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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드로후서2강 "거짓선생을 조심하라"(벧후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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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17-02-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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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드로후서2강
말씀 | 베드로후서 2:1-22
요절 | 베드로후서 2:1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라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연약하고 미성숙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거짓선생에 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오늘날은 기독교 이단들이 거짓선생들입니다. 또한 복음의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잘 포장된 구복주의, 성공주의, 번영주의의 신학과 같은 세속주의 신앙도 이에 해당됩니다.  실상은 세속주의가 더 위협적입니다. 이와 같이 거짓진리와 기독교 이단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저는 여러분들과 심각하게 고민하며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장 거짓선생, 기독교 이단의 특징
1절 말씀을 봅시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이 말씀을 통해 사도베드로는 거짓 선생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거짓선생을 따르는 것은 자기를 사신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는 은삼십개를 받고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이는 그와 같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를 사신 주”란 뜻은 예수님이 우리를 그의 핏값을 주고 사셔서 당신의 보배로운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은혜,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은혜를, 주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일이 되는 일이라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생들을 분명히 분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는 거짓선생들과 기독교 이단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들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호색하는 것을 따릅니다. 2절을 봅시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 당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거짓선생들 중에는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들은 영은 거룩하고 육은 부정하다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그들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는 구원은 영의 구원이었고 육체의 방종이 영의 구원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상은 당시 육체의 정욕과 싸우며 지쳐있던 연약한 신자들에게는 죄의식에서 자유함을 주는 가르침으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진리와는 다른 거짓진리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히6:4) 예수님도 일곱 귀신들린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귀신이 나갔는데 다시 귀신에 들리게 되면 이전보다 나중에 더 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눅11:26) 오늘 본문 말씀에는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해진다고 했습니다.(벧후2:20)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죄짓는 일에 대해 구원과 관계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사신 주님께 받은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유함에 이르는 참된 그렇기에 예수님은 “네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8:32) 거짓진리로는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속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 이단이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목회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같이 호색을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이단 교주들의 공통점이라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인간은 본성이 권력을 가지면 호색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경건을 연단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는 그 열매로써 알 수 있다 하셨습니다.(마12:33) 참된 진리는 반드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거짓 진리를 분별하며 대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물질적인 이득을 추구합니다. 3절을 봅시다.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후서가 쓰여질 당시 이단들이 물질적인 이득을 얻고자 성경에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헌금을 강요하거나 교회를 이용해 비즈니스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독교 이단들의 특징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대표적인 기독교이단인 통일교는 일화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해 어머어마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는 신천지의 자산규모가 5천억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모그룹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구원파가 세월호 침몰로 큰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거짓진리를 좇는 모든 종교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고 그들을 추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의 거짓진리에 미혹된 것도 있지만 그들도 똑같이 호색과 물질을 추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 호색과 물질을 추구하려는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때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때만이 거짓진리에 미혹되지 않고 참된 진리의 길,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2장 거짓선생, 기독교 이단의 최후
이런 기독교 이단들의 실태와 그로 인한 피해를 알게 되면 참 마음이 답답해 집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이름으로 온갖 악을 자행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심판을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멸망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3절 하반절을 봅시다.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노아의 시대를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심판하시는 중에도 의인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 때문에 고통하던 의로운 롯을 건지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탐심에 눈멀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한 선지자 발람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무법한 시대에 불경한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시대를, 이런 사람들을 정죄만 할 것이 아닙니다. 10, 11절을 봅시다.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이 세상을 정죄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정죄와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연구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해야 할일이 무엇입니까?

3장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베드로후서3:18절을 봅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매년 명절이 되면 비상이 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위조지폐입니다. 5만원권이 생긴 이후로는 위조지폐에 대한 경계가 더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위조지폐를 식별하려면 위조지폐에 대해서 많은 시간 연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 위조지폐 전문가들은 정상지폐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위조지폐가 정상지폐와 다른 점을 식별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정상지폐에 비유한다면 거짓 선생, 기독교 이단들은 위조지폐에 해당합니다. 거짓 선생들과 기독교 이단들도 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참인지 거짓인지의 기준은 예수님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거짓인지 이단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사도행전4:1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런데 기독교 이단들은 예수님을 실패한 구원자라고 가르칩니다. 자신들의 교주가 구원자라 주장합니다. 사도행전1:4에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천사가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도(행1:4) 자신들의 교주가 재림 예수라고 믿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예수님을 알고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 공부는 성경지식을 얻고자 하는 공부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 때 구원이 임합니다. 예수님을 알 때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알 때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아는데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올해도 예수님을 더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기도하며 깊이 있게 말씀을 공부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를 통해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생과 이단을 경계하며 물리치도록 권면합니다. 그런데 그 권면의 결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아는데서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본성을 따라 호색과 탐욕을 따라는 자가 아니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교회에도 온갖 거짓과 탐욕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어디도 우리의 피난처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진리이시며 우리의 피할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전하기에 힘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올해도 예수님을 아는 일에 힘쓰므로 거짓진리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참된 진리를 전하는 자들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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