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강 권위있는 새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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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JBF 마가복음 제 2강
본문 마가복음 1:16-45
요절 누가복음 1:27
권위 있는 새 교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 즉 순종하는도다.”
저와 여러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권위 있는 새 교훈”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놀라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과 같지 않고 그 가르치시는 것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병든 자들이 낫고 예수님이 귀신을 명하여 "나가라" 하면 순종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으며 우리 안에도 죄를 회개하고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병든 자들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귄위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16-2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만민을 구원한다.” 이는 얼마나 크고 원대한 비전인지 모릅니다. 이 비전을 이루려면 얼마나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상만민을 구원하려면 사람들도 많이 모아야 하고 유대에만 계시지 않고 전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이처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하신 일이 바로 제자를 부르신 일입니다. 그것도 많은 제자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열 두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시골마을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 세금을 걷던 사람, 데모하던 사람 등 별 볼일 없고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무엇을 하시려 하신 것입니까? 17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리 하시니”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모든 것을 배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말씀도 배우고 그의 삶과 인격과 사역 모든 것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는 것도 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아서 그것을 팔아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사람들을 죽음의 바다에서 낚아 구원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크고 원대한 비전을 제자들과 함께 이루려 하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빈둥빈둥 놀고 있다가 부르심을 받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공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꼭 공부가 아니라더라도 악기를 배우는 것이나 혹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대인관계를 잘 하는 것이나 아니면 어떠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나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고 있으면 주님이 그것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과 일에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의 귀한 제자로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과 사역들(20-45) 21,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 이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고 재판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도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묵상하고 또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말씀을 가르치는 방식을 보면 “랍비 힐렐이 이르시되...”라면서 권위 있는 랍비나 성경주석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명성과 권위를 사용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누구의 명성이나 권위가 아닌 자신의 권위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말하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저자요 해석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시 한편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시에 대해서 이 시를 쓴 시인이 잘 가르칠까요? 시 평론가가 잘 가르칠까요? 당연히 시를 직접 쓰신 시인이 잘 가르치시겠죠? 그 시의 주제는 무엇이고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이 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물론 시평론가도 해석을 잘하겠지만 오류도 많은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오류와 부족함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가르치시니 사람들의 마음이 시원해지고 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며 이러한 예를 간단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또한 안식일에 바리새인들이 한 손마른 자를 고치시는가 엿보는 것을 아시고 그를 고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또한 분명하게 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권위에 놀라며 감동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신이 순종하는 것을 보고 그 권위에 놀랐습니다. 23~2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최근에 신문을 보니 아무런 이유없이 죽고 싶다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본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이런 악한 생각의 배후에는 악한 역 곧 귀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귀신은 어떠한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역사는 의사도, 어떤 전문가도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 앞에서는 두려워하며 떠나갑니다. 예수님은 그를 능히 무저갱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사탄의 역사가 있다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나사렛 예수, 그 이름의 권위를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졌습니다. 문둥병은 살이 썩고 고름이 나와 심한 악취를 풍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 떠나 외딴 곳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정산인들의 앞에 나올 수 없었고 정상인들이 지날 때면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며 예수님은 문둥병자가 그에게 나와 고쳐달라고 하셨을 때 먼저 그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먼저 그에게 당신의 사랑과 그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고귀한 인격체로 영접해 주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권위있는 새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바른 교훈을 받게 되면 우리 안에 죄들이 떠나가고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것들이 나음을 받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권위있는 새 교훈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JBF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고 말씀의 권위로 변화를 받아 주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 마가복음 1:16-45
요절 누가복음 1:27
권위 있는 새 교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 즉 순종하는도다.”
저와 여러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권위 있는 새 교훈”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놀라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과 같지 않고 그 가르치시는 것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병든 자들이 낫고 예수님이 귀신을 명하여 "나가라" 하면 순종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으며 우리 안에도 죄를 회개하고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병든 자들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귄위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16-2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만민을 구원한다.” 이는 얼마나 크고 원대한 비전인지 모릅니다. 이 비전을 이루려면 얼마나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상만민을 구원하려면 사람들도 많이 모아야 하고 유대에만 계시지 않고 전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이처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하신 일이 바로 제자를 부르신 일입니다. 그것도 많은 제자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열 두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시골마을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 세금을 걷던 사람, 데모하던 사람 등 별 볼일 없고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무엇을 하시려 하신 것입니까? 17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리 하시니”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모든 것을 배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말씀도 배우고 그의 삶과 인격과 사역 모든 것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는 것도 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아서 그것을 팔아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사람들을 죽음의 바다에서 낚아 구원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크고 원대한 비전을 제자들과 함께 이루려 하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빈둥빈둥 놀고 있다가 부르심을 받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공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꼭 공부가 아니라더라도 악기를 배우는 것이나 혹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대인관계를 잘 하는 것이나 아니면 어떠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나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고 있으면 주님이 그것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과 일에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의 귀한 제자로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과 사역들(20-45) 21,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 이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고 재판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도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묵상하고 또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말씀을 가르치는 방식을 보면 “랍비 힐렐이 이르시되...”라면서 권위 있는 랍비나 성경주석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명성과 권위를 사용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누구의 명성이나 권위가 아닌 자신의 권위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말하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저자요 해석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시 한편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시에 대해서 이 시를 쓴 시인이 잘 가르칠까요? 시 평론가가 잘 가르칠까요? 당연히 시를 직접 쓰신 시인이 잘 가르치시겠죠? 그 시의 주제는 무엇이고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이 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물론 시평론가도 해석을 잘하겠지만 오류도 많은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오류와 부족함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가르치시니 사람들의 마음이 시원해지고 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며 이러한 예를 간단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또한 안식일에 바리새인들이 한 손마른 자를 고치시는가 엿보는 것을 아시고 그를 고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또한 분명하게 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권위에 놀라며 감동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신이 순종하는 것을 보고 그 권위에 놀랐습니다. 23~2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최근에 신문을 보니 아무런 이유없이 죽고 싶다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본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이런 악한 생각의 배후에는 악한 역 곧 귀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귀신은 어떠한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역사는 의사도, 어떤 전문가도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 앞에서는 두려워하며 떠나갑니다. 예수님은 그를 능히 무저갱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사탄의 역사가 있다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나사렛 예수, 그 이름의 권위를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졌습니다. 문둥병은 살이 썩고 고름이 나와 심한 악취를 풍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 떠나 외딴 곳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정산인들의 앞에 나올 수 없었고 정상인들이 지날 때면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며 예수님은 문둥병자가 그에게 나와 고쳐달라고 하셨을 때 먼저 그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먼저 그에게 당신의 사랑과 그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고귀한 인격체로 영접해 주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권위있는 새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바른 교훈을 받게 되면 우리 안에 죄들이 떠나가고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것들이 나음을 받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권위있는 새 교훈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JBF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고 말씀의 권위로 변화를 받아 주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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