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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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은 제26강
본문 누가복음 11:33 - 54
요절 누가복음 11:41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등불 비유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깨끗하게 될 수 있는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내면이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마음에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3-36) :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stand) 위에 둡니다. 오늘날이야 전기가 다 들어가고 형광등이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등경 위에 등잔을 놓고 밤마다 불을 켰습니다. 방 안에서는 등잔을 윗목에 두고 그 아래서 공부도 하고 바느질도 하였습니다. 또 집 입구에도 불을 켜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십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여기서 등불은 예수님, 또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몸은 우리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2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복음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문제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이미 큰 빛 되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입니다. 내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둡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한 눈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으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 바다를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였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여러 나라들과의 전쟁에 앞서 열 두 명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의 내용이 정반대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에 있는 거인들을 보고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대해서 악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은 아낙 자손 거인이요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 하며 백성들에게 불신과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반면 나머지 두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혀 다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보고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본 것도 사실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보았느냐, 불신의 눈으로 보았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아들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다 죽게 하리라” 하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도록 돕는 모세와 여호와수와 갈렙은 돌로 쳐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에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는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기까지 기다리셨다가 그 후 그들의 자녀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갈렙과 여호수아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곧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온 몸이 밝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문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여호수아와 갈렙 처럼 긍정적이 되며 그 마음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인생을 볼 때도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내 인생을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여러 문제 앞에서도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좋지 않은 상황이나 환경, 인터넷을 통해 들리는 나쁜 뉴스들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내 마음이 매우 어둡게 되고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이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그 상황을 극복하는 믿음의 눈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혀 기대할 수 없고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 때문에 바라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므로 모든 어두운 생각을 이기고 빛으로 가득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우리 속에 있는 빛을 어둡게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절을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특히 사탄은 죄의 유혹으로 우리를 넘어지게 함으로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음란한 동영상을 보게 하고, 감정대로 행하도록 유혹합니다. 죄를 지으면 영적인 소원이 뚝 떨어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두울 때, 여러 문제들을 나를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기보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밝아지게 됩니다. 빛과 어두움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요? 아무리 어두움이 깊어도 빛이 비추이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아집니다. 아무리 밝아도 어두움이 마음을 덮치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우리의 삶이 그와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보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인생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당장에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격에 예수님의 빛, 말씀의 빛이 비추이면 반드시 어두움은 물러나고 근심과 염려하는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될 때 믿음으로 이를 영접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삶이 밝아집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네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37-54) :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했습니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위생상의 이유보다 정결의식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한 바리새인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시라고 준 물로 정결예식을 행하다가 목이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만큼 손 씻는 정결의식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들의 문제, 잘못된 형식주의를 지적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39-41).” 그들은 겉은 깨끗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하게 채웠습니다. 탐욕과 악독으로 그들의 마음이 더러워 졌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들의 겉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까지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겉 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십일조는 드렸지만 속으로는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아까워하면서 또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감사함으로 드리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하게 된 속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41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탐욕의 마음, 욕심을 회개하고 내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며 나누어줄 때, 우리는 내면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 재능, 시간, 지식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들을 나 자신을 위해서만 쓰고자 하는 죄를 회개하고 이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자신도 깨끗하게 됩니다. 행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렇게 주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깨끗해지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가치관을 심어주시고 구제하는 삶을 살므로 내면을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1:33 - 54
요절 누가복음 11:41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등불 비유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깨끗하게 될 수 있는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내면이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마음에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3-36) :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stand) 위에 둡니다. 오늘날이야 전기가 다 들어가고 형광등이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등경 위에 등잔을 놓고 밤마다 불을 켰습니다. 방 안에서는 등잔을 윗목에 두고 그 아래서 공부도 하고 바느질도 하였습니다. 또 집 입구에도 불을 켜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십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여기서 등불은 예수님, 또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몸은 우리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2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복음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문제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이미 큰 빛 되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입니다. 내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둡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한 눈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으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 바다를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였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여러 나라들과의 전쟁에 앞서 열 두 명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의 내용이 정반대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에 있는 거인들을 보고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대해서 악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은 아낙 자손 거인이요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 하며 백성들에게 불신과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반면 나머지 두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혀 다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보고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본 것도 사실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보았느냐, 불신의 눈으로 보았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아들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다 죽게 하리라” 하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도록 돕는 모세와 여호와수와 갈렙은 돌로 쳐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에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는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기까지 기다리셨다가 그 후 그들의 자녀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갈렙과 여호수아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곧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온 몸이 밝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문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여호수아와 갈렙 처럼 긍정적이 되며 그 마음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인생을 볼 때도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내 인생을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여러 문제 앞에서도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좋지 않은 상황이나 환경, 인터넷을 통해 들리는 나쁜 뉴스들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내 마음이 매우 어둡게 되고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이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그 상황을 극복하는 믿음의 눈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혀 기대할 수 없고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 때문에 바라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므로 모든 어두운 생각을 이기고 빛으로 가득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우리 속에 있는 빛을 어둡게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절을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특히 사탄은 죄의 유혹으로 우리를 넘어지게 함으로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음란한 동영상을 보게 하고, 감정대로 행하도록 유혹합니다. 죄를 지으면 영적인 소원이 뚝 떨어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두울 때, 여러 문제들을 나를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기보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밝아지게 됩니다. 빛과 어두움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요? 아무리 어두움이 깊어도 빛이 비추이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아집니다. 아무리 밝아도 어두움이 마음을 덮치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우리의 삶이 그와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보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인생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당장에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격에 예수님의 빛, 말씀의 빛이 비추이면 반드시 어두움은 물러나고 근심과 염려하는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될 때 믿음으로 이를 영접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삶이 밝아집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네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37-54) :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했습니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위생상의 이유보다 정결의식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한 바리새인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시라고 준 물로 정결예식을 행하다가 목이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만큼 손 씻는 정결의식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들의 문제, 잘못된 형식주의를 지적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39-41).” 그들은 겉은 깨끗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하게 채웠습니다. 탐욕과 악독으로 그들의 마음이 더러워 졌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들의 겉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까지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겉 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십일조는 드렸지만 속으로는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아까워하면서 또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감사함으로 드리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하게 된 속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41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탐욕의 마음, 욕심을 회개하고 내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며 나누어줄 때, 우리는 내면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 재능, 시간, 지식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들을 나 자신을 위해서만 쓰고자 하는 죄를 회개하고 이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자신도 깨끗하게 됩니다. 행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렇게 주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깨끗해지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가치관을 심어주시고 구제하는 삶을 살므로 내면을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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