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베드로전서 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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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제 6 강
말씀 | 베드로전서 4:12-5:14
요절 | 베드로전서 4: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지난 주 우리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십니다. 고난을 당하면 재수가 없다,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며 그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고난을 견딘 신자들에게도 큰 영광과 상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바라보면 현재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치욕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슬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치욕을 당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치욕을 당하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종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보시며 부끄럽지 않게 하십니다. 신자들이 평안한 때보다 고난의 때에 주님과 더 친밀함을 누리며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시편들은 고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읊어졌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고난을 통해서 이 땅에서 심판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신자들을 극심한 고난으로 먼저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과 죄인들은 설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최후 심판을 받고 불과 유향의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고 죄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자신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고 같이 악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영혼을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신 후, 고난과 죽음, 부활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감히 예수님을 책망하면서까지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아서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16장) 예수님은 또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과거의 베드로와 같이 영광을 받기는 좋아하지만 십자가를 지기는 싫어합니다. 어떡하던지 고난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을 회피하며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는다고 말씀하십니다.반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으면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알의 비유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고 힘써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결국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위대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길에는 많은 고난이 있지만, 주님의 함께하심이 있고 또 나 자신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예수님의 본을 배워 고난을 사랑하며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위대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장에서는 장로들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때 어떤 자세로 하여야 하는가 권면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장로들은 교회 내의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양을 어떻게 먹여야 합니까?
첫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또 예수님을 깊이 사랑할 때,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양을 돌볼 수 있습니다.
둘째,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해야 합니다. 목자 생활은 사실 물질을 희생하면서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귀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의 이 희생을 생각할 때, 내가 드리는 어떤 것도 희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영접한 사람이 주님의 양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는 양무리의 본이 되는 삶을 통해서 이끌어야 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말보다 그가 행동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주장하고 요구하기보다 먼저 본을 보이면 양들도 보는 대로 따라옵니다. 본을 보이려면 모범이 되어야 하고, 앞서 가야 합니다. 나도 부족한데, 어떻게 양들의 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앞서 가시는 참된 목자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믿음, 사랑, 겸손, 섬김, 기도, 고난, 죽으심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를 때 믿음에서, 기도 생활에서, 언어생활에서, 거룩함에서, 섬기는 생활에서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이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리더가 있으려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렇게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고난의 때에 염려는 더 많을 것입니다.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고 있는데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런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근신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의 때에 힘들다고 무분별하게 살면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누이게 합니다. 염려하다가 믿음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은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고난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에 처해 있음을 알고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 땅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므로 고난을 받고 예수님과 같이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 알 그대로 있다가 썩어 없어지는 허무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썩고 죽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위대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예수님의 본을 잘 배워 고난을 사랑하고 위대한 인생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베드로전서 4:12-5:14
요절 | 베드로전서 4: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지난 주 우리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고난에 대한 바른 자세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십니다. 고난을 당하면 재수가 없다,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며 그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고난을 견딘 신자들에게도 큰 영광과 상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바라보면 현재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치욕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슬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치욕을 당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치욕을 당하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종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보시며 부끄럽지 않게 하십니다. 신자들이 평안한 때보다 고난의 때에 주님과 더 친밀함을 누리며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시편들은 고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읊어졌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고난을 통해서 이 땅에서 심판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신자들을 극심한 고난으로 먼저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과 죄인들은 설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최후 심판을 받고 불과 유향의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고 죄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자신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고 같이 악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영혼을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신 후, 고난과 죽음, 부활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감히 예수님을 책망하면서까지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아서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16장) 예수님은 또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과거의 베드로와 같이 영광을 받기는 좋아하지만 십자가를 지기는 싫어합니다. 어떡하던지 고난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을 회피하며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는다고 말씀하십니다.반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으면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알의 비유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고 힘써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결국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위대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길에는 많은 고난이 있지만, 주님의 함께하심이 있고 또 나 자신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예수님의 본을 배워 고난을 사랑하며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위대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장에서는 장로들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때 어떤 자세로 하여야 하는가 권면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장로들은 교회 내의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양을 어떻게 먹여야 합니까?
첫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또 예수님을 깊이 사랑할 때,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양을 돌볼 수 있습니다.
둘째,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해야 합니다. 목자 생활은 사실 물질을 희생하면서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귀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의 이 희생을 생각할 때, 내가 드리는 어떤 것도 희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영접한 사람이 주님의 양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는 양무리의 본이 되는 삶을 통해서 이끌어야 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말보다 그가 행동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주장하고 요구하기보다 먼저 본을 보이면 양들도 보는 대로 따라옵니다. 본을 보이려면 모범이 되어야 하고, 앞서 가야 합니다. 나도 부족한데, 어떻게 양들의 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앞서 가시는 참된 목자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믿음, 사랑, 겸손, 섬김, 기도, 고난, 죽으심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를 때 믿음에서, 기도 생활에서, 언어생활에서, 거룩함에서, 섬기는 생활에서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이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리더가 있으려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렇게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고난의 때에 염려는 더 많을 것입니다.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고 있는데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런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근신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의 때에 힘들다고 무분별하게 살면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누이게 합니다. 염려하다가 믿음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은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고난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에 처해 있음을 알고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 땅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므로 고난을 받고 예수님과 같이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 알 그대로 있다가 썩어 없어지는 허무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썩고 죽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위대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예수님의 본을 잘 배워 고난을 사랑하고 위대한 인생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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