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 눅29강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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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9강
본문 누가복음 12:49 - 13:9
요절 누가복음 13:5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지난 3월에 일본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현재적으로 태국에서는 50년만의 최악의 홍수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고 큰 재산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수도 방콕의 일부를 포기하여 수도 방콕이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여러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많은 재산 피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사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님께선 이런 사건사고들을 보시고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본문 말씀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의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 49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불은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세상을 심판할 심판의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악한 세상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상을 불로 태우기를 강력하게 원하십니다.
50절을 보십시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막 10:38).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쏟아 붓는 불 세례를 의미합니다. 불 심판이 있기 전에 예수님이 인류가 받을 심판을 뒤집어쓰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심판의 불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어서 다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불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계시록 21:8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51-53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자 할 때, 처음에는 가족 내에 여러 분쟁이 생기게 됩니다. 이는 삶의 우선순위가 예수님과 그 말씀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런 분쟁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한 가정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둘째, 시대를 분간하라(54-59) : 사람들은 천지의 기상에 대해서는 잘 분간을 합니다. 요즈음은 레이더, 슈퍼컴퓨터에 인공위성까지 동원하여 바람의 방향, 세기, 온도, 눈 비 올 확률, 태풍 등을 예보해줍니다. 기상 정보를 아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라고 합니다.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지진의 빈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우리는 천지의 기상을 분간하는 것처럼 이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 얼마 남지 않은 때임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므로 진리 대신에 대세를 따르기 쉽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한 일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옳은 것임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율법과 전통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서 고발하는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법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예수님과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는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붙잡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형벌을 다 받아야 합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넘치는 은혜의 선물을 주려고 뻗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그때 우리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13:1-9) : 그 때 마침 두 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비통한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한 장소이고 안식처였던 성전이 살육의 장소로 변하였습니다. 비통한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즉 그들은 살해된 갈릴리 사람들은 남모르게 죄를 지은 자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빌라도가 그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이도록 허락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는 오늘날 뉴스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죽음이 김정일과 같이 악한 사람에게 있으면 하나님께 천벌을 받았다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죽음이 악한 사람 뿐만 아니라 아주 착한 사람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예수님은 그 원인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비참한 결과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가르치십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망하리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숨겨진 모든 죄가 그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는 죄의 행동만이 아니라 동기까지 아시고 심판하십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행해진 죄도 그의 눈 앞에서는 야간투시경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뇌는 일생동안 행한 것들을 기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용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나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받는 큰 고통을 보고 흉악한 죄를 지은 자들로 단정하며 비난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이나 욥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고난의 용광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자신의 죄를 힘써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도 죄인일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큰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기를 힘써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큰 소리로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개만이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며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우리 전에 당했던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또한 멸망당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죽은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생활을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포도원지기(6-9) : 예수님이 또 한 가지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때가 되어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존재의미는 열매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공의와 인애의 열매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에 비유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해 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는 오래 참고 계십니다. 이를 알고 회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셨는데 회개하도록 기다려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다고 당장에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시는데도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주님께서 충분히 주신 회개의 기회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인내하시는 주님은 그 기회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때에 지체하지 않고 심판의 불을 내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9-10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게 됩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회개할 수 있는 때가 복된 날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잘못을 돌아보고 돌이켜 주님과 화평하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2:49 - 13:9
요절 누가복음 13:5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지난 3월에 일본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현재적으로 태국에서는 50년만의 최악의 홍수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고 큰 재산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수도 방콕의 일부를 포기하여 수도 방콕이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여러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많은 재산 피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사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님께선 이런 사건사고들을 보시고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본문 말씀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의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 49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불은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세상을 심판할 심판의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악한 세상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상을 불로 태우기를 강력하게 원하십니다.
50절을 보십시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막 10:38).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쏟아 붓는 불 세례를 의미합니다. 불 심판이 있기 전에 예수님이 인류가 받을 심판을 뒤집어쓰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심판의 불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어서 다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불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계시록 21:8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51-53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자 할 때, 처음에는 가족 내에 여러 분쟁이 생기게 됩니다. 이는 삶의 우선순위가 예수님과 그 말씀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런 분쟁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한 가정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둘째, 시대를 분간하라(54-59) : 사람들은 천지의 기상에 대해서는 잘 분간을 합니다. 요즈음은 레이더, 슈퍼컴퓨터에 인공위성까지 동원하여 바람의 방향, 세기, 온도, 눈 비 올 확률, 태풍 등을 예보해줍니다. 기상 정보를 아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라고 합니다.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지진의 빈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우리는 천지의 기상을 분간하는 것처럼 이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 얼마 남지 않은 때임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므로 진리 대신에 대세를 따르기 쉽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한 일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옳은 것임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율법과 전통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서 고발하는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법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예수님과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는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붙잡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형벌을 다 받아야 합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넘치는 은혜의 선물을 주려고 뻗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그때 우리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13:1-9) : 그 때 마침 두 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비통한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한 장소이고 안식처였던 성전이 살육의 장소로 변하였습니다. 비통한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즉 그들은 살해된 갈릴리 사람들은 남모르게 죄를 지은 자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빌라도가 그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이도록 허락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는 오늘날 뉴스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죽음이 김정일과 같이 악한 사람에게 있으면 하나님께 천벌을 받았다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죽음이 악한 사람 뿐만 아니라 아주 착한 사람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예수님은 그 원인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비참한 결과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가르치십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망하리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숨겨진 모든 죄가 그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는 죄의 행동만이 아니라 동기까지 아시고 심판하십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행해진 죄도 그의 눈 앞에서는 야간투시경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뇌는 일생동안 행한 것들을 기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용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나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받는 큰 고통을 보고 흉악한 죄를 지은 자들로 단정하며 비난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이나 욥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고난의 용광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자신의 죄를 힘써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도 죄인일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큰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기를 힘써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큰 소리로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개만이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며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우리 전에 당했던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또한 멸망당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죽은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생활을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포도원지기(6-9) : 예수님이 또 한 가지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때가 되어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존재의미는 열매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공의와 인애의 열매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에 비유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해 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는 오래 참고 계십니다. 이를 알고 회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셨는데 회개하도록 기다려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다고 당장에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시는데도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주님께서 충분히 주신 회개의 기회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인내하시는 주님은 그 기회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때에 지체하지 않고 심판의 불을 내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9-10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게 됩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회개할 수 있는 때가 복된 날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잘못을 돌아보고 돌이켜 주님과 화평하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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