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 하나님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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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 17 강
말씀 | 마가복음 11:20-25
요절 | 마가복음 11:22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연법칙 속에서 일하시지만 초자연적인 일도 이루십니다.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일,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이루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새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22-24), 기도(24-25), 용서(25)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20-24). 12-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 시장하셔서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습니다. 가서 보니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사 그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어제 그 길을 지날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쭈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릴 수 있는가” 예수님은 그 능력이 하나님을 믿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그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히11:6에서는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실제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과 돈과 자신의 능력 등을 의지하고자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만 의지하면 우리는 어둡고 운명적인 삶, 한계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요?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어떤 선교사님은 자주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산을 바다에 던져넣는 삶을 삽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전합니다. 여기서 산은 일차적으로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을 의미합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한 것은 성전이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전을 바다에 던져 심판하실 것을 말해줍니다. 그 시대 율법주의, 바리새인들의 전통은 태산과 같았습니다. 산은 요지부동이고, 불가능한 일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 거대한 죄의 태산이 옮겨지고 세속주의, 인본주의의 산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도저히 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거듭나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6-7).”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며 주저 앉아 있지 않고 대신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삽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가 사역할 당시 영국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세계선교 지상명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며 자신들과는 상관없다 생각하였습니다. 캐리가 목사들의 모임에서 해외선교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말하자 그 중 한 사람이 “젊은이,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신다면 자네나 우리의 도움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걸세”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는 그에게 산과 같이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침례교 연합회 모임에서 이사야 54:2-3 ‘네 장막터를 넓혀라’ 말씀을 설교하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그는 평생을 인도선교사로 살며 세람포(Serampore) 대학을 창립하였고, 성경을 3개 언어(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로 번역한 후 계속해서 힌두어, 마하라스티아어, 오리아어, 텔링가어 등 인도 방언들과 보탄어, 버마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총 44여개의 언어로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기독교 신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교적 악습을 폐지하려고 노력했는데, 인도 고대의 희생 제사 때에 유아를 희생으로 드리는 악습과 남편이 죽어 화장될 때 젊은 부인까지 함께 태우는 사티(Sati)라는 제도의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네 장막터를 넓히라"(이사야 54장 2절)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온 세계의 모든 백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함을 외치면서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과 끈질긴 도전으로 18세기 타락한 영국을 구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영국을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리라는 그의 거대한 믿음과 선교의 뜨거운 열정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세계선교의 불을 당기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때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의심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도전할 때에도 상황은 그 반대로 움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십니다. 상황이 거꾸로 전개되고 예수님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믿고 기도하며 도전할 때, 그 믿음대로 된다고 하십니다. 윌리엄 캐리가 열심히 성경번역을 할 때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8년 가까이 성경을 번역했던 원고를 강아지가 촛불을 건드리는 바람에 모두 다 불타 버린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화를 내며 크게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캐리는 강아지를 끌어 안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원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시고 완전하게 다시 번역하라고 없애신 뜻으로 압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으며 상황이 거꾸로 전개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였습니다. 그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고 그 기도가 이루어질 것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1985년 고이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해서 소련 개척의 기도제목을 제시하셨습니다. 1985년 서울에서 열린 “제8회 세계선교 보고대회”에서 고 이사무엘 선교사는 향후 10년째가 되는 1995년까지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 선교사를 파송해 주시도록 기도하자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후 목자님들은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 소련은 철의 장막으로서 절대로 열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개방의 문, 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소련과 수교(修交)도 되기 전인 1990년에 88올림픽 이후 맨 먼저 문을 연 헝거리를 통해 첫 평신도 선교사가 3일 비자를 갖고 구소련의 모스크바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30여 명의 UBF 평신도 선교사들이 모스크바에 파송되었고, 그 해 8월에 102명의 구소련 학생들이 참석한 “제1회 UBF 소련 수양회”가 빼쩨르부르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정말 산을 바다로 집어 던져 넣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도전하는 이들의 기도를 놀랍게 응답하십니다.
