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6강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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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6 강
말씀 | 누가복음 4:16-44
요절 | 누가복음 4:43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본격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탄의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역사하여 사람들이 변화가 되고 치료가 일어나고 인생들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 동네에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복음의 은혜를 깊이 영접하고 누리고 나누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님은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자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셨습니다.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셨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는데 예수님께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하는데 안식의 해를 7회 거듭한 후에 오는 제50년째의 해를 말합니다.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이 해에는 팔렸던 토지를 원소유주에게로 돌리고, 노예는 모두 해방됩니다. 참된 희년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가난한 자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육의 양식이 있다고 해서 내 내면이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우리 안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참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그의 말씀을 향해서 배고파하고 갈급해할 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갈급함을 채워줍니다. 사람들은 텅빈 마음을 채우고자 많은 것들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들로 내 마음에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깊이 인정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때, 복음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참 만족을 누립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가난한 심령,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죄와 마귀의 포로 된 자들이 그의 권세 있는 말씀을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두려움의 포로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평강을 누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게임의 포로된 자가 거기서 자유를 얻고 음란의 포로된 자가 자유롭게 되어 경건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에 있던 자들이 빛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눈 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눌린 자들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노예된 상태에서 죄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며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24)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오직 시돈 땅의 사렙다의 한 과부가 엘리야의 도움을 받은 사실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한 것처럼 그들의 잘못된 선민의식에 도전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배우고 그 발자취를 좇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순종을 드렸기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있던 그들은 회개하는 대신 더욱 완악해져서 분노하여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에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습니다.
둘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이제는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위가 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이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과 본질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힘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마침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렀습니다. 34절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증거되자 사람들 속에 숨어 있던 귀신들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훼방하였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 알고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왔지만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36절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라며 감탄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졌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 속에 있는 더럽고 악한 영을 몰아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서 더러운 생각과 악한 말들이 떠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대하게 선포되는 곳에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한 영들이 떠나고 그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깨끗한 양심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모든 더럽고 어둡고 부정적인 영의 세력들이 떠나가는 은혜를 깊이 체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가보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님께 치료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이 끝나고 해 질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고 고쳐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터치하시며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치료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아직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낼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귀신의 역사와 관계있는 것으로 오해를 살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귀신의 증거를 금하셨습니다.
넷째,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밤늦도록 병자들을 일일이 치료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몹시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기도하셨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바쁘신 중에서 힘있게 사역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동네들에서도 전해야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 유대에 전하기 위해서 오셨고 제자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계시면서 사람들의 존경과 대접 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접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역사가 갈릴리 가버나움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원하십니다(마28:19,20, 행1:8).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주의 은혜의 해, 진정한 희년이 임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와 사탄의 세력, 질병, 각종 중독 등에 포로되어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이렇게 포로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은 무엇에 눌러 있고 포로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유케 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나의 여러 문제를 들고 주 예수님께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자유를 깊이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큰 기쁨 가운데 이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4:16-44
요절 | 누가복음 4:43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본격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탄의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역사하여 사람들이 변화가 되고 치료가 일어나고 인생들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 동네에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복음의 은혜를 깊이 영접하고 누리고 나누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님은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자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셨습니다.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셨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는데 예수님께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하는데 안식의 해를 7회 거듭한 후에 오는 제50년째의 해를 말합니다.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이 해에는 팔렸던 토지를 원소유주에게로 돌리고, 노예는 모두 해방됩니다. 참된 희년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가난한 자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육의 양식이 있다고 해서 내 내면이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우리 안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참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그의 말씀을 향해서 배고파하고 갈급해할 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갈급함을 채워줍니다. 사람들은 텅빈 마음을 채우고자 많은 것들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들로 내 마음에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깊이 인정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때, 복음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참 만족을 누립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가난한 심령,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죄와 마귀의 포로 된 자들이 그의 권세 있는 말씀을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두려움의 포로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평강을 누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게임의 포로된 자가 거기서 자유를 얻고 음란의 포로된 자가 자유롭게 되어 경건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에 있던 자들이 빛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눈 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눌린 자들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노예된 상태에서 죄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며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24)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오직 시돈 땅의 사렙다의 한 과부가 엘리야의 도움을 받은 사실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한 것처럼 그들의 잘못된 선민의식에 도전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배우고 그 발자취를 좇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순종을 드렸기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있던 그들은 회개하는 대신 더욱 완악해져서 분노하여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에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습니다.
둘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이제는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위가 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이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과 본질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힘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마침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렀습니다. 34절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증거되자 사람들 속에 숨어 있던 귀신들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훼방하였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 알고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왔지만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36절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라며 감탄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졌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 속에 있는 더럽고 악한 영을 몰아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서 더러운 생각과 악한 말들이 떠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대하게 선포되는 곳에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한 영들이 떠나고 그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깨끗한 양심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모든 더럽고 어둡고 부정적인 영의 세력들이 떠나가는 은혜를 깊이 체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가보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님께 치료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이 끝나고 해 질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고 고쳐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터치하시며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치료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아직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낼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귀신의 역사와 관계있는 것으로 오해를 살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귀신의 증거를 금하셨습니다.
넷째,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밤늦도록 병자들을 일일이 치료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몹시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기도하셨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바쁘신 중에서 힘있게 사역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동네들에서도 전해야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 유대에 전하기 위해서 오셨고 제자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계시면서 사람들의 존경과 대접 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접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역사가 갈릴리 가버나움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원하십니다(마28:19,20, 행1:8).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주의 은혜의 해, 진정한 희년이 임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와 사탄의 세력, 질병, 각종 중독 등에 포로되어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이렇게 포로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은 무엇에 눌러 있고 포로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유케 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나의 여러 문제를 들고 주 예수님께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자유를 깊이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큰 기쁨 가운데 이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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