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자유|어린이|JBF|찬양부|기도요청|오케스트라|좋은글|도서부

눅35강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17-10-29 10:36

본문

2017년 누가복음 제 35 강

말씀 | 누가복음 22:47-23:25

요절 | 누가복음 23:14

심문 받으신 예수님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오늘 말씀은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심문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그는 아무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그는 십자가형을 받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불의한 심문 과정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이기시는 예수님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무장을 한 채로 다가왔습니다. 유다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입맞춤은 가장 사랑스럽고 신뢰할 만한 관계를 표시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해 그를 지목하는 수단으로 입맞춤을 사용하였습니다. 사탄에 사로잡혔을 때 그는 매우 비열하고 야비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쭈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예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였습니다(요18:11). 그는 칼을 휘두르면서 예수님이 나서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목숨 건 일전을 벌일 각오였습니다. 이미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그 앞에서 큰소리치며 맹세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52절,5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는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순순히 체포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고 미리 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당장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들을 보내시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마26:53). 하지만 주님은 스스로 무장해제  하시고 체포당하셨습니다.

    5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 들어갈 때에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를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대제사장의 집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습니다. 그는 끼지 말아야 할 곳에 끼어들었습니다.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떠들었습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그러자 베드로가 부인했습니다.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도 그 도당이라.” 베드로가 또 부인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말했습니다.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하며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었습니다. 이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61,6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63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그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고 물었습니다. “너를 친 자가 누구냐? 선지자 노릇하라.”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을 하였습니다.  날이 새자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공회로 끌어들여 심문하였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67-69절.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67b-69).” 그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그들은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몰아 사형을 시키고자 정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예수님을 사형시킬 권리가 없기 때문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 가서 고발했습니다. 23:2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반역을 도모하는 자로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빌라도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미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조사를 했고 그들의 증거가 거짓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분명하게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너무나 의외의 대답입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로마의 반역자로 오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야가 아님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무리는 그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말했습니다. 5절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빌라도는 이 재판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묻고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마침 헤롯이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였습니다. 그가 여러 말로 물었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자신에게 돌려보낸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 앞에서 말했습니다. 15,16절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그러자,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은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렀습니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였습니다. 무리들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을 석방시키고 죄없는 예수님을 사형시키라고 소동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세 번째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겼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리들의 불의한 소리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는 진리보다 자신의 자리와 정치적 안정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무리들의 압력과 거짓에 굴복한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는 지혜와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침묵하셨습니까? 이사야 53:7은 말씀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23-24절에 이렇게 썼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나에게 평화와 나음을 주시기 위해서, 죄인인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침묵하셨고 자신의 무장을 해제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놀리고 때리고 많은 욕을 할지라도 예수님의 마음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왕따를 당하면 그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시고 그들의 비난을 이기셨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기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의 온갖 모욕과 조롱 속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그 상황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비난하고 조롱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소리를 듣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정체성을 발견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며 그 상황을 이겼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무장해제하며  사람들의 죄악속에 자신을 내어놓으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결국  승리하실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죄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 받으며 여러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순종하므로 그들의 죄악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그 상황속에서 짓눌리지 않고 이길 수 있는가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정체성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정죄하고 있진 않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히 서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 처럼 극심한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 속에서, 사탄이 주는 생각 속에서 나 자신을 찾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이 끔찍히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독생자 예수님마저 아끼지 않고 주실 만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존재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존재요 예수님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분명한 인식,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내게 있을 많은 어려움들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의 선진들은 분명한 정체성과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의 말씀이 승리한다는 것을 믿었기에  고난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승리한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 심문과정을 보면 사람들의 거짓과 죄악이 진리를 압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악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의롭게 산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진리가 승리함을,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함을 믿고 자신을 무장해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배우겠지만 그 가르침대로 십자가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십지가에서는 아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진리를 붙잡으셨을 때 강도가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사형을 집행하는 백부장이 예수님을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결국 승리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회와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고 온갖 조롱과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기에, 결국 진리가 승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그 어려운 상황을 이기고 자신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도 예수님 처럼 분명한 정체성을 갖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들의 생각, 내  생각, 사탄이 주는 생각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진리가 반드시 승리함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95건 2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