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누가복음 제21강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눅12: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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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21강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말씀 누가복음 12:13-34
요절 누가복음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많이 하면 위염과 위궤양에 걸릴 수 있고 심장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서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너무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염려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염려하는 대신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크리스천이 추구해야할 삶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절을 봅시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염려가 많은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염려했습니까? 그들은 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염려를 했을까요?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르겠다는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눅9:57-58) 이는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도 없고 편히 잘 곳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실제로 제자들의 삶은 가난했고 양식이 떨어져 내일은 무엇을 먹을지 염려를 많이 하였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한 벌 옷으로 생활할 정도로 입는 것도 부족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제자들은 염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염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첫째, 삶이 소유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봅시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목숨이 음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의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음식이 목숨을 위해 존재하고 의복이 몸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삶이 소유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염려는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삶보다 소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소유를 얻고자 일을 하고 삶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좀 더 좋은 집에 살고, 좀 더 좋은 차를 탄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비록 가난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자족할 줄 알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잠17:1)
둘째,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기 때문입니다. 24-26절을 봅시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율법에 의하면 까마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까마귀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히브리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해와 푸대접을 받는 까마귀지만 굶어 죽는 까마귀는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넉넉히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까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인 너희들은 어찌하여 염려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아버지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버지, 사실을 제가 아버지가 오늘만 나를 먹이고 내일은 굶기실 것 같아 걱정이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아버지들은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아마도 아버지들은 “이럴려고 이 자식을 낳았나?” 하시면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염려하는 로마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롬8:32)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면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7-28a을 봅시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영광스러운 때는 솔로몬 왕 때입니다. 그때는 얼마나 부유했는지 모든 것이 금으로 만들어졌고 은은 돌처럼 여겨졌다고 했습니다. 주변 국가의 왕들과 고관들이 솔로몬 왕국의 영광에 놀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송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솔로몬의 영광도 하나님이 입히신 백합화 하나만큼 휼륭하지 못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다 입히십니다. 그런데도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적은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염려가 들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가면 규장이라는 기독교 출판사가 있는데 이 회사의 건물 옥상에 있는 큰 옥외간판에 이런 글이 써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염려가 들 때 우리의 염려를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를 아뢰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면 들어주시는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이제는 염려만 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염려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에서 하나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릴 때 우리는 믿음을 배울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염려할 일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든 염려를 하나님의 은혜로 바꾸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9,30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염려하므로 이런 것들을 구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자녀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31절을 봅시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국민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행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4대 의무인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 국민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행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대학에 들어가 어떤 공부를 하던지,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하여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일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31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봅시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더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적인 약속입니다. 이는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자를 반드시 축복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적 약속인 것입니다.
역사상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한 자들은 모두 이 말씀을 그대로 체험하였고 그들의 인생도 아름답고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죠지뮬러의 기도를 받으시고 수많은 고아들을 먹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우리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의 삶을 넘치게 축복하시고 많은 열매와 승리의 삶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제 인생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제가 대학시험을 볼 당시에는 전기대학과 후기대학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기대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서럽고 두려운 일인지 처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여곡절 끝에 당시 후기로 지원할 수 있었던 홍익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지원하여 간신히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온 제게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기쁨은 커녕 원하던 대학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열등감과 가난한 형편에 언제 졸업해서 돈을 버나 하는 염려에 짓눌려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일대일 목자님이 믿음으로 장학금에 도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저는 목자님의 말씀대로 단순하게 믿음으로 장학금 신청서를 내고 교수님과 면담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하나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아무런 자격이 되지 않는데 한국장학회에서 지원하는 무상장학금 지원대상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4년 동안 등록금 걱정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 말고도 저는 이제까지 살면서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제게 더하시는 많은 체험들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에 대해 다른 것은 몰라도 이 한 가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이런 것들을 반드시 더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염려하는 일들이 많을 줄 압니다. 특히 고3들은 원하는데로 나오지 않는 성적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몹시 염려하고 두려워할 줄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할 때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를 구하고 그의 영광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에 저도 증인 중에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많은 증인들이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증인들 중에 하나가 되실 수 있길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말씀 누가복음 12:13-34
