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6강 섬기로 오신 예수님
페이지 정보

본문
오늘 말씀에 큰 자가는 되고자 하고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제자들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그들은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높은 자가 되는 것보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우리가 왜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막10:35-37을 봅시다. 누가 예수님께 나오죠? 네 그들은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와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무엇을 구합니까?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왕이 되시면 하나는 우의정에 하나는 좌의정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하나는 국무총리에 하나는 청와대 비서실장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예수님께 나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일까요? 이는 그들 안에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은 큰 자가 되고 싶어할까요? 큰 자가 되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 위에 굴림하며 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학벌이 좋던지, 돈이 많던지,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도 큰 자가 되어 이렇게 세상을 누려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리나간 소리한다고 책망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그들의 소원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다만 큰 자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42-4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큰 자가 되어야 하는 목적이 사람들 위에 굴림하는 것이라 그 목적은 섬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 큰 자는 돈과 권세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위와 명예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보실 때 섬기는 자가 큰 사람일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먼저 ‘섬김’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섬김이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여러분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을 밥은 굶어야 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부모님들 중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자녀인 여러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섬김의 삶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맡은 일과 직분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섬기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자녀로서 부모님들을 공경하고 학생으로서 학업에 충실한 것도 바로 섬기는 삶입니다.
둘째로 섬김이란 봉사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구체적으로 나와 내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지금도 밥을 굶는 분들이 있을까요? 집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잠을 주무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네 아직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에 곳곳에서 이분들을 먹일려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밥을 하고 음식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봉사란 이처럼 거창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JBF 예배준비를 위해조금 일찍 와서 의자를 나르고 자리배치하고 기도하는 일도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이것 또한 봉사의 삶입니다.
셋째로 섬김이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은 섬김에 있어서 핵심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자녀인 여러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십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을 키우느라 많은 물질을 희생하고 여러분들이 아플때는 간호하느라 잠도 못 주무시고 여러분들 공부시키느라 먹고 싶은 것도 안먹고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사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희생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과 돈과 재능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 중에 최고의 희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목숨을 내어 주는 희생입니다. 이번 주에 광복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과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었음을 반드시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섬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왜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실까요?
첫째로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이 땅에 오실 때에 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의인들이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이런 일을 한 것입니까?” 그때 주님을 이렇게 답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예수님은 너희 중에 어린 소자에게 내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이라고 준 것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것은 곧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테레사 수녀님을 아시나요? 이 분은 인도에서 집도 없이 길거리서 태어나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일생 섬기신 분인데 그 분에 관한 예화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우리의 진정한 상급을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상급으로 여기는 자만이 섬김의 살을 끝까지 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막10:45절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마가복음 전체의 대표하는 요절말씀입니다. 우리가 섬김의 삶을 살아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섬기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하늘보좌와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왕이나 귀족의 집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성장의 고통과 연약함을 경험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섬기신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니고데모를 섬기셨고 이기적인 세리 레위와 여리고의 세관장 삭개오를 섬기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과 수가성에서 다섯 남편을 둔 까칠한 여자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들려 쓸모없이 된 한 청년을 고치기 위해 돼지 떼 2천마리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크냐 다투며 하나가 되지 못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마침내는 그는 우리 죄를 위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의 피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는 예수님의 섬김으로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면서 그들을 섬기면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섬김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차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김을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회장이나 반장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기사가 나와서 무슨
내용인가 봤더니 국제중학교나 특목고에 가려면 회장이나 반장경력이 있어야 유리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출마자도 많아졌고 심지어는 학원의 도움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스펙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참으로 하나님 보실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크고자 하십시오. 높고자 하십시오. 이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목적을 “섬김”에 두어야 하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는데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섬기는 것만이 하나님께 한 것이요 섬기는 것만이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나를 섬기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나를 섬기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를 섬기신 예수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JBF 여러분들이 모두 섬김의 삶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부지런히 배워서 진정 큰 자의 인생,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막10:35-37을 봅시다. 누가 예수님께 나오죠? 네 그들은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와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무엇을 구합니까?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왕이 되시면 하나는 우의정에 하나는 좌의정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하나는 국무총리에 하나는 청와대 비서실장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예수님께 나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일까요? 이는 그들 안에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은 큰 자가 되고 싶어할까요? 큰 자가 되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 위에 굴림하며 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학벌이 좋던지, 돈이 많던지,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도 큰 자가 되어 이렇게 세상을 누려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리나간 소리한다고 책망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그들의 소원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다만 큰 자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42-4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큰 자가 되어야 하는 목적이 사람들 위에 굴림하는 것이라 그 목적은 섬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 큰 자는 돈과 권세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위와 명예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보실 때 섬기는 자가 큰 사람일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먼저 ‘섬김’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섬김이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여러분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을 밥은 굶어야 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부모님들 중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자녀인 여러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섬김의 삶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맡은 일과 직분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섬기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자녀로서 부모님들을 공경하고 학생으로서 학업에 충실한 것도 바로 섬기는 삶입니다.
둘째로 섬김이란 봉사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구체적으로 나와 내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지금도 밥을 굶는 분들이 있을까요? 집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잠을 주무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네 아직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에 곳곳에서 이분들을 먹일려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밥을 하고 음식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봉사란 이처럼 거창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JBF 예배준비를 위해조금 일찍 와서 의자를 나르고 자리배치하고 기도하는 일도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이것 또한 봉사의 삶입니다.
셋째로 섬김이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은 섬김에 있어서 핵심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자녀인 여러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십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을 키우느라 많은 물질을 희생하고 여러분들이 아플때는 간호하느라 잠도 못 주무시고 여러분들 공부시키느라 먹고 싶은 것도 안먹고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사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희생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과 돈과 재능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 중에 최고의 희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목숨을 내어 주는 희생입니다. 이번 주에 광복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과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었음을 반드시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섬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왜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실까요?
첫째로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이 땅에 오실 때에 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의인들이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이런 일을 한 것입니까?” 그때 주님을 이렇게 답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예수님은 너희 중에 어린 소자에게 내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이라고 준 것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것은 곧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테레사 수녀님을 아시나요? 이 분은 인도에서 집도 없이 길거리서 태어나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일생 섬기신 분인데 그 분에 관한 예화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우리의 진정한 상급을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상급으로 여기는 자만이 섬김의 살을 끝까지 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막10:45절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마가복음 전체의 대표하는 요절말씀입니다. 우리가 섬김의 삶을 살아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섬기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하늘보좌와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왕이나 귀족의 집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성장의 고통과 연약함을 경험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섬기신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니고데모를 섬기셨고 이기적인 세리 레위와 여리고의 세관장 삭개오를 섬기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과 수가성에서 다섯 남편을 둔 까칠한 여자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들려 쓸모없이 된 한 청년을 고치기 위해 돼지 떼 2천마리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크냐 다투며 하나가 되지 못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마침내는 그는 우리 죄를 위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의 피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는 예수님의 섬김으로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면서 그들을 섬기면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섬김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차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김을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회장이나 반장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기사가 나와서 무슨
내용인가 봤더니 국제중학교나 특목고에 가려면 회장이나 반장경력이 있어야 유리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출마자도 많아졌고 심지어는 학원의 도움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스펙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참으로 하나님 보실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크고자 하십시오. 높고자 하십시오. 이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목적을 “섬김”에 두어야 하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는데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섬기는 것만이 하나님께 한 것이요 섬기는 것만이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나를 섬기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나를 섬기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를 섬기신 예수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JBF 여러분들이 모두 섬김의 삶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부지런히 배워서 진정 큰 자의 인생,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