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도행전 제25강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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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 25 강
말씀 | 사도행전 27:1-44
요절 | 사도행전 27:25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의 조언을 듣고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나 파선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조난을 당해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276명의 승객을 구원한 사건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바울의 리더십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일개 죄수의 몸이었지만 위기 상황을 통찰하고 기민하게 대처하였습니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함께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기로 결정되어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겨졌습니다. 누가는 그의 주치의로, 아리스다고는 개인 비서로 동행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배에는 다른 죄수 몇 사람도 탔는데 일반적으로 그들은 사형판결을 받은 자들로서 로마 원형극장에서 맹수들과 싸우기 위해 보내어지는 자들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드라뭇데노 배에 올라 항해를 하여 이튿날 시돈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서 율리오는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했습니다. 또 거기서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백부장이 이탈리아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승선하였습니다.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바꾸어 탄 것입니다. 이 배는 애굽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로마로 운송하는 큰 곡물운반선이었습니다. 이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하여, 무라 항을 거쳐 로마로 가는 배였습니다. 이 배가 무라 항을 떠나서 더디 가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도착하였습니다. 강한 북서풍을 만나 매우 어려운 항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레데 해안을 바람맞이로 삼아 그레데 섬 남쪽 중간에 있는 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미항을 출발할 때 바울은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였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이 금식하는 절기는 9-10월경으로 이 기간이 지나면 지중해 항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날씨로 변한다고 합니다. 3차에 걸쳐 이곳을 경유하며 전도 여행을 했던 바울은 세 차례나 파선을 당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고후11:25).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승객들의 안전보다 이익을 앞세웠습니다. 12절을 보면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좋은 호텔과 찜질방도 있고 즐길 곳이 많은 뵈닉스에 가서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자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일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듯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광풍을 만나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갔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 손으로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당시는 나침판이 없었습니다. 해와 별이 보이지 않으면 항해는 불가능했습니다. 배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언제 어디서 암초와 부딪칠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항해 전문가로서 실력과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보았지만 계속 되는 악천후 속에서 그들의 지식이나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리더는 이런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사도 바울은 자기 의로움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주고, 이제부터라도 자기 말을 따라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다시 권면합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고 오직 배뿐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절망적인 처지에서 어떻게 이렇게 희망적인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23-26절을 보십시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의 이런 확신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를 이런 희망의 메신저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무엇보다 위기의 때, 절망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그를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가장 처절하게 벌어지고 있던 역사의 비극적 현장 속에서 1863년 4월 30일 하루를 금식과 회개의 날로 공포하였습니다. 그는 공포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비극적 상황은 국민 각자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변화로부터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의 비서였던 로버트 루이스는 대통령이 매일 새벽 4시에 서재에 들어가 묵상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대통령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순풍을 만나 잘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않았던 광풍이 몰아쳐서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황을 수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더욱 꼬이고 상황은 늪에 빠진 것처럼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기뻐하시면 그 걸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인생의 태풍 앞에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평강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바울이 탄 배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 약 38미터 쯤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 즉 27미터였습니다. 이제 배가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였습니다. 닻을 네 개나 내린 것은 배가 이러저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 즉 구명정을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 살고자 이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수백명의 학생들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온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배에서 나와서는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던 장면입니다. 그들은 삯꾼 목자요 악한 리더들이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도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빙하가 떠내려 온다는 경고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입항하고자 하는 허영심 때문에 시속 22노트 초고속으로 달렸습니다. 결국 빙하와 충돌해서 1500명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람이 위기를 당할 때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여 파멸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위기인줄 알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변을 당합니다. 위기를 당하여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을 치다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 배에서 중요한 인물들인 선원들이 도망가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바울의 충고를 듣고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위기 상황에서 깨어 있었습니다. 자정인데도 자지 않고 배를 살피고 상황을 주시했습니다. 선원들이 없으면 배는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선원들이 배에 남아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구조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도록 도왔습니까? 날이 새어 가자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였습니다.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33-37).” 그들은 2주간 동안 심한 배 멀미와 풍랑과 싸우느라 먹지 못하고, 굶주렸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먹지 않으면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도 헤엄쳐 나올 힘이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했습니다. 지치면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힘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고 싸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 있어야 밥맛도 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하며 안심을 시켰습니다. 자신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떡을 떼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한 후, 남은 곡식을 바다에 버리게 했습니다. 배를 최대한 가볍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날이 새자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자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했습니다.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었습니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갔습니다. 이때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였습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었습니다.
