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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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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325회 작성일 11-12-18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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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 38 강
본문 누가복음 19:1-10
요절 누가복음 19:10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여리고에 살았고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란 이름의 본래 뜻은 순결, 정의입니다. 아마도 그의  부모님이 소망 가운데 그에게 삭개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 반대로 삭개오는 가장 추하고 욕된 자요 부정부패의 대명사인 세리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아래 있었을 때 처럼 로마에 정복되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에 빌붙어 로마를 대신하여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원래 세금 이상의 액수를 거두어 그 차액을 자신이 취하므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들은 동족들에게 악랄하게 대하며 더 많이 뜯으면 뜯을수록 더욱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동족들은 이런 세리들을 로마의 앞잡이, 로마의 개라고 부르며 그들을 창기나 이방인과 같이 취급하며 배척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세리라는 직업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직업, 동족들의 배척을 받는 직업이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의 양심은 이 직업을 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세리가 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가 왜 세리라는 직업을 택하였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가 어릴 때 가난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아서 돈에 한이 맺혔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어째든 그는 돈을 택했고 돈만 벌 수 있다면 어떤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세리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부자만 되면 가장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악랄하게 돈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의 악명이 높아갈수록 그는 큰 부자가 되었고 그의 집은 매우 크고 호화로웠습니다.
  이렇게 큰 부자가 된 삭개오는 과연 그가 원했던 행복을 찾았을까요?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그의 내면은 매우 비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지위와 돈 앞에 굽신거렸지만 뒤돌아서면 침을 뱉고 욕을 했습니다. “아, 재수없는 놈 만났네. 퉤!” 그는 이를 악물고 세리의 일을 했지만 밤마다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는 그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내가 동족들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리의 아들이라며 왕따를 당하였습니다. 아내는 돈을 갖다 줄 때는 좋아하지만 그를 존경하지 않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고 고독하였습니다. 아무도 그의 마음의 고통을 이해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도 직장에 나아가서 돈 때문에 사람들과 싸울 일을 생각하면 피곤했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그에게는 행복이 없었고 웃음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행복을 맛볼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돈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므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습니다. 지우개로 자신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떻게 바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그의 삶에 한 줄기 서광이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세리로 일하던 레위가 사표를 내고 예수라는 선지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이 세관에도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예수라는 분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위하여 여리고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 싶은 열망이 용솟음쳤습니다(3a). 한 번만이라도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장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접근할 수가 없었고 또한 키가 너무 작아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려고 깡충깡충 뛰어봤지만 사람들의 등짝만 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해보았지만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방해를 하였습니다.
 
  이 때 삭개오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그가 지나가실 길을 예상하고 그 앞에 있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세리장이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산처럼 나온 배로 인해 여러 차례 나무에서 미끄러졌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았고 사람들의 조롱과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몰래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자기를 쳐다보셨습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 예수님은 삭개오의 깊은 외로움을 잘 아셨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내면의 깊은 고통을 잘 아셨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겪어온 인생의 상처들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 상처들을 치료해 주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뜻밖의 말씀에 삭개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와 같은 죄인의 집에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오시겠다니. 삭개오는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그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걸어가는 삭개오의 발걸음은 춤을 추듯 경쾌했습니다. 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수군수군거렸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7).” 당시 세리는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공인된 죄인과 교제하며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그의 죄와 함께 하는 것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외로움과 사람들의 따돌림으로 고통받던 삭개오를 이해하시고 그와 교제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비난을 온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는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삭개오는 자신과 같이 죄인 중에 죄인을 예수님이 정죄하지 않으시고 영접해주시는 사랑에 놀랐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 아무 쓸모 없는 죄인을 영접하시는 그 사랑 앞에 그의 마음은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를 물질의 노예에서 해방시켰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는 자기의 소유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고 섬기는 사람, 나누어 주는 사람, 정말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인된 죄인 삭개오를 깊이 이해하시고 영접하시고 함께 하신 예수님은 나 한 사람도 깊이 이해하시고 사랑하시고 영접하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나의 상처를 잘 아십니다. 나의 고통과 외로움도 잘 아십니다. 나의 더럽고 추악한 죄도 잘 아십니다. 하지만 삭개오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런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는 것 처럼 나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다만 삭개오와 같이 속히 예수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계 3:20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나의 남모르는 고통과 상처를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예수님, 나의 깊은 죄에도 불구하고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영접하시며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므로 삭개오와 같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는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계승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는 죄인이요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버림 받은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참된 믿음의 소유자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을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죄를 지으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이 없을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도 목적도 다 상실하게 되어 방황하게 되며 여러 죄로 인해 내면이 황폐하게 됩니다. 삭개오 처럼 깊이 고통하지만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현재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삭개오처럼 잃어버린 자이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낮아져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나를 구원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자 사람들의 비난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목숨까지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영접하면 구원을 얻게 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요1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무 쓸모 없는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놀라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JBF 영혼들이 예수님의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영접하므로 삭개오와 같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예수님의 큰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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