요절 누가복음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많이 하면 위염과 위궤양에 걸릴 수 있고 심장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서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너무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염려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염려하는 대신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크리스천이 추구해야할 삶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절을 봅시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염려가 많은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염려했습니까? 그들은 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염려를 했을까요?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르겠다는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눅9:57-58) 이는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도 없고 편히 잘 곳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실제로 제자들의 삶은 가난했고 양식이 떨어져 내일은 무엇을 먹을지 염려를 많이 하였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한 벌 옷으로 생활할 정도로 입는 것도 부족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제자들은 염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염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첫째, 삶이 소유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봅시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목숨이 음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의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음식이 목숨을 위해 존재하고 의복이 몸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삶이 소유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염려는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삶보다 소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소유를 얻고자 일을 하고 삶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좀 더 좋은 집에 살고, 좀 더 좋은 차를 탄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비록 가난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자족할 줄 알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잠17:1)
둘째,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기 때문입니다. 24-26절을 봅시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율법에 의하면 까마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까마귀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히브리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해와 푸대접을 받는 까마귀지만 굶어 죽는 까마귀는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넉넉히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까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인 너희들은 어찌하여 염려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아버지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버지, 사실을 제가 아버지가 오늘만 나를 먹이고 내일은 굶기실 것 같아 걱정이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아버지들은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아마도 아버지들은 “이럴려고 이 자식을 낳았나?” 하시면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염려하는 로마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롬8:32)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면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7-28a을 봅시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영광스러운 때는 솔로몬 왕 때입니다. 그때는 얼마나 부유했는지 모든 것이 금으로 만들어졌고 은은 돌처럼 여겨졌다고 했습니다. 주변 국가의 왕들과 고관들이 솔로몬 왕국의 영광에 놀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송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솔로몬의 영광도 하나님이 입히신 백합화 하나만큼 휼륭하지 못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다 입히십니다. 그런데도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적은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염려가 들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가면 규장이라는 기독교 출판사가 있는데 이 회사의 건물 옥상에 있는 큰 옥외간판에 이런 글이 써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염려가 들 때 우리의 염려를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를 아뢰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면 들어주시는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이제는 염려만 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염려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에서 하나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릴 때 우리는 믿음을 배울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염려할 일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든 염려를 하나님의 은혜로 바꾸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9,30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염려하므로 이런 것들을 구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자녀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31절을 봅시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국민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행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4대 의무인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 국민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행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대학에 들어가 어떤 공부를 하던지,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하여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일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31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봅시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더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적인 약속입니다. 이는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자를 반드시 축복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적 약속인 것입니다.
역사상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한 자들은 모두 이 말씀을 그대로 체험하였고 그들의 인생도 아름답고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죠지뮬러의 기도를 받으시고 수많은 고아들을 먹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우리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의 삶을 넘치게 축복하시고 많은 열매와 승리의 삶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제 인생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제가 대학시험을 볼 당시에는 전기대학과 후기대학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기대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서럽고 두려운 일인지 처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여곡절 끝에 당시 후기로 지원할 수 있었던 홍익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지원하여 간신히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온 제게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기쁨은 커녕 원하던 대학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열등감과 가난한 형편에 언제 졸업해서 돈을 버나 하는 염려에 짓눌려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일대일 목자님이 믿음으로 장학금에 도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저는 목자님의 말씀대로 단순하게 믿음으로 장학금 신청서를 내고 교수님과 면담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하나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아무런 자격이 되지 않는데 한국장학회에서 지원하는 무상장학금 지원대상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4년 동안 등록금 걱정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 말고도 저는 이제까지 살면서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제게 더하시는 많은 체험들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에 대해 다른 것은 몰라도 이 한 가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이런 것들을 반드시 더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염려하는 일들이 많을 줄 압니다. 특히 고3들은 원하는데로 나오지 않는 성적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몹시 염려하고 두려워할 줄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할 때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를 구하고 그의 영광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에 저도 증인 중에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많은 증인들이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증인들 중에 하나가 되실 수 있길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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