바울을 보면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희생됨이 없이 무사히 다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자기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지고 자기 살 궁리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기에 더욱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약한 사람을 돌아보며 격려해 줍니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으로 뭉쳐야 합니다. 위기의 때에 참된 지도자는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있는 지도자로 자라도록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힘쓰며 그를 믿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나라와 캠퍼스와 양들과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서 깨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서 하나님과 캠퍼스 양들을 충성스럽게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사도행전 27:1-44
요절 | 사도행전 27:25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의 조언을 듣고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나 파선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조난을 당해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276명의 승객을 구원한 사건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바울의 리더십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일개 죄수의 몸이었지만 위기 상황을 통찰하고 기민하게 대처하였습니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함께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기로 결정되어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겨졌습니다. 누가는 그의 주치의로, 아리스다고는 개인 비서로 동행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배에는 다른 죄수 몇 사람도 탔는데 일반적으로 그들은 사형판결을 받은 자들로서 로마 원형극장에서 맹수들과 싸우기 위해 보내어지는 자들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드라뭇데노 배에 올라 항해를 하여 이튿날 시돈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서 율리오는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했습니다. 또 거기서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백부장이 이탈리아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승선하였습니다.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바꾸어 탄 것입니다. 이 배는 애굽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로마로 운송하는 큰 곡물운반선이었습니다. 이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하여, 무라 항을 거쳐 로마로 가는 배였습니다. 이 배가 무라 항을 떠나서 더디 가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도착하였습니다. 강한 북서풍을 만나 매우 어려운 항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레데 해안을 바람맞이로 삼아 그레데 섬 남쪽 중간에 있는 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미항을 출발할 때 바울은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였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이 금식하는 절기는 9-10월경으로 이 기간이 지나면 지중해 항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날씨로 변한다고 합니다. 3차에 걸쳐 이곳을 경유하며 전도 여행을 했던 바울은 세 차례나 파선을 당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고후11:25).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승객들의 안전보다 이익을 앞세웠습니다. 12절을 보면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좋은 호텔과 찜질방도 있고 즐길 곳이 많은 뵈닉스에 가서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자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일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듯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광풍을 만나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갔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 손으로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당시는 나침판이 없었습니다. 해와 별이 보이지 않으면 항해는 불가능했습니다. 배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언제 어디서 암초와 부딪칠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항해 전문가로서 실력과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보았지만 계속 되는 악천후 속에서 그들의 지식이나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리더는 이런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사도 바울은 자기 의로움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주고, 이제부터라도 자기 말을 따라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다시 권면합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고 오직 배뿐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절망적인 처지에서 어떻게 이렇게 희망적인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23-26절을 보십시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의 이런 확신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를 이런 희망의 메신저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무엇보다 위기의 때, 절망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그를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가장 처절하게 벌어지고 있던 역사의 비극적 현장 속에서 1863년 4월 30일 하루를 금식과 회개의 날로 공포하였습니다. 그는 공포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비극적 상황은 국민 각자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변화로부터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의 비서였던 로버트 루이스는 대통령이 매일 새벽 4시에 서재에 들어가 묵상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대통령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순풍을 만나 잘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않았던 광풍이 몰아쳐서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황을 수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더욱 꼬이고 상황은 늪에 빠진 것처럼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기뻐하시면 그 걸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인생의 태풍 앞에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평강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바울이 탄 배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 약 38미터 쯤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 즉 27미터였습니다. 이제 배가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였습니다. 닻을 네 개나 내린 것은 배가 이러저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 즉 구명정을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 살고자 이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수백명의 학생들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온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배에서 나와서는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던 장면입니다. 그들은 삯꾼 목자요 악한 리더들이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도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빙하가 떠내려 온다는 경고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입항하고자 하는 허영심 때문에 시속 22노트 초고속으로 달렸습니다. 결국 빙하와 충돌해서 1500명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람이 위기를 당할 때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여 파멸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위기인줄 알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변을 당합니다. 위기를 당하여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을 치다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 배에서 중요한 인물들인 선원들이 도망가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바울의 충고를 듣고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위기 상황에서 깨어 있었습니다. 자정인데도 자지 않고 배를 살피고 상황을 주시했습니다. 선원들이 없으면 배는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선원들이 배에 남아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구조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도록 도왔습니까? 날이 새어 가자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였습니다.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33-37).” 그들은 2주간 동안 심한 배 멀미와 풍랑과 싸우느라 먹지 못하고, 굶주렸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먹지 않으면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도 헤엄쳐 나올 힘이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했습니다. 지치면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힘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고 싸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 있어야 밥맛도 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하며 안심을 시켰습니다. 자신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떡을 떼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한 후, 남은 곡식을 바다에 버리게 했습니다. 배를 최대한 가볍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날이 새자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자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했습니다.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었습니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갔습니다. 이때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였습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었습니다.
바울을 보면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희생됨이 없이 무사히 다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자기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지고 자기 살 궁리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기에 더욱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약한 사람을 돌아보며 격려해 줍니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으로 뭉쳐야 합니다. 위기의 때에 참된 지도자는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있는 지도자로 자라도록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힘쓰며 그를 믿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나라와 캠퍼스와 양들과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서 깨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서 하나님과 캠퍼스 양들을 충성스럽게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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