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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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25 강
말씀 | 누가복음 16:1-31
요절 | 누가복음 16:9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두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잘 사용하므로 영원한 미래를 잘 준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1-13). 1절을 보십시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청지기에게 통보했습니다. 2절.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 직분을 빼앗기게 된 청지기는 앞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3절.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앞날을 준비하였습니다. 4절.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가 생각해낸 꾀는 직무를 정리하도록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대폭 탕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탕감 받은 사람들이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 청지기가 실직하고 나왔을 때 그를 영접하고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다가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는지를 묻고 채무 액수를 줄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기름 백 말을 빚졌다는 사람에게는 그가 빚질 때 썼던 증서를 내주며 빨리 앉아 오십으로 줄여서 쓰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앉아 이렇게 쓰라’고 한 말을 볼 때 청지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매우 급하게 일을 추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에게는 밀 백 석을 빚졌다고 하니 팔십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채무 규모를 줄여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이것은 주인의 재산을 횡령한 죄에 해당이 됩니다. 하지만, 채무자들에게는 상당한 혜택이 돌아가는 조치였기 때문에 채무자들은 청지기에게 매우 큰 고마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고마움 때문에 청지기가 일을 그만두게 되어 찾아가면 기꺼이 영접하고 여러 모로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도 이 청지기가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함과는 별개로 그의 지혜를 칭찬했습니다. 그 청지기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나중을 생각해서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을 영접할 사람을 만들어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8b). 이 세대의 아들들은 불신자들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오직 자신과 이 세상만 생각한다면, 불신자들이 신자들보다 지혜롭습니다. 그들은 나중을 생각해서 자기 앞 일을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노후를 위해서는 준비를 하는데 사후를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이들이 더 지혜롭다고 하셨습니다. 한편, 신자들이 이들에게 배울 점도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표현은 없어지는 재물,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으로만 유용한 재물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귀어야 할 친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사귐을 갖고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3:20에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 JBF 학생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예수님을 친구로 삼는 지혜로운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이 세상은 돈 자체를 친구로 삼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돈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 생각하며 돈 버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돈이 그를 배신합니다. 그렇게 돈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는데, 자동차 사고, 불치병으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가 사랑했던 돈은 그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재물로 예수님을 사귄 사람은 예수님이 그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주십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2차 대전 때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업가가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군용 식기공장에 유대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합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다 죽이는데 거기 채용된 유대인들은 군용 식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독일군들이 잡아가지 않습니다. 전쟁의 막바지에는 수백 만 마르크의 돈으로 독일 당국과 흥정을 해서 유대인 1,100명의 목숨을 구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쉰들러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독일군 측 식기 공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쉰들러를 보호해 줍니다. “당신이 우리를 친구삼고 살려 주었기 때문에 우리도 당신에게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금니를 빼서 반지를 만들어줍니다. 그 반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원함이로다(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entire world).”
10-12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과 ‘불의한 재물’은 이 땅의 재물입니다. 이와 대조되어 나오는 ‘큰 것’(10)과 ‘참된 것’(11)은 하늘의 재물들 곧 천국 기업과 상급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재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재물 즉 천국 기업과 상급을 맡기십니다. 이 땅의 재물에 충성하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재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재물을 잠시 사용하도록 위임 받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남의 것을 위탁 받은 청지기는 당연히 위탁 받은 재물을 주인의 뜻에 맞게 써야 합니다. 사실 내 생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청지기적인 자세로 충성하면 하나님은 그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하늘에서 우리의 것 즉 천국 재물들,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주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오늘날 재물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합니까? 잠언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우리가 그렇게 아끼며 저축했던 재물이 허무하게 날아 가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딤후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둘째,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19-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는 왕과 귀족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한편, 나사로라는 한 거지는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 배를 불리려고 하는 것처럼 불쌍하고 비참한 일이 있을까요? 이런 나사로에게는 남은 음식을 갖다 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도움과 자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는 그런 자선조차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지 나사로를 볼 때마다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가 생각할 때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나사로에게 눈곱만큼의 긍휼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장례식도 없이 누가 거적대기에 둘둘 말아 공동묘지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가 죽어 장사를 지낼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왔고 장례식 화환은 식장을 가득 매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었을 때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가 볼 때 나사로는 너무나 행복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 부자가 음부에서 아브라함에게 간구하였습니다. 24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의 목마름이 얼마나 심했는지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만 해도 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는 죽기 전에 운명을 바꿔야 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직무에서 배제되기 전 필사적으로 조치를 취했던 것처럼 우리도 죽기 전 살아 있을 동안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재물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 땅의 재물로 예수님을 친구 삼고 그의 뜻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25장을 보면 염소와 양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예수님께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의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나사로는 누구입니까? 그를 위해 재물을 쓰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위해 써는 것이 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시 받는 친구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께 한 것이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내게 있는 것으로 섬김으로 예수님을 친구 삼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다섯 형제도 자기와 같은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그들도 자신처럼 이곳 음부로 올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다섯 형제들이 삶의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은 누구에게 듣고 회개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결국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물을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위해 사용할 것도 무수히 가르칩니다(출22:22-24, 신24:10-22). 이런 가르침을 듣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가서 권하면 받아들일까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있어도 권함을 받지 않습니다. 재물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내게 있는 재물과 시간 등으로 예수님을 친구 삼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시 받는 한 사람,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믿음과 지혜를 주셔서 예수님을 친구 삼는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6:1-31
