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특강말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요2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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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특강말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20:18-31
요절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샬롬, 미국의 워싱톤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다니던 교회에 어떤 분이 전화를 하셔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오늘 예배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석하십니까?” 그때 전화를 받으신 교회 직원이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오시는지 안오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친구들이 오늘 예배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예배에 예수님이 와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 안에 찾아와 주시고 말씀과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과학 문명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불의 발견”입니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비로소 원시적인 야만생활에서 벗어나 음식을 익혀 먹고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발달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여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를 지금 준비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해서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나 드론의 등장으로 없어지는 직업이 많고 먹거리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신사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인류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이 땅에 오신 구원자라는 발견한 것입니다. 이 발견이 인류의 삶에 가져다 준 영향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 발견을 한 사람들의 삶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도마가 도대체 무엇을 발견했고 무엇을 고백했는지 그리고 그의 삶이 그 후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도마와 같이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마리아야” 불러 주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마리아는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열 두 제자들에게 전한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제자들입니다. 19절을 봅시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이 모였을 때에 유대인들이 두려워 방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방문을 열지도 않으시고 벽을 뚫고 그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면서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 구약을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립니다.(왕상17:22)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눅7:14)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막5:41)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요11:44)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렸습니다. (행20:9)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나 다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육적인 몸으로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방문이 잠긴 방에 벽을 뚫고 들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시 죽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말해 줍니다. 인류 역사상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심지어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사셨고 다시 죽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가 인간이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만드신 분이시요 초법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죽음이라는 자연법칙을 그 위에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일관되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불신자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20:20절을 읽어 봅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제자들이 주를 보고 어떻게 됐습니까? 방금까지 슬픔과 두려움에 쌓여 있던 제자들 안에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슬픔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입니다.
다같이 20:24,25절을 읽어 봅시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열 제자들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한마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겠노라 말합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보았다고 하는 그 분이 영이신지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이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손에 못 자국을 넣으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는 의심이 많은 것보다도 매우 정직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믿는다고 할 때 그도 그러면 나도 다수결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아주 정직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나는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믿으려면 이렇게 해 봐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도마의 모습은 실상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잘 되게 해 주시면 믿겠다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본질상 도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신앙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은 단순하게 믿어지는 것도 있지만 도마와 같이 보여줘야 체험을 해야 믿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봅시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신지 여드레 즉 8일이 지나서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도 제자들은 방문을 닫고 있었는데 그때도 예수님은 방문을 노크하지 않으시고 벽을 뚫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번과 똑같이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8일이 지나서 다시 나타나신 이유는 다른 제자들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를 만나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평강이 넘치는데 도마만이 의심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내가 믿음이 없고 의심이 많으면 예수님이 찾아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음이 없어 의심하고 불안에 휩싸여 있는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만나 주시고 그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다.
27절을 봅시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놀랍게도 8일 전에 그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한 그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도마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봐야 믿겠다고 체험이 있어야 믿겠다고 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믿을 수 있다면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는 것보다 믿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실상 도마가 예수님을 만져봐야 믿겠다고 한 것은 믿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믿으려 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믿으려 하지만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도마와 같이 얼마든지 주님께 요청할 수 있습니다. “주님, 보여주세요.” 주님은 이런 도마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 주셨습니다. 이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요청도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믿는 자가 되기 위해 주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부활하신 하신 예수님이 도마를 찾아 오셨듯이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28절을 읽어 봅시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는 그의 손을 넣어 손에 못 자국을 만져 보고 옆구리에 창자국도 만져보았습니다. 그 후에 그의 마음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그를 찾아오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도마 안에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반을 함께 살면서도 발견하지 못한 예수님을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 분은 하나님이시요 구원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를 찾아오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류는 불을 발견했을 때 야만의 삶에서 문명의 삶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발견할 때 우리의 삶은 죄와 사망에서 생명과 평안의 삶으로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삶의 변화가 도마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재발견한 도마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도마에게 주시는 사명의 말씀입니다. 도마는 정직한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보지 않고는, 체험하지 않고는, 실증되지 않고는 믿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고 만져 본 후에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믿게 될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만져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을 자들, 만지지 못하고 믿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믿도록 도우라는 말씀이 도마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깊이 영접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복음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다 그는 인도에까지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일생에 최대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과 평안의 세계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던지 1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던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나의 입술로 나의고백으로 드릴 수 있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친구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일생동안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복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20:18-31
