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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5강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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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웨슬레조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17-01-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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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5강 
말씀 | 베드로전서 3:8-4:11
요절 | 베드로전서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선을 행하면 칭찬을 받아야 하고 상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누가 선을 행하겠습니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베드로는 역설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신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심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셨고, 사탄이 지배하던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음으로써 한 사람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 사도는 형제들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고 합니다. 피차 고난을 받는 입장에서 형제를 동정하여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난 속에서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고난당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핍박을 당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다 제 코가 석자가 되어 자기 살기에 급급합니다. 마음이 좁아지고 이기적이 되면 서로 마음을 같이 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동역자들의 형편을 서로 돌아보고 한 마음이 되라고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입니다(14a).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도록 부르셨습니다. 의를 행하고자 할 때 악한 세력의 공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의를 행하면서도 고난을 받을 때 왜 그런 삶을 사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대답해야 합니다. 왜 고난을 받으면서도 선을 행하느냐고 의아해 할 때 우리가 가진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믿는 바를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성도를 반대하는 사람을 구원 얻지 못할 사람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지금은 무지하여 악을 행하지만 은혜가 임하면 어떻게 변화될지 모릅니다. 그들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고난 받는 성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자세로 고난을 받는지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내가 가진 소망의 이유를 정성껏 설명해 줄 때 당장 열매가 없더라도 언젠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증거 할 때에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고난이 있다고 세상의 악에 물들지 말고 신앙과 삶을 지켜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지킬 때 결국 반대자, 적대자들을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을 지키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구절이 성경에 몇 개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살전 4:3,4)”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니 좀 힘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과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을 비교합니다. 우리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예수님을 배우고 닮는 고난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나? 남들이 겪지 않는 아픔을 당해야 하나? 어떤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잘 사는데, 나는 무거운 짐 지고 고생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생활의 고난, 죄의 고난이 있습니다. 무의미하고 열매가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받는 고난은 아름답고 영광스런 열매가 있습니다. 내면이 성화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더 나은 길(better way)’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베드로가 말하는 선을 행하는 것은 국가의 법을 지키고, 사회 질서를 지키고, 통치자에게 순복하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복종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불신 남편에게도 순복하는 것입니다. 악과 욕을 하는 사람에게도 복을 비는 것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도리어 욕을 먹습니다. 선을 행했는데 고난을 받으면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에, 불신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양심을 깨우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4장부터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세례 받은 신자가 세상에서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은 전쟁터에 있습니다. 죄와 사탄과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7-9절을 보십시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말세를 사는 성도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할 때 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되고 죄의 유혹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말세는 고난이 많아지는 때이니 우리는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의 선한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 상처를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살다가는 외롭게 혼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미움의 종노릇을 하면서 혼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거든 얼마나 용서를 해야 합니까? “세 네 번 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끊임없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형제의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대접할 때 신자의 공동체는 건강하고 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각 받은 은사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합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10,11).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를 주신 것은 공동체를 섬기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은사는 사용할수록 더 잘 개발이 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은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은사를 사용할 때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섬김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동역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희생없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 속에서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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