요절 | 누가복음 16:9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두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잘 사용하므로 영원한 미래를 잘 준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1-13). 1절을 보십시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청지기에게 통보했습니다. 2절.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 직분을 빼앗기게 된 청지기는 앞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3절.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앞날을 준비하였습니다. 4절.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가 생각해낸 꾀는 직무를 정리하도록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대폭 탕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탕감 받은 사람들이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 청지기가 실직하고 나왔을 때 그를 영접하고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다가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는지를 묻고 채무 액수를 줄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기름 백 말을 빚졌다는 사람에게는 그가 빚질 때 썼던 증서를 내주며 빨리 앉아 오십으로 줄여서 쓰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앉아 이렇게 쓰라’고 한 말을 볼 때 청지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매우 급하게 일을 추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에게는 밀 백 석을 빚졌다고 하니 팔십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채무 규모를 줄여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이것은 주인의 재산을 횡령한 죄에 해당이 됩니다. 하지만, 채무자들에게는 상당한 혜택이 돌아가는 조치였기 때문에 채무자들은 청지기에게 매우 큰 고마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고마움 때문에 청지기가 일을 그만두게 되어 찾아가면 기꺼이 영접하고 여러 모로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도 이 청지기가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함과는 별개로 그의 지혜를 칭찬했습니다. 그 청지기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나중을 생각해서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을 영접할 사람을 만들어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8b). 이 세대의 아들들은 불신자들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오직 자신과 이 세상만 생각한다면, 불신자들이 신자들보다 지혜롭습니다. 그들은 나중을 생각해서 자기 앞 일을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노후를 위해서는 준비를 하는데 사후를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이들이 더 지혜롭다고 하셨습니다. 한편, 신자들이 이들에게 배울 점도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표현은 없어지는 재물,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으로만 유용한 재물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귀어야 할 친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사귐을 갖고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3:20에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 JBF 학생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예수님을 친구로 삼는 지혜로운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이 세상은 돈 자체를 친구로 삼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돈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 생각하며 돈 버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돈이 그를 배신합니다. 그렇게 돈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는데, 자동차 사고, 불치병으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가 사랑했던 돈은 그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재물로 예수님을 사귄 사람은 예수님이 그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주십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2차 대전 때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업가가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군용 식기공장에 유대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합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다 죽이는데 거기 채용된 유대인들은 군용 식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독일군들이 잡아가지 않습니다. 전쟁의 막바지에는 수백 만 마르크의 돈으로 독일 당국과 흥정을 해서 유대인 1,100명의 목숨을 구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쉰들러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독일군 측 식기 공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쉰들러를 보호해 줍니다. “당신이 우리를 친구삼고 살려 주었기 때문에 우리도 당신에게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금니를 빼서 반지를 만들어줍니다. 그 반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원함이로다(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entire world).”
10-12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과 ‘불의한 재물’은 이 땅의 재물입니다. 이와 대조되어 나오는 ‘큰 것’(10)과 ‘참된 것’(11)은 하늘의 재물들 곧 천국 기업과 상급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재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재물 즉 천국 기업과 상급을 맡기십니다. 이 땅의 재물에 충성하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재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재물을 잠시 사용하도록 위임 받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남의 것을 위탁 받은 청지기는 당연히 위탁 받은 재물을 주인의 뜻에 맞게 써야 합니다. 사실 내 생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청지기적인 자세로 충성하면 하나님은 그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하늘에서 우리의 것 즉 천국 재물들,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주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오늘날 재물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합니까? 잠언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우리가 그렇게 아끼며 저축했던 재물이 허무하게 날아 가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딤후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둘째,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19-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는 왕과 귀족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한편, 나사로라는 한 거지는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 배를 불리려고 하는 것처럼 불쌍하고 비참한 일이 있을까요? 이런 나사로에게는 남은 음식을 갖다 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도움과 자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는 그런 자선조차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지 나사로를 볼 때마다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가 생각할 때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나사로에게 눈곱만큼의 긍휼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장례식도 없이 누가 거적대기에 둘둘 말아 공동묘지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가 죽어 장사를 지낼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왔고 장례식 화환은 식장을 가득 매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었을 때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가 볼 때 나사로는 너무나 행복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 부자가 음부에서 아브라함에게 간구하였습니다. 24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의 목마름이 얼마나 심했는지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만 해도 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는 죽기 전에 운명을 바꿔야 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직무에서 배제되기 전 필사적으로 조치를 취했던 것처럼 우리도 죽기 전 살아 있을 동안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재물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 땅의 재물로 예수님을 친구 삼고 그의 뜻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25장을 보면 염소와 양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예수님께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의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나사로는 누구입니까? 그를 위해 재물을 쓰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위해 써는 것이 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시 받는 친구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께 한 것이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내게 있는 것으로 섬김으로 예수님을 친구 삼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다섯 형제도 자기와 같은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그들도 자신처럼 이곳 음부로 올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다섯 형제들이 삶의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은 누구에게 듣고 회개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결국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물을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위해 사용할 것도 무수히 가르칩니다(출22:22-24, 신24:10-22). 이런 가르침을 듣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가서 권하면 받아들일까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있어도 권함을 받지 않습니다. 재물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내게 있는 재물과 시간 등으로 예수님을 친구 삼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시 받는 한 사람,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믿음과 지혜를 주셔서 예수님을 친구 삼는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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