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35-58 부활절 2강 "부횔의 영광과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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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활절 제2강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57,58
부활의 영광과 승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 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18개월을 머물며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의 사역을 동역했고 마게도냐에서 온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면서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가 회심하는 등 고린도교회의 사역이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의 핍박이 거세지자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난 많은 문제들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아니 나는 그리스도파라” 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분파문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문제, 음행의 문제, 교인들끼리 소송을 하는 문제 등 고린도 교회는 이런 문제들로 풍지박산이 날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의 문제를 돕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왜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그것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전서13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주옥같은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들에게 아직 분명한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전서15장에서 부활을 말씀하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신앙생활이 예수님을 믿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신앙에서 자라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변화가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부활에 대해 배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그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과 정신은 선하고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을 신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원론에 근거해서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을 물질을 만든 저급한 신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을 과도하게 강조하였고 그리스도의 인성에 타격을 줄만한 신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살 때 가졌던 육체는 진짜 육체가 아니고 육체처럼 보였다고 주장하고, 또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이미 몸을 떠났다고 하며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죽은 것이 아니고 인간 예수가 죽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주장을 가현설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사신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셨음을 다시한번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증인들이 있으며 그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그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신 일이 없었을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 일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역설했습니다. 무엇보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을 때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며 이 세상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여주는 부활의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영광스런 부활과 그 후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 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이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고 만물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칠 그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라봐야할 진정한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가 입게 될 영광스런 부활의 몸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도 이 부활의 소망 가운데 날마다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인들 안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봅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 이고 두번째는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씨에 대한 비유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36-38절을 봅시다. “36.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여러분 식물의 씨를 보십시오. 이 씨가 장미꽃 씨라고 합시다. 우리가 이 씨를 보면서 장미꽃을 연상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미꽃 씨가 땅에 묻힌 후 발아하여 장미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몸이 부활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몸은 씨와 같습니다. 우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은 썩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부활할 우리의 몸은 육의 몸이 아닙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도 있고 짐승의 육체도 있고 새의 육체도 있고 물고기의 육체도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도구를 사용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되어 있고 짐승의 육체는 네발로 다니며 달리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고 새는 뼈 속이 비어 있고 날개가 있어 날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고 물고기는 몸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유선형으로 되어 있어서 물에 살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각자가 살아가는 환경에 맞도록 다른 육체를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에 적합한 부활의 몸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을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일까요? 43,44절을 봅시다.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우리가 받을 부활의 몸은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할 때는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50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한마디로 우리가 태어날 때 받은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려면 반드시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육의 몸은 반드시 죽고 썩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야할 궁극적인 소망은 무엇입니까? 51,52절을 봅시다.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이 가진 궁극적인 소망은 부활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죄악된 나로 인해, 변화되지 않는 나로 인해, 연약한 나로 인해, 많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나팔이 울릴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홀연히 다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변화되는 부분도 있고 변화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살기에 적합한 몸과 마음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런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부활의 산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55,56절을 봅시다.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사망을 이긴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사망에게 “사망에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57,58절을 봅시다.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모든 일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은 육의 몸 가운데 있어 때론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 대해 이미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이를 믿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정죄와 낙심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참된 소망을 품고 세상을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57,58
부활의 영광과 승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 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18개월을 머물며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의 사역을 동역했고 마게도냐에서 온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면서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가 회심하는 등 고린도교회의 사역이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의 핍박이 거세지자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난 많은 문제들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아니 나는 그리스도파라” 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분파문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문제, 음행의 문제, 교인들끼리 소송을 하는 문제 등 고린도 교회는 이런 문제들로 풍지박산이 날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의 문제를 돕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왜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그것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전서13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주옥같은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들에게 아직 분명한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전서15장에서 부활을 말씀하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신앙생활이 예수님을 믿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신앙에서 자라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변화가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부활에 대해 배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그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과 정신은 선하고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을 신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원론에 근거해서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을 물질을 만든 저급한 신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을 과도하게 강조하였고 그리스도의 인성에 타격을 줄만한 신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살 때 가졌던 육체는 진짜 육체가 아니고 육체처럼 보였다고 주장하고, 또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이미 몸을 떠났다고 하며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죽은 것이 아니고 인간 예수가 죽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주장을 가현설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사신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셨음을 다시한번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증인들이 있으며 그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그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신 일이 없었을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 일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역설했습니다. 무엇보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을 때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며 이 세상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여주는 부활의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영광스런 부활과 그 후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 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이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고 만물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칠 그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라봐야할 진정한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가 입게 될 영광스런 부활의 몸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도 이 부활의 소망 가운데 날마다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인들 안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봅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 이고 두번째는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씨에 대한 비유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36-38절을 봅시다. “36.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여러분 식물의 씨를 보십시오. 이 씨가 장미꽃 씨라고 합시다. 우리가 이 씨를 보면서 장미꽃을 연상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미꽃 씨가 땅에 묻힌 후 발아하여 장미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몸이 부활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몸은 씨와 같습니다. 우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은 썩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부활할 우리의 몸은 육의 몸이 아닙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도 있고 짐승의 육체도 있고 새의 육체도 있고 물고기의 육체도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도구를 사용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되어 있고 짐승의 육체는 네발로 다니며 달리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고 새는 뼈 속이 비어 있고 날개가 있어 날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고 물고기는 몸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유선형으로 되어 있어서 물에 살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각자가 살아가는 환경에 맞도록 다른 육체를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에 적합한 부활의 몸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을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일까요? 43,44절을 봅시다.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우리가 받을 부활의 몸은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할 때는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50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한마디로 우리가 태어날 때 받은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려면 반드시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육의 몸은 반드시 죽고 썩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야할 궁극적인 소망은 무엇입니까? 51,52절을 봅시다.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이 가진 궁극적인 소망은 부활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죄악된 나로 인해, 변화되지 않는 나로 인해, 연약한 나로 인해, 많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나팔이 울릴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홀연히 다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변화되는 부분도 있고 변화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살기에 적합한 몸과 마음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런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부활의 산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55,56절을 봅시다.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사망을 이긴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사망에게 “사망에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57,58절을 봅시다.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모든 일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은 육의 몸 가운데 있어 때론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 대해 이미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이를 믿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정죄와 낙심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참된 소망을 품고 세상을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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