요절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샬롬, 미국의 워싱톤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다니던 교회에 어떤 분이 전화를 하셔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오늘 예배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석하십니까?” 그때 전화를 받으신 교회 직원이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오시는지 안오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친구들이 오늘 예배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예배에 예수님이 와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 안에 찾아와 주시고 말씀과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과학 문명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불의 발견”입니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비로소 원시적인 야만생활에서 벗어나 음식을 익혀 먹고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발달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여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를 지금 준비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해서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나 드론의 등장으로 없어지는 직업이 많고 먹거리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신사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인류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이 땅에 오신 구원자라는 발견한 것입니다. 이 발견이 인류의 삶에 가져다 준 영향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 발견을 한 사람들의 삶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도마가 도대체 무엇을 발견했고 무엇을 고백했는지 그리고 그의 삶이 그 후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도마와 같이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마리아야” 불러 주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마리아는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열 두 제자들에게 전한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제자들입니다. 19절을 봅시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이 모였을 때에 유대인들이 두려워 방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방문을 열지도 않으시고 벽을 뚫고 그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면서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 구약을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립니다.(왕상17:22)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눅7:14)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막5:41)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요11:44)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렸습니다. (행20:9)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나 다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육적인 몸으로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방문이 잠긴 방에 벽을 뚫고 들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시 죽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말해 줍니다. 인류 역사상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심지어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사셨고 다시 죽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가 인간이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만드신 분이시요 초법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죽음이라는 자연법칙을 그 위에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일관되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불신자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20:20절을 읽어 봅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제자들이 주를 보고 어떻게 됐습니까? 방금까지 슬픔과 두려움에 쌓여 있던 제자들 안에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슬픔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입니다.
다같이 20:24,25절을 읽어 봅시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열 제자들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한마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겠노라 말합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보았다고 하는 그 분이 영이신지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이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손에 못 자국을 넣으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는 의심이 많은 것보다도 매우 정직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믿는다고 할 때 그도 그러면 나도 다수결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아주 정직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나는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믿으려면 이렇게 해 봐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도마의 모습은 실상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잘 되게 해 주시면 믿겠다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본질상 도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신앙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은 단순하게 믿어지는 것도 있지만 도마와 같이 보여줘야 체험을 해야 믿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봅시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신지 여드레 즉 8일이 지나서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도 제자들은 방문을 닫고 있었는데 그때도 예수님은 방문을 노크하지 않으시고 벽을 뚫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번과 똑같이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8일이 지나서 다시 나타나신 이유는 다른 제자들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를 만나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평강이 넘치는데 도마만이 의심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내가 믿음이 없고 의심이 많으면 예수님이 찾아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음이 없어 의심하고 불안에 휩싸여 있는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만나 주시고 그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다.
27절을 봅시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놀랍게도 8일 전에 그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한 그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도마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봐야 믿겠다고 체험이 있어야 믿겠다고 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믿을 수 있다면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는 것보다 믿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실상 도마가 예수님을 만져봐야 믿겠다고 한 것은 믿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믿으려 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믿으려 하지만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도마와 같이 얼마든지 주님께 요청할 수 있습니다. “주님, 보여주세요.” 주님은 이런 도마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 주셨습니다. 이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요청도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믿는 자가 되기 위해 주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부활하신 하신 예수님이 도마를 찾아 오셨듯이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28절을 읽어 봅시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는 그의 손을 넣어 손에 못 자국을 만져 보고 옆구리에 창자국도 만져보았습니다. 그 후에 그의 마음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그를 찾아오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도마 안에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반을 함께 살면서도 발견하지 못한 예수님을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 분은 하나님이시요 구원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를 찾아오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류는 불을 발견했을 때 야만의 삶에서 문명의 삶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발견할 때 우리의 삶은 죄와 사망에서 생명과 평안의 삶으로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삶의 변화가 도마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재발견한 도마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도마에게 주시는 사명의 말씀입니다. 도마는 정직한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보지 않고는, 체험하지 않고는, 실증되지 않고는 믿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고 만져 본 후에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믿게 될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만져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을 자들, 만지지 못하고 믿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믿도록 도우라는 말씀이 도마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깊이 영접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복음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다 그는 인도에까지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일생에 최대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과 평안의 세계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던지 1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던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나의 입술로 나의고백으로 드릴 수 있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친구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일생동안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복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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