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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고린도후서 제 7 강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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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18-02-1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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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고린도후서 제 7 강
말씀 | 고린도후서 8,9장
요절 | 고린도후서 8:7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제국을 통치할 당시 제국 곳곳에 연이은 흉작과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 영향이 예루살렘에도 미쳤습니다. 그로인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가난하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을 돕고자 안디옥 교회와 고린도 교회 그리고 마게도야 교회들이 구제헌금을 작정하였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복음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초신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환란과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고자 넘치는 구제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이는 첫째로 그들 안에 복음을 받은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시련은 우리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보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면 손해의식과 불평이 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야 성도들은 이 모든 환란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환란과 시련으로 궁핍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도록 헌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비밀입니다. 우리 속담에 곡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곡간에 쌓아 놓은 것이 많아야 베풀 수 있는 인심이 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볼 때 우리 마음에 복음의 은혜 충만할 때 곡간이 비어 있어도 인심이 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복음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때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는 삶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은혜로 충만한 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복음을 전해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롬10:13-15을 봅시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해 주지 않는다면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고 믿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중요함을 노래한 것입니다. 마게도야 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들은 사도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는 초신자였지만 그들의 삶은 매우 모범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 교회에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편지를 쓰기 일년 전에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헌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때문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구제헌금에 대한 그들의 작정함을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에게도 자랑했습니다. 그 때문에 마게도냐 교회들도 도전을 받고 열심을 내어 구제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작정한 헌금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지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서로의 허물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고린도 교회 의 허물을 모른 척, 못 본 척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부담스러워하고 마음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들의 문제를 분명히 지적해 줍니다.

6,7절을 봅시다. “6.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많은 은혜로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뛰어난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계신인 말씀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바울을 통해 받은 말씀과 복음의 지식에 대한 특출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말이란 이는 그들이 받은 말씀과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은사를 의미합니다. 지식은 말씀의 계시에 대한 이해를 말합니다. 또한 모든 간절함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분열과 음행과 다른 복음을 퍼뜨리는 이들에게 징계를 가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여 교회를 정화시킨 그들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들은 이 모든 은혜에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년 전에 작정한 구제헌금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도 성취하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왜 이 은혜를 성취하라고 합니다. 이는 이 은혜를 성취할 때 그들의 신앙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은혜를 성취할 때 더 풍성하게 체험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들의 사랑이 진실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사도요한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돕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제헌금을 성취함으로 그들의 사랑이 진실함을 증명하라 한 것입니다.

둘째로 부요하신 자로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세상은 그의 의해 또한 그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부요하기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섬기기 위해 내 것을 내놓고 헌신하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을 본받고 배우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으로부터 오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나눌 때 후히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알 수도 세상이 줄 수도 없는 신령한 은혜입니다.

셋째로 이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균등하게 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봅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우리가 없는 형편에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구제에 힘쓰다가 궁핍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고 구제에 힘 쓸 때 형제간에 균등하게 됨으로 서로를 돌아보는 일에 풍성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이 있고 형제를 구제할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이 꼭 돈이 아니어도 됩니다. 나의 시간, 재능 그것이 무엇이든 실상 그것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충북 청원에 가면 오웅진 신부님이 설립한 “꽃동네”라고 하는 사회복지시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돌봄이 필요한 많은 분들이 모여살고 있습니다. 신부님이 이 시설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그곳에 최귀동이란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그는 빌어먹고 사는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남의 것을 빌어다가 빌어먹을 힘조차 없는 분들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어떻게 이렇게 하시느냐 물으신 할아버지는 “빌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 말씀에 감동을 받고 신부님은 빌어먹을 힘조차 없는 분들을 돕고자 꽃동네를 만들게 되신 것입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비록 거지였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때 그는 빌어먹을 힘조차 없는 분들을 돕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 신부님의 마음을 감동케 했고 그 결과 꽃동네라고 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분들이 그 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작정한 구제헌금을 성취하라고 돕는데는 이와같이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이 은혜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가 받은 은혜는 더 풍성해 집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내게 주신 은혜를 적극 나누고 섬김으로 이 은혜를 더 풍성케 하는 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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