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강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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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 로마서 8강
말씀 | 로마서 6:1-23
요절 |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는 지금까지 로마서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배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놀라운 축복을 받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 은혜의 복음을 주셨는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과거의 내가 죄와 함께 죽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세례에 대한 신비로운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신앙고백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이 세례에는 어떤 신비로운 의미가 있습니까? 세례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고 6절에서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죄의 몸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1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죄의 욕구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을 느낍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도 죄와 법적인 관계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서 죄 값에 대해서 나에게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요구하는 부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우리도 함께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관계를 끊고 죄의 통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3-4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옛 사람은 아담 안에 있었던 나의 옛 자아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죽어서 없어졌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무덤 속에 장사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나는 옛 사람과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옛 사람은 끝난 사람입니다. 반면 지금의 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고후 5: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적용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우리 신자가 가져야 하는 정체성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목적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나오는데 우리는 가지이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말라비틀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면 자연히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주님과 교제합니다. 인격적인 말씀을 통해서 매일 매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기도로 나의 뜻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기도 응답을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과 그 말씀 안에 거하며 예수님과 교제에 힘쓰므로 풍성한 열매 맺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나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 몸은 무기입니다. 나의 지체는 손과 발과 눈과 머리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들, 나의 삶의 모든 부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지체를 죄에게 드리면 죄의 병기가 됩니다. 그때 죄가 나를 주관하게 됩니다. 죄가 나를 끌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똑같은 지체라도 누가 쓰는가? 누구에게 바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돈도 자선단체에 드리면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곳에 쓰이지만 테러단체에 드리면 죽이는데 쓰입니다. 사람들은 지체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죄에게 자신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결국 죄에 드리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지 않으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면서도 왜 자꾸 죄에 넘어질까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드리든지 죄에게 주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가능성들을 적극적으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드려야합니다. 칼은 쓰면 쓸수록 날카로와지고 명검이 되듯이,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드리면 드릴수록 빛이 나고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숨겨두면 녹슬고 부패하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하나님께 드릴 때 살아있고, 능력 있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또한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죄를 짓는데서 오는 순간적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한한 기쁨을 주겠노라는 제안을 듣고서도 그저 술이나 섹스나 야망과 같은 것들이나 만지작거리면서 놀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시시한 것들에 쉽게 만족해 버립니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어서 뒷골목이나 배회하는 무지한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생명의 길이요, 자기 성장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법 아래에서 죄의 종노릇하였지만 이제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극복하고 거룩함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5-23절은 우리가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또 회개하고 용서 받으면 되겠지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은혜를 남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왜 마음대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이는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는 가에 따라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16a). 19절을 보십시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사도 바울은 살전 4:3절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에도 ‘너희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거룩’이란 단어가 460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곳에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거룩은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초청장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거룩을 추구하는 자, 순결한 자를 찾으시고 그에게 놀라운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 시대는 거룩과 경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거룩과 경건하면 왠지 고리타분에게 느껴지고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신자들조차 성공과 출세에 관심이 많지, 거룩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될 때 비로소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신비한 연합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열매는 영생입니다.
22,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 사실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로마서 6:1-23
요절 |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는 지금까지 로마서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배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놀라운 축복을 받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 은혜의 복음을 주셨는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과거의 내가 죄와 함께 죽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세례에 대한 신비로운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신앙고백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이 세례에는 어떤 신비로운 의미가 있습니까? 세례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고 6절에서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죄의 몸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1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죄의 욕구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을 느낍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도 죄와 법적인 관계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서 죄 값에 대해서 나에게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요구하는 부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우리도 함께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관계를 끊고 죄의 통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3-4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옛 사람은 아담 안에 있었던 나의 옛 자아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혔다, 죽어서 없어졌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무덤 속에 장사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나는 옛 사람과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옛 사람은 끝난 사람입니다. 반면 지금의 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고후 5: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적용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우리 신자가 가져야 하는 정체성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목적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나오는데 우리는 가지이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말라비틀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면 자연히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주님과 교제합니다. 인격적인 말씀을 통해서 매일 매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기도로 나의 뜻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기도 응답을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과 그 말씀 안에 거하며 예수님과 교제에 힘쓰므로 풍성한 열매 맺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나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 몸은 무기입니다. 나의 지체는 손과 발과 눈과 머리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들, 나의 삶의 모든 부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지체를 죄에게 드리면 죄의 병기가 됩니다. 그때 죄가 나를 주관하게 됩니다. 죄가 나를 끌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똑같은 지체라도 누가 쓰는가? 누구에게 바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돈도 자선단체에 드리면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곳에 쓰이지만 테러단체에 드리면 죽이는데 쓰입니다. 사람들은 지체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죄에게 자신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결국 죄에 드리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지 않으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면서도 왜 자꾸 죄에 넘어질까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드리든지 죄에게 주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가능성들을 적극적으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드려야합니다. 칼은 쓰면 쓸수록 날카로와지고 명검이 되듯이,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드리면 드릴수록 빛이 나고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숨겨두면 녹슬고 부패하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하나님께 드릴 때 살아있고, 능력 있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또한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죄를 짓는데서 오는 순간적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한한 기쁨을 주겠노라는 제안을 듣고서도 그저 술이나 섹스나 야망과 같은 것들이나 만지작거리면서 놀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시시한 것들에 쉽게 만족해 버립니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어서 뒷골목이나 배회하는 무지한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생명의 길이요, 자기 성장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법 아래에서 죄의 종노릇하였지만 이제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극복하고 거룩함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5-23절은 우리가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또 회개하고 용서 받으면 되겠지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은혜를 남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왜 마음대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이는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는 가에 따라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16a). 19절을 보십시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사도 바울은 살전 4:3절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에도 ‘너희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거룩’이란 단어가 460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곳에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거룩은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초청장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거룩을 추구하는 자, 순결한 자를 찾으시고 그에게 놀라운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 시대는 거룩과 경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거룩과 경건하면 왠지 고리타분에게 느껴지고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신자들조차 성공과 출세에 관심이 많지, 거룩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될 때 비로소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신비한 연합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열매는 영생입니다.
22,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 사실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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