적하는 자를 반드시 대적하시며 심판하시는 우리의 삶의 심판장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창조자 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할 합당한 자세입니다. 오직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24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이는 헤롯의 죽음이후에 나온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헤롯의 죽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헤롯의 죽음으로 세상은 격동하고 소란했을 것입니다. 이 소식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면 세상의 어떠한 격동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한 UBF 목자님 가정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목자님 가정에 첫째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중학교 때 몸이 작다는 이유로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게임 중도에 빠져 성적은 320명 중에 280등을 하다 그래도 맘을 가다듭고 공부를 좀 해서 70등까지는 올려놓았는데 어정쩡한 상위권이라 이런 자신에 대한 비교, 경쟁, 원망, 불평이 끊이질 않았고 자신을 이 모양으로 만든 하나님을 저주하며 옥상에 올라가 짐승처럼 울고 길거리를 소리내며 울고 다녔습니다. 그는 입신양명하여 그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복수하고자 했지만 자신은 재수하게 되고 그들은 명문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로인해 자살충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렇게 삼수생활을 하던 중 낙담과 비관으로 힘들었지만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자 투쟁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능 이틀을 앞두고 두려움이 몰려와 부모님을 깨워 합심기도를 했고 하나님께 울며 자신을 살려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본 수능에서 단 두문제만 틀리고 all 1등급으로 고려대 통계학과 장학생으로 합격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낙담과 비관에 힘들어하던 이 친구가 어떻게 공부할 힘을 얻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매일 일용할 양식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의 안에 하나님이 말씀이 흥왕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친구들 안에도 이 친구처럼 비교, 경쟁, 원망, 불평, 낙담, 비관과 같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무너지게 하는 힘든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결코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힘을 주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삶에 대해 공부에 대해 친구들에 대해 장래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할 때 해결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문제 자체를 가지고 고민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흥왕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승리의 비결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극렬한 핍박과 도전 가운데서도 흥왕하여 더하여졌음을 배웠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할 때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 그리고 세상의 도전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흥왕한 하나님의 말씀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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