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4강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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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4 강
말씀 | 베드로전서 2:11-3:7
요절 | 베드로전서 2:12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선한 행실에 힘을 쓰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권면합니다. 저희가 불신의 시대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을 가지라(11-17). 1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선한 행실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소원으로서 성적 욕망, 재산 등 물질적 가치들에 대한 욕망, 세상 명예에 대한 욕심 등을 말합니다. 제어한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멀리 하다’, ‘피하다’, ‘끊다’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8: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골로새서 3:5절에서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sexual immorality)과 부정(impurity)과 사욕(lust)과 악한 정욕(evil desires)과 탐심(greed)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소원을 부인하고 끊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죄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죄의 종이 되어 질질 끌려 다닙니다. 그러니까, 죄는 독이 발린 사탕과 같습니다. 그 사탕을 먹으면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그 안에 있는 독이 나를 병들게 만들고 죽게 만듭니다. 이게 죄의 속성입니다. 본래 우리는 일평생 죄의 종이 되어 모든 소망을 잃고 어두움 가운데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열매만 맺으며 살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보내어 주셔서 죄사함을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날마다 각자의 죄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죄사함을 주시고 또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맛본 신자들에게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선한 행실을 가르치십니다. 선한 것이 별로 없는 우리가 어떻게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정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 때,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선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16절에서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한 사람의 모든 죄와 악이 다 쏟아져 나오는 곳입니다. 극한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온갖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못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오랫동안 사형집행을 하면서 극한 고통속에서 온갖 욕을 퍼붓는 사형수들을 지켜봤던 백부장은 예수님의 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이방인 군인의 입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고백되었습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울 왕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싸웠고 많은 공을 세웠는데, 사울 왕은 이런 그를 시기하여 여러 차례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죽음과 나 사이는 한 걸음 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죽음의 위협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사울 왕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그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사울 왕을 기름 부어서 세웠기에 부하들이 사울 왕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의 선한 행동은 사울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비록 사울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과연 다윗은 메시야의 그림자 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윗의 삶은 로마서 12:19-21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 JBF 학생들이 주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깊이 누리므로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할 때 타당합니다. 왕정에서는 왕이 최고 권력자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고 권력이 시민이고 대통령이나 관료들은 그 권세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은 공복들입니다. 공복들이 악을 자행하고 선을 파괴한다면 헌법에 따라서 평화적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16절, 17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이지만 더 성숙한 자세는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왕, 신자, 비신자 모두를 아끼고 존중해야 합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며 삼갈 때 그것이 좋은 영향력을 끼칩니다.
둘째, 사환으로써 주인에게 가져야 하는 자세(18-25). 18절을 보십시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들은 당시 노예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고 인권도 재산권도 없었습니다. 사회의 밑바닥에 살면서 말을 할 수 있는 당나귀 취급을 받았습니다.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까다로운 주인들, 성질이 뒤틀린 주인들은 공연히 트집을 잡아 윽박지르거나 혹독한 벌을 내립니다. 이런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사환들은 이런 주인에게도 인내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9-21절을 보십시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본을 보이셨습니까? 22, 23절을 보십시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그는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조롱을 당하시고 악담과 폭력을 경험하셨지만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위협은 커녕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스스로 심판을 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었지만 이제는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습니다(25).
셋째, 선한 행실은 아름다운 가정 교회를 세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1-7절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순종과 사랑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아내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이 말씀을 볼 때 당시 사회는 믿는 아내와 불신자 남편이 많았습니다. 크리스천 아내들이 남편을 무시하지 말고 그의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할 때 가정에 화목을 이루고 남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말이 아닌 그 행실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또한 아내는 자기를 단장해야 하는데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합니다. (Rather, it should be that of your inner self,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of great worth in God’s sight.) 남편들은 아내들이 외모를 잘 단장할 때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모를 예쁘게 꾸몄더라도 아내가 하는 말 한마디, 태도 하나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이 사그라집니다. 외모보다 더 남편을 감동시키고 사랑하게 만드는 ‘단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화장품, 고가의 옷, 성형이 아닌 온유와 안정된 심령으로 하는 단장입니다. 이는 부족한 남편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고 끝까지 온유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남편을 어떤 경우에도 높이고 신뢰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습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이 자기를 애굽 왕궁에 팔아버릴 때에도 주라 칭하여 순종했습니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네가 내 남편이냐 원망하면서 관계를 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은 아내에 대한 지식을 따라서 (considerate) 아내와 동거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재능이 무엇이고 성품이 어떠하며 장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도 필요합니다. 이런 지식을 따라 사려 깊게 아내와 동거할 때 아내를 행복하게 할 수 있고 가정도 더욱 화평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알아야 할 것 중에 한 가지는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체적인 면에서, 또한 사회 여건상 대개 아내들이 남자보다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말고 보호해야 합니다.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아내를 막 대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의 관계성이 잘 맺혀 있을 때라야 하나님은 그가 드리는 기도를 받으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면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이 있을지라도 선한 행실을 나타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원수들의 핍박과 조롱 가운데서도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의 본을 잘 배워서 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베드로전서 2:11-3:7
