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47강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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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JBF 누가복음 제47강
본문 누가복음 23:26-56
요절 누가복음 23:43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와 여러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그리고 지난주는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한 주였습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중요한 건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는 중에 한 편 강도를 구원하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왜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 되는지를 잘 들어낸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새롭게 고백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26:26~31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형을 언도받고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군병들은 형을 빨리 집행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자꾸 쓰러지시자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잡아다 예수님을 대신에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을 구경하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그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믿고 초대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지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그의 뒤를 가슴을 치며 슬피는 여인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여러분들 중에 예수님 위해 혹은 예수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신 분들이 있나요?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예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당하게 될 심판과 그로인한 고통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값으로 로마에 의해 포위당하고 마침내는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도록 다 무너지고 멸망하게 됩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31절을 봅시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마른 나무는 우리들을 의미합니다. 푸른 나무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데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고난 받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마른 나무인 우리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얼마나 혹독하고 무서운 심판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생각할 때 지금 자기을 위해 울 때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울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중에 아무도 심판받고 멸망당하길 원치 않으시는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32,33절을 봅시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십자가 형은 인간이 고안한 사형 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방법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빨리 죽지도 못하고 물과 피를 다 쏟은 후에야 죽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천 번을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을 욕하고 저주하면서 몸부림을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극심한 고통 중에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34절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무엇을 기도하셨나요? 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한 고난이요 대속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죽어가시면서도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지선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한나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하경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를 사하시려 나를 대신해서 정죄받으시고 죽으신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명은 예수님의 우편에, 다른 한명은 예수님의 좌편에 못 박혔습니다. 그들은 다른 성경에 강도라고 되어 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볼 때 그들은 아주 흉악한 죄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편 강도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39절을 봅시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그는 예수님께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자신을 구원하여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다른 편 강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난한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40절을 봅시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의로우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예수님께 한 요청입니다. 42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그렇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는 일생 죄만 짓다가 마침내는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천국에 간다는 것은 결코 바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지금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는 예수님을 통해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는 이전에 예수님을 알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극심한 고통 중에 아주 짧은 시간 예수님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예수님의 기도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는 이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의로운 죽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죄사함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에게 죽음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짧은 순간 오직 예수님이라면 그를 낙원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갔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담대해 요청합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그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43절을 다함께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당신의 나라에 우리를 초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천국은 착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에 천국은 착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한 편 강도와 같이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주신 것을 믿고 예수님이 나를 천국에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슬픈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서 섰는데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은 주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을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거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무수히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이 말씀이 임하지 않는다면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강도처럼 죄를 아무리 많이 짓고 인생을 엉망으로 살았어도 오늘 이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이 임하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축복된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편 강도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십시오.”, “오늘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한 대속의 죽임이요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예수님의 부활을 배우게 될텐데 그 전에 먼저 우리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오직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기도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누가복음 23:26-56
요절 누가복음 23:43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와 여러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그리고 지난주는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한 주였습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중요한 건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는 중에 한 편 강도를 구원하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왜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 되는지를 잘 들어낸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새롭게 고백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26:26~31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형을 언도받고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군병들은 형을 빨리 집행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자꾸 쓰러지시자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잡아다 예수님을 대신에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을 구경하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그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믿고 초대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지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그의 뒤를 가슴을 치며 슬피는 여인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여러분들 중에 예수님 위해 혹은 예수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신 분들이 있나요?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예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당하게 될 심판과 그로인한 고통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값으로 로마에 의해 포위당하고 마침내는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도록 다 무너지고 멸망하게 됩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31절을 봅시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마른 나무는 우리들을 의미합니다. 푸른 나무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데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고난 받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마른 나무인 우리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얼마나 혹독하고 무서운 심판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생각할 때 지금 자기을 위해 울 때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울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중에 아무도 심판받고 멸망당하길 원치 않으시는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32,33절을 봅시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십자가 형은 인간이 고안한 사형 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방법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빨리 죽지도 못하고 물과 피를 다 쏟은 후에야 죽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천 번을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을 욕하고 저주하면서 몸부림을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극심한 고통 중에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34절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무엇을 기도하셨나요? 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한 고난이요 대속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죽어가시면서도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지선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한나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하경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를 사하시려 나를 대신해서 정죄받으시고 죽으신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명은 예수님의 우편에, 다른 한명은 예수님의 좌편에 못 박혔습니다. 그들은 다른 성경에 강도라고 되어 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볼 때 그들은 아주 흉악한 죄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편 강도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39절을 봅시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그는 예수님께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자신을 구원하여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다른 편 강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난한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40절을 봅시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의로우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예수님께 한 요청입니다. 42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그렇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는 일생 죄만 짓다가 마침내는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천국에 간다는 것은 결코 바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지금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는 예수님을 통해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는 이전에 예수님을 알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극심한 고통 중에 아주 짧은 시간 예수님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예수님의 기도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는 이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의로운 죽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죄사함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에게 죽음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짧은 순간 오직 예수님이라면 그를 낙원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갔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담대해 요청합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그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43절을 다함께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당신의 나라에 우리를 초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천국은 착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에 천국은 착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한 편 강도와 같이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주신 것을 믿고 예수님이 나를 천국에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슬픈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서 섰는데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은 주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을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거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무수히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이 말씀이 임하지 않는다면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강도처럼 죄를 아무리 많이 짓고 인생을 엉망으로 살았어도 오늘 이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이 임하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축복된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편 강도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십시오.”, “오늘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한 대속의 죽임이요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예수님의 부활을 배우게 될텐데 그 전에 먼저 우리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오직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기도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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