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벧전 1 강 (1:1-12) 산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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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제 1 강
말씀 | 베드로전서 1:1-12
요절 | 베드로전서 1:3
산소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지난주에 사도행전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새롭게 베드로전서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1세기 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였던 예수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가 당시 혹독한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참된 소망을 붙잡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우리가 그의 편지를 통해 믿는 자들이 붙잡아야할 소망이 무엇인지와 그 소망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는 자들의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2절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이 편지를 누구에게 쓰고 있습니까? 그들은 핍박으로 말미암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바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 의식을 행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피를 먹는 식인종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근친상간하는 자들이라는 오해를 했습니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율법과 성전을 파괴하는 자들이라 하고 로마황제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왕이라 한다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들을 세상에서 없이해야할 자들이라 생각하며 핍박했고 그로인해 1세기 성도들은 정든 집과 고향을 떠나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로인해 당하는 그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의 시련을 당하자 교회 안에는 믿음을 배반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떠나는 신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베드로는 이런 그들이 이 믿음의 시련을 어떻게 견디어야 하는지 그리고 믿음의 시련 가운데 그들이 이루어 가야할 구원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시련을 견디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이에 대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산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이것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1.2)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바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봅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있는 1세기 신자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소한 오해를 받아도 상처를 받고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식인종이라는 오해도 받고 율법과 성전을 폐하고 황제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고 집과 고향에서 쫓겨났으니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그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요? 이렇게 사람들에게 오해와 버림을 받을 때 보통 사람들은 열등감에 빠져 자신을 비천하게 여기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에게 오해와 핍박을 받고 있던 신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구원을 어떻게 얻게 된 것입니까? 벧전1: 2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미리 아셨고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던 그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셔서 순종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피뿌림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들이 가져야할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누구입니까? 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라는 믿음이 있나요? 이 믿음을 갖는 것이 바로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이 신자의 정체성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오해와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택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영광인지 모릅니다. 만일 저희 회사 사장님이 제가 일 잘 할 줄 믿고 재무담당임원을 시켜 주신다면 제게는 큰 은혜요 영광입니다. 하물며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며 저를 장관으로 택하여 불러 주신다면 이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가문에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희 회사 사장님보다 우리나라 대통령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세상을 통치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섬기는 동역자를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문의 영광을 넘어서 영원한 영광입니다. 이 은혜와 영광을 받은 자가 바로 신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비록 나그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이처럼 은혜받은 자요 이처럼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현재 당하는 믿음의 시련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믿음의 시련을 당하는 이유가 바로 내가 신자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 말씀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은혜받은 자요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의 시련을 감당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산소망이 있어야 합니다.(3,4) 3,4절을 봅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세기 신자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고 버림을 받아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합시다”라고 권면합니다. 1세기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볼 때 함께 울어줘도 시원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왜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을 위하여 간직하신 산소망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핍박을 받으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도 모두 빼앗기고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서럽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어찌 기뻐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할 수 있습니다. 소망은 그런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가진 하신 하나님의 유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사는 자는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해 보겠습니다. 산에는 산토끼가 있고 집에는 집토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산소망이 있고 믿는 없는 자들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소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과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세상소망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근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염려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떡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염려하다 예수님께 호되게 책망받은 일도 있었습니다.(마16:9,10)
그런데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 안에 있는 산소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영생의 삶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는 이 소망을 갖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영생과 하나님 나라 의 산소망 가운데 예수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산소망 때문에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삶의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절망하고 있다면 우리는 내 소망을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과연 내 안에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소망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안타깝게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소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소망을 허락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거듭난 자만이 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친구들을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행복한 자의 삶을 살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5-7)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근심합니다. 이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근심할 필요가 없을까요? 5,6절을 봅시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 고난은 잠깐이면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우리가 시험당할 때 또한 그 피할 길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10:13)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고난이 있나요? 어려움이 있나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라 ”라고 고백한 다윗과 같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이 계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이 갓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갓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길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힘들 때, 고난을 당할 때 가야할 길이 바로 갓길입니다. 하나님의 길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나가는 기도의 길입니다. 그 길을 보여 주실려는 것이, 오직 주님만이 그 길이 되심을 깨닫게 하실려는 것이 첫 번째 고난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이러한 고난 가운데 두시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려는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보석중에 보석인 금도 처음부터 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금광산에서 원석으로 나온 금은 용광로에 들어가 불순물을 다 태우고 그리고 단련을 받은 후에 마침내 찬란한 금빛을 발하는 보석으로 탄생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고난을 통해 인생의 연단을 받으면 금과 같이 우리의 믿음 안에 있는 세상소망과 불순물들이 다 태워지고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는 믿음, 순전한 믿음,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정금과 같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이 바로 그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따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마25:21절을 봅시다. 이 비유에 보며 주인이 두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중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여기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것이 칭찬입니다. 그리고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맡기리니” 이것이 존귀이고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바로 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는 것이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고난을 당한 신자의 바른 믿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신자의 정체성과 산소망에 대해 그리고 고난의 의미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썩지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소망을 하늘에 간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그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고 고난을 통해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오늘날은 1세기 때와 같은 그런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또 다른 종류의 고난들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진학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 고3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중 하나를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내 인생의 길이 되시며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두 세상소망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산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말씀 | 베드로전서 1:1-12
