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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메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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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o James
댓글 0건 조회 471회 작성일 11-08-28 10:44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 21강
제자의 길
본문 : 누가복음 9:37-50                                                        요절 : 누가복음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곧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의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은 앞서 가신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삶입니다. 제자의 삶의 목적은 예수님이 맡기신 인류구원의 꿈을 이루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베푸신 은혜의 삶을 증거면서 사랑을 나누며 실천하는 삶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세 제자들과 같이 내려 오셨습니다. 이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리 중의 한 사람이 간절한 심정으로 소리 지르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38:39)” 요즘은 외아들과 외딸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형제들이 많았습니다. 통상 6형제 7형제가 보통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복 중의 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식을 많이 낳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아들이 한 명밖에 없었을 뿐아니라 귀신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귀신에게 날마다 시달리는 외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귀신의 장난에 아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것을 보는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실력이 있다는 명의와 점쟁이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통 하는 아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아들을 고칠 수 있는 명의나 영적 권위자가 없는 것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던 중 예수님이 변화산에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예수님께 다급하게 다가와 간청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패했지만 당신은 할 수 있지 않는가? 제자들의 능력 없음에 대한 넋두리와 자신의 아들을 귀신의 세력에서 구해달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청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41)”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아버지와 아홉 제자들을 싸잡아서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란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더러운 욕망과 추악한 죄악으로 타락한 시대를 의미합니다. 즉 당시의 유대인, 바리세인, 서기관, 외아들의 아버지, 아홉 제자, 그리고 무리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그들 중에서 아홉 제자들을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많은 이적과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상상과 능력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믿음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데리고 오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귀신을 꾸짖으시고 외아들에게서 나오게 하사 아들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귀신도 꾸짖을 수 있는 믿음과 영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능력과 권세도 같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보를 계승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권세를 받아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계승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자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고 필요를 구하며 사탄과 귀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은 믿음을 갖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때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신앙인의 아름다운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는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는 놀라운 역사를 보고나서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선의의 경쟁심은 성장을 촉진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공명심은 제자 공동체를 와해시킬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변론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방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고통의 십자가, 그러나 부활하심으로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콩밭에 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겸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47,4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어린 아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와 친구가 되어 놀아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는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신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낮추고 가장 작은 자가 되어서 모두를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이 참으로 큰 사람입니다. 

 겸손은 쉽지 않습니다. 겸손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합니다. 겸손은 자기 부인이 수반됩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을 배웁니다. 겸손이 몸에 베이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과 상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있으면 겸손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늘에 나는 새는 아름답게 창공을 비행하면서 창공에 한 발자국도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인생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마음의 캠퍼스에 사랑과 섬김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미움이나, 질투나, 원망의 상처와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조롱하던 군인들과 무리들을 보시고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면서 제자들과 무리, 군인들을 용서하고 겸손하게 섬겨주셨습니다. 이 사랑과 겸손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을 배울 때 어떠한 사람도 사랑으로 겸손히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겸손을 배워서 친구들과 형제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모든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겸손의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제자는 관용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49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쫒는 것을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는 아닌 것 같은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쫒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 편도 아닌데 왜 저렇게 권세가 있고 귀신도 쫒아 내는지 왼지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매우 잘 했다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5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라고 하십니다.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넓은 마음입니까? 우리는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거나 동조해주는 사람만 자신의 편이라는 편협함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치열한 경쟁으로 이룬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면적이 좁고(러시아, 캐나다, 미국, 세계108위), 지하자원은 풍부하지 않고, 면적대비 인구(중국, 인도, 미국, 세계25위)는 많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여건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등 어디에서나 경쟁을 하며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혹독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대를 단순히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로 생각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과 같이 넓은 마음과 상대를 인정하는 포용성을 갖는 것입니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내 편으로 생각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나의 적에서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않지만 나의 원수가 아니라 언제가 나를 도와 줄 친구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넓어지는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치열한 공부의 경쟁으로 친구사이가 묘연해 질 수 있지만, 늘 다른 친구들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뿐만이 아니라 옆 친구가 꿈을 이루고자 하는데 좋은 조력자요 좋은 친구요 멘토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는 믿음의 사람이요, 겸손의 사람이요, 관용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낮아진 겸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믿음과 겸손과 관용을 갖춘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곧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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