둘째, 기도. 믿음의 표현은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이 응답받을 때까지 줄기차게 기도해야 합니다. 눅18장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한 맺힌 기도를 예로 들며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고 의롭지 못하였지만 과부가 포기하지 않고 재판장에게 간구하였을 때 재판장은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용서. 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맺어질 때 담대히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기 전에 형제와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하나님을 믿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 내게 죄를 지은 누구를 용서하다면 내 마음에 있는 태산을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만이 내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할 때 그와 나 사이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많은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마가복음 11:20-25
요절 | 마가복음 11:22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연법칙 속에서 일하시지만 초자연적인 일도 이루십니다.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일,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이루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새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22-24), 기도(24-25), 용서(25)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20-24). 12-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 시장하셔서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습니다. 가서 보니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사 그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어제 그 길을 지날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쭈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릴 수 있는가” 예수님은 그 능력이 하나님을 믿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그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히11:6에서는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실제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과 돈과 자신의 능력 등을 의지하고자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만 의지하면 우리는 어둡고 운명적인 삶, 한계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요?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어떤 선교사님은 자주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산을 바다에 던져넣는 삶을 삽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전합니다. 여기서 산은 일차적으로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을 의미합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한 것은 성전이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전을 바다에 던져 심판하실 것을 말해줍니다. 그 시대 율법주의, 바리새인들의 전통은 태산과 같았습니다. 산은 요지부동이고, 불가능한 일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 거대한 죄의 태산이 옮겨지고 세속주의, 인본주의의 산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도저히 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거듭나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6-7).”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며 주저 앉아 있지 않고 대신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삽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가 사역할 당시 영국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세계선교 지상명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며 자신들과는 상관없다 생각하였습니다. 캐리가 목사들의 모임에서 해외선교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말하자 그 중 한 사람이 “젊은이,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신다면 자네나 우리의 도움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걸세”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는 그에게 산과 같이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침례교 연합회 모임에서 이사야 54:2-3 ‘네 장막터를 넓혀라’ 말씀을 설교하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그는 평생을 인도선교사로 살며 세람포(Serampore) 대학을 창립하였고, 성경을 3개 언어(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로 번역한 후 계속해서 힌두어, 마하라스티아어, 오리아어, 텔링가어 등 인도 방언들과 보탄어, 버마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총 44여개의 언어로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기독교 신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교적 악습을 폐지하려고 노력했는데, 인도 고대의 희생 제사 때에 유아를 희생으로 드리는 악습과 남편이 죽어 화장될 때 젊은 부인까지 함께 태우는 사티(Sati)라는 제도의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네 장막터를 넓히라"(이사야 54장 2절)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온 세계의 모든 백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함을 외치면서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과 끈질긴 도전으로 18세기 타락한 영국을 구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영국을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리라는 그의 거대한 믿음과 선교의 뜨거운 열정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세계선교의 불을 당기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때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의심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도전할 때에도 상황은 그 반대로 움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십니다. 상황이 거꾸로 전개되고 예수님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믿고 기도하며 도전할 때, 그 믿음대로 된다고 하십니다. 윌리엄 캐리가 열심히 성경번역을 할 때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8년 가까이 성경을 번역했던 원고를 강아지가 촛불을 건드리는 바람에 모두 다 불타 버린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화를 내며 크게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캐리는 강아지를 끌어 안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원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시고 완전하게 다시 번역하라고 없애신 뜻으로 압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으며 상황이 거꾸로 전개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였습니다. 그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고 그 기도가 이루어질 것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1985년 고이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해서 소련 개척의 기도제목을 제시하셨습니다. 1985년 서울에서 열린 “제8회 세계선교 보고대회”에서 고 이사무엘 선교사는 향후 10년째가 되는 1995년까지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 선교사를 파송해 주시도록 기도하자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후 목자님들은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 소련은 철의 장막으로서 절대로 열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개방의 문, 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소련과 수교(修交)도 되기 전인 1990년에 88올림픽 이후 맨 먼저 문을 연 헝거리를 통해 첫 평신도 선교사가 3일 비자를 갖고 구소련의 모스크바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30여 명의 UBF 평신도 선교사들이 모스크바에 파송되었고, 그 해 8월에 102명의 구소련 학생들이 참석한 “제1회 UBF 소련 수양회”가 빼쩨르부르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정말 산을 바다로 집어 던져 넣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도전하는 이들의 기도를 놀랍게 응답하십니다.
둘째, 기도. 믿음의 표현은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이 응답받을 때까지 줄기차게 기도해야 합니다. 눅18장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한 맺힌 기도를 예로 들며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고 의롭지 못하였지만 과부가 포기하지 않고 재판장에게 간구하였을 때 재판장은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용서. 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맺어질 때 담대히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기 전에 형제와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하나님을 믿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 내게 죄를 지은 누구를 용서하다면 내 마음에 있는 태산을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만이 내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할 때 그와 나 사이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많은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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