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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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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364회 작성일 11-11-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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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33강                                                         
본문 누가복음 16:1 - 31
요절 누가복음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오늘 말씀은 불의의 재물(worldly wealth)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과 함께 뒤이어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여러 모양의 죄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습니다. 지옥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11번 나오는데 9번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지 지옥에 들어갈지는 세상 재물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천국백성의 올바른 재물관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주인에게 들렸습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묻습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렀습니다. 먼저 온 자에게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고 물으니 기름 백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오십이라고 쓰라 했습니다. 또 다른 이에게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고 물으니 밀 백 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여 그는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가 해고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해고되었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사귀어 놓은 친구들이 그의 뒤를 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은 옳지 않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그의 방법은 불의하지만 빚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장래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지혜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주고자 하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이란 세상 재물을 의미합니다. 재물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목적으로 삼지 말고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것입니다. 영주할 처소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말합니다. 그들은 도움을 받은 가난한 친구들입니다. 그들이 천국에서 도와준 우리를 영접할 것입니다. 이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길입니다. 이렇게 현세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자들을 돕고, 내세에서는 가난한 자가 부자를 돕게 됩니다. 마태복음 6:21절에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재물을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의 마음이 거기로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면 마음도 따라가고 나중에는 몸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고급 요리로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는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는데 개들이 와서 그 상처를 핥았습니다. 부자는 한 영혼을 위해서 자기의 재물을 쓰지 않았습니다. 집 앞에 있는 자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집에 있는 개들에게는 고기를 주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었지만 집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에게는 밥 한끼 주지 않았습니다. 애완견을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는 부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질병과 영양실조로 거지 나사로가 먼저 죽었습니다. 거지는 죽어 그 시체는 버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부자는 좀 더 오래 살았고 죽자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비싼 무덤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음부 즉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도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가난한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왜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을까요? 갈라디아서 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것은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 부자는 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을까요? 마가복음 10:25절에는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들은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기 때문에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갈급함이 없습니다.  부자는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자신과 같이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믿고 돈을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예수님을 대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5:42-45절에 보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상태로 죽으면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의 실상을 몇 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다 변화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 비교의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서로 오고 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지옥을 볼 수 없지만 지옥에서는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부자가 지옥에서 자신은 고통 중에 있는데 나사로는 천국에서 평안과 자유와 무한한 복을 누리는 모습을 봄으로 비교가 되어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 호화롭게 살던 때를 기억할 때 현재 받는 고통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둘째,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의 고통이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물을 한 통도 아니고, 한 바가지도 아니고,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지옥은 참으로 목이 타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합니다. 지옥의 불꽃은 영원히 태우는 고통이 있지만 소멸시키지는 않습니다. 마가복음 9:48절에는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구더기는 손으로 누르면 터지는 연약한 벌레입니다. 그런 구더기가 죽지도 않고 꺼지지 않는 불에 소금치 듯 하는 고통을 영원히 당하게 되는 곳이 지옥입니다.
  셋째, 지옥은 영원히 고통 받는 곳입니다. 이 비유에서 고통, 괴로움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죽고 싶은데 죽을 수도 없는 고통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힘들면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살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그러나 잘 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천국과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부자는 죽어서 제사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형제들이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천국으로 가던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지옥은 소망이 없고 영원히 절망하는 곳입니다. 이 부자는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는데 다 지옥에 올 가능성이 다분히 있었습니다. 그는 제발 형제들이 이곳으로는 오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옥에 갔다 온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돌이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씀합니다. 29절과 3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천국에 갔다 왔다, 지옥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의 간증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강력한 기적이 나타나도 비웃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학생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시대의 모세와 선지자들입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그들은 다 지옥에 가서 꺼지지 않는 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는 것은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기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강력한 표적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이적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며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오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서 먼저 예수님을 잘 믿고 또 실제 삶에서 구제를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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