요절 | 베드로전서 1:3
산소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지난주에 사도행전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새롭게 베드로전서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1세기 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였던 예수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가 당시 혹독한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참된 소망을 붙잡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우리가 그의 편지를 통해 믿는 자들이 붙잡아야할 소망이 무엇인지와 그 소망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는 자들의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2절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이 편지를 누구에게 쓰고 있습니까? 그들은 핍박으로 말미암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바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 의식을 행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피를 먹는 식인종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근친상간하는 자들이라는 오해를 했습니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율법과 성전을 파괴하는 자들이라 하고 로마황제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왕이라 한다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들을 세상에서 없이해야할 자들이라 생각하며 핍박했고 그로인해 1세기 성도들은 정든 집과 고향을 떠나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로인해 당하는 그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의 시련을 당하자 교회 안에는 믿음을 배반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떠나는 신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베드로는 이런 그들이 이 믿음의 시련을 어떻게 견디어야 하는지 그리고 믿음의 시련 가운데 그들이 이루어 가야할 구원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시련을 견디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이에 대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산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이것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1.2)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바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봅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있는 1세기 신자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소한 오해를 받아도 상처를 받고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식인종이라는 오해도 받고 율법과 성전을 폐하고 황제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고 집과 고향에서 쫓겨났으니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그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요? 이렇게 사람들에게 오해와 버림을 받을 때 보통 사람들은 열등감에 빠져 자신을 비천하게 여기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에게 오해와 핍박을 받고 있던 신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구원을 어떻게 얻게 된 것입니까? 벧전1: 2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미리 아셨고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던 그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셔서 순종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피뿌림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들이 가져야할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누구입니까? 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라는 믿음이 있나요? 이 믿음을 갖는 것이 바로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이 신자의 정체성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오해와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택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영광인지 모릅니다. 만일 저희 회사 사장님이 제가 일 잘 할 줄 믿고 재무담당임원을 시켜 주신다면 제게는 큰 은혜요 영광입니다. 하물며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며 저를 장관으로 택하여 불러 주신다면 이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가문에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희 회사 사장님보다 우리나라 대통령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세상을 통치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섬기는 동역자를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문의 영광을 넘어서 영원한 영광입니다. 이 은혜와 영광을 받은 자가 바로 신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비록 나그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이처럼 은혜받은 자요 이처럼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현재 당하는 믿음의 시련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믿음의 시련을 당하는 이유가 바로 내가 신자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 말씀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은혜받은 자요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의 시련을 감당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산소망이 있어야 합니다.(3,4) 3,4절을 봅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세기 신자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고 버림을 받아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합시다”라고 권면합니다. 1세기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볼 때 함께 울어줘도 시원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왜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을 위하여 간직하신 산소망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핍박을 받으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도 모두 빼앗기고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서럽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어찌 기뻐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할 수 있습니다. 소망은 그런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가진 하신 하나님의 유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사는 자는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해 보겠습니다. 산에는 산토끼가 있고 집에는 집토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산소망이 있고 믿는 없는 자들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소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과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세상소망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근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염려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떡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염려하다 예수님께 호되게 책망받은 일도 있었습니다.(마16:9,10)
그런데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 안에 있는 산소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영생의 삶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는 이 소망을 갖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영생과 하나님 나라 의 산소망 가운데 예수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산소망 때문에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삶의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절망하고 있다면 우리는 내 소망을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과연 내 안에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소망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안타깝게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소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소망을 허락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거듭난 자만이 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친구들을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행복한 자의 삶을 살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5-7)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근심합니다. 이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근심할 필요가 없을까요? 5,6절을 봅시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 고난은 잠깐이면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우리가 시험당할 때 또한 그 피할 길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10:13)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고난이 있나요? 어려움이 있나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라 ”라고 고백한 다윗과 같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이 계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이 갓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갓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길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힘들 때, 고난을 당할 때 가야할 길이 바로 갓길입니다. 하나님의 길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나가는 기도의 길입니다. 그 길을 보여 주실려는 것이, 오직 주님만이 그 길이 되심을 깨닫게 하실려는 것이 첫 번째 고난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이러한 고난 가운데 두시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려는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보석중에 보석인 금도 처음부터 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금광산에서 원석으로 나온 금은 용광로에 들어가 불순물을 다 태우고 그리고 단련을 받은 후에 마침내 찬란한 금빛을 발하는 보석으로 탄생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고난을 통해 인생의 연단을 받으면 금과 같이 우리의 믿음 안에 있는 세상소망과 불순물들이 다 태워지고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는 믿음, 순전한 믿음,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정금과 같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이 바로 그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따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마25:21절을 봅시다. 이 비유에 보며 주인이 두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중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여기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것이 칭찬입니다. 그리고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맡기리니” 이것이 존귀이고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바로 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는 것이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고난을 당한 신자의 바른 믿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신자의 정체성과 산소망에 대해 그리고 고난의 의미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썩지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소망을 하늘에 간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그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고 고난을 통해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오늘날은 1세기 때와 같은 그런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또 다른 종류의 고난들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진학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 고3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중 하나를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내 인생의 길이 되시며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두 세상소망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산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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