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죄아래에 있다 (로마서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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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로마서 4강
말씀 | 로마서 2:17-3:20
요절 | 로마서 3:9,10
다 죄 아래에 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2장은 우리가 의롭지 않으니 회개해야 산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2장에서 회개하지 않은 자는 불의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행하지 않으면서 남을 가르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거룩하라고 가르치는 너희는 아직 죄인이 아니냐는 것이니 곧 회개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회개하는 마음없이 누구도 가르치는 선생이나 훈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5~29절을 보십시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할례는 이스라에ㄹ, 유대인이 스스로 주님의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하면 거룩하고 안하면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많지 않습니까? 예배, 헌금, 봉사 등등 우리가 어떤 것을 하면 나는 거룩한 사람이야 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례 즉 거룩한 증거를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마음 성전 성령님의 전에 새겨야 합니다. 실제의 삶에서 주님의 성전으로서 예수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자려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실수도 하고 넘어질때도 있고 여전히 죄를 지을 때도 있지만 내가 이런 인간밖에 안되는 구나 깊이 깨닫고 겸손히 주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피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는 주님앞에 언제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 저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겨주시고 죄없는 자로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낮은 마음이 없을 때 우리는 겉으로는 주님을 위하여 따르는 자같이 살고 있으나 속으로는 주님의 피값을 가볍게 여기는 속 교만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피가 없다면 주님앞 에 겸소히 나아가지 않는 자라면 우리는 모두 사단의 앞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은 회개하시고 이제 스스로 주님앞에 언제나 겸손한 마으믕로 살아가며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며 주님을 더욱 경외함으로 단호하고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1-15절을 보십시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은 첫째,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 주셨지만 인간은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기피합니다. 하나님을 피해 함께 무익한 길을 갑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부패한 현실을 심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선 대신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둘째, 언어의 죄악상이 나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입니다. 무덤은 죽은 자를 장사하는 곳입니다. 목구멍은 말을 토해내는 곳입니다.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것은 말을 하는데 온갖 부정하고 썩어 냄새나는 언어들을 토해 냅니다. 혀는 목구멍보다 더 분명한 언어 기관인데 인격 깊숙이 자리 잡은 악을 나타냅니다. 부패한 인격에서 속임을 일삼습니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혀 밑에 독을 품고 있는 독사들처럼 악인의 말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죽이는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목구멍, 혀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입으로 움직여 가는데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가끔가다 악독한 저주를 내 뱉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내뱉습니다. 인격의 내면세계가 부패해 있기 때문에 죄인들은 하나님을 비웃는 것처럼 이웃들에게 난폭한 언어를 습관적으로 내뱉습니다. 육두문자와 쌍욕이 입에 붙어 있습니다.
셋째, 행동의 죄악상이 나옵니다.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릅니다. 피는 생명인데, 생명을 죽이는 곳으로 빨리 나아갑니다. 이런 죄인들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뿐입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공포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잠1: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인들은 죄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파멸의 길을 빠르게 달려갑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할 소망이 율법에 있을까요? 율법은 오히려 인류의 죄를 지적하고 죄인을 정죄합니다. 율법은 죄인들의 입을 막고 꼼짝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자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이 죄인 됨을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죄 사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그는 내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십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 때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영광스러운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로마서 2:17-3:20
요절 | 로마서 3:9,10
다 죄 아래에 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2장은 우리가 의롭지 않으니 회개해야 산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2장에서 회개하지 않은 자는 불의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행하지 않으면서 남을 가르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거룩하라고 가르치는 너희는 아직 죄인이 아니냐는 것이니 곧 회개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회개하는 마음없이 누구도 가르치는 선생이나 훈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5~29절을 보십시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할례는 이스라에ㄹ, 유대인이 스스로 주님의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하면 거룩하고 안하면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많지 않습니까? 예배, 헌금, 봉사 등등 우리가 어떤 것을 하면 나는 거룩한 사람이야 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례 즉 거룩한 증거를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마음 성전 성령님의 전에 새겨야 합니다. 실제의 삶에서 주님의 성전으로서 예수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자려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실수도 하고 넘어질때도 있고 여전히 죄를 지을 때도 있지만 내가 이런 인간밖에 안되는 구나 깊이 깨닫고 겸손히 주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피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는 주님앞에 언제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 저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겨주시고 죄없는 자로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낮은 마음이 없을 때 우리는 겉으로는 주님을 위하여 따르는 자같이 살고 있으나 속으로는 주님의 피값을 가볍게 여기는 속 교만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피가 없다면 주님앞 에 겸소히 나아가지 않는 자라면 우리는 모두 사단의 앞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은 회개하시고 이제 스스로 주님앞에 언제나 겸손한 마으믕로 살아가며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며 주님을 더욱 경외함으로 단호하고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1-15절을 보십시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은 첫째,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 주셨지만 인간은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기피합니다. 하나님을 피해 함께 무익한 길을 갑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부패한 현실을 심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선 대신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둘째, 언어의 죄악상이 나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입니다. 무덤은 죽은 자를 장사하는 곳입니다. 목구멍은 말을 토해내는 곳입니다.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것은 말을 하는데 온갖 부정하고 썩어 냄새나는 언어들을 토해 냅니다. 혀는 목구멍보다 더 분명한 언어 기관인데 인격 깊숙이 자리 잡은 악을 나타냅니다. 부패한 인격에서 속임을 일삼습니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혀 밑에 독을 품고 있는 독사들처럼 악인의 말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죽이는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목구멍, 혀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입으로 움직여 가는데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가끔가다 악독한 저주를 내 뱉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내뱉습니다. 인격의 내면세계가 부패해 있기 때문에 죄인들은 하나님을 비웃는 것처럼 이웃들에게 난폭한 언어를 습관적으로 내뱉습니다. 육두문자와 쌍욕이 입에 붙어 있습니다.
셋째, 행동의 죄악상이 나옵니다.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릅니다. 피는 생명인데, 생명을 죽이는 곳으로 빨리 나아갑니다. 이런 죄인들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뿐입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공포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잠1: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인들은 죄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파멸의 길을 빠르게 달려갑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할 소망이 율법에 있을까요? 율법은 오히려 인류의 죄를 지적하고 죄인을 정죄합니다. 율법은 죄인들의 입을 막고 꼼짝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자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이 죄인 됨을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죄 사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그는 내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십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 때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영광스러운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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