요절 | 베드로전서 2:12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선한 행실에 힘을 쓰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권면합니다. 저희가 불신의 시대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을 가지라(11-17). 1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선한 행실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소원으로서 성적 욕망, 재산 등 물질적 가치들에 대한 욕망, 세상 명예에 대한 욕심 등을 말합니다. 제어한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멀리 하다’, ‘피하다’, ‘끊다’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8: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골로새서 3:5절에서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sexual immorality)과 부정(impurity)과 사욕(lust)과 악한 정욕(evil desires)과 탐심(greed)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소원을 부인하고 끊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죄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죄의 종이 되어 질질 끌려 다닙니다. 그러니까, 죄는 독이 발린 사탕과 같습니다. 그 사탕을 먹으면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그 안에 있는 독이 나를 병들게 만들고 죽게 만듭니다. 이게 죄의 속성입니다. 본래 우리는 일평생 죄의 종이 되어 모든 소망을 잃고 어두움 가운데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열매만 맺으며 살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보내어 주셔서 죄사함을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날마다 각자의 죄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죄사함을 주시고 또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맛본 신자들에게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선한 행실을 가르치십니다. 선한 것이 별로 없는 우리가 어떻게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정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 때,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선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16절에서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한 사람의 모든 죄와 악이 다 쏟아져 나오는 곳입니다. 극한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온갖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못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오랫동안 사형집행을 하면서 극한 고통속에서 온갖 욕을 퍼붓는 사형수들을 지켜봤던 백부장은 예수님의 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이방인 군인의 입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고백되었습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울 왕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싸웠고 많은 공을 세웠는데, 사울 왕은 이런 그를 시기하여 여러 차례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죽음과 나 사이는 한 걸음 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죽음의 위협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사울 왕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그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사울 왕을 기름 부어서 세웠기에 부하들이 사울 왕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의 선한 행동은 사울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비록 사울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과연 다윗은 메시야의 그림자 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윗의 삶은 로마서 12:19-21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 JBF 학생들이 주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깊이 누리므로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할 때 타당합니다. 왕정에서는 왕이 최고 권력자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고 권력이 시민이고 대통령이나 관료들은 그 권세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은 공복들입니다. 공복들이 악을 자행하고 선을 파괴한다면 헌법에 따라서 평화적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16절, 17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이지만 더 성숙한 자세는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왕, 신자, 비신자 모두를 아끼고 존중해야 합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며 삼갈 때 그것이 좋은 영향력을 끼칩니다.
둘째, 사환으로써 주인에게 가져야 하는 자세(18-25). 18절을 보십시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들은 당시 노예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고 인권도 재산권도 없었습니다. 사회의 밑바닥에 살면서 말을 할 수 있는 당나귀 취급을 받았습니다.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까다로운 주인들, 성질이 뒤틀린 주인들은 공연히 트집을 잡아 윽박지르거나 혹독한 벌을 내립니다. 이런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사환들은 이런 주인에게도 인내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9-21절을 보십시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본을 보이셨습니까? 22, 23절을 보십시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그는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조롱을 당하시고 악담과 폭력을 경험하셨지만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위협은 커녕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스스로 심판을 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었지만 이제는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습니다(25).
셋째, 선한 행실은 아름다운 가정 교회를 세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1-7절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순종과 사랑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아내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이 말씀을 볼 때 당시 사회는 믿는 아내와 불신자 남편이 많았습니다. 크리스천 아내들이 남편을 무시하지 말고 그의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할 때 가정에 화목을 이루고 남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말이 아닌 그 행실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또한 아내는 자기를 단장해야 하는데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합니다. (Rather, it should be that of your inner self,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of great worth in God’s sight.) 남편들은 아내들이 외모를 잘 단장할 때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모를 예쁘게 꾸몄더라도 아내가 하는 말 한마디, 태도 하나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이 사그라집니다. 외모보다 더 남편을 감동시키고 사랑하게 만드는 ‘단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화장품, 고가의 옷, 성형이 아닌 온유와 안정된 심령으로 하는 단장입니다. 이는 부족한 남편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고 끝까지 온유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남편을 어떤 경우에도 높이고 신뢰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습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이 자기를 애굽 왕궁에 팔아버릴 때에도 주라 칭하여 순종했습니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네가 내 남편이냐 원망하면서 관계를 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은 아내에 대한 지식을 따라서 (considerate) 아내와 동거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재능이 무엇이고 성품이 어떠하며 장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도 필요합니다. 이런 지식을 따라 사려 깊게 아내와 동거할 때 아내를 행복하게 할 수 있고 가정도 더욱 화평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알아야 할 것 중에 한 가지는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체적인 면에서, 또한 사회 여건상 대개 아내들이 남자보다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말고 보호해야 합니다.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아내를 막 대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의 관계성이 잘 맺혀 있을 때라야 하나님은 그가 드리는 기도를 받으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면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이 있을지라도 선한 행실을 나타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원수들의 핍박과 조롱 가운데서도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의 본을 잘 배워서 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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