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 막16강 그가 살아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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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 22 강
말씀 | 마가복음 16:1-20
요절 | 마가복음 16:6
그가 살아나셨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두 기둥입니다. 내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복음의 절정이라면 부활은 복음의 결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도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무덤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군병들에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급히 향품을 준비했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새벽에 무덤으로 가서 시신에 바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순수하게 사랑했고 예수님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심히 큰 돌이 무덤 문을 막고 있었고 군인들도 지키고 있었기에 그들은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대책 없이 무덤을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그들이 무덤에 들어서자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들이 찾고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는 멸시와 거절과 저주와 비천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너무나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소망했으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인들에 의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나사렛 예수입니다(눅 24:20,21). 여인들은 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심정은 슬프고 원통했습니다. 악의 권세, 죽음의 권세 앞에 짓밟히고 꺾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여인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과 원통함을 줍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렇게 슬프하는 여인들에게 청년은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이 있습니다. 또 그 무덤을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 놓고 기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주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믿고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죽음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가장 놀라운 승리의 소식, 구원의 소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7절을 보십시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아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14:28).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고,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14:71). 그들은 무덤에 면회 오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다시 만나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연약함과 잘못을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특히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의 처절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처음처럼 사랑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실패를 회복해 주시며 우리의 삶에 참된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가는 여자들이 임무 완수에 실패했다고 기록합니다. 여자들이나 제자들, 누구도 부활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번 이야기 하셨지만,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가서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전했지만 그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 상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도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나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증인들의 증거를 듣고 믿기를 바라셨습니다. 만약 그가 나타나야 한다면 승천하시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던 도마에게 나타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말씀과 증인들의 증거를 듣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믿음이 없고 완악한 제자들을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이들에게 놀라운 명령을 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은 갈릴리 출신이고 시돈과 두로 이상 멀리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여권이나 비자도 없었고,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온 세상 만민에게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만민을 위해 죽으셨고, 만민에게 구원을 주려고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좁은 마음을 넓혀 세계를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전 세계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습니다. 복음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가 개인의 구원과 심판을 결정합니다. 구원과 심판이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복음에 대한 반응에 있다면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믿고 세례 받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시급합니까? 제자들은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복음을 믿도록 힘써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게 됩니다. 곧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됩니다. 믿음은 공허한 것이 아니라 능력의 통로입니다. 복음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역을 계승하신 후 하늘로 올려 지셨습니다. 하나님 우편 영광과 능력의 자리에 앉으셨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순종해 나가 두루 복음을 전파할 때 함께 일하셔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의 변화된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그들은 슬퍼하며 울고 또 두려워서 문을 꼭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히면 그들 역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위협과 협박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떠는 옛 사람이 아니라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심으셨고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고 지금도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많은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저는 일용할 양식을 보다가 구약에서도 부활신앙으로 일평생을 살았던 한 믿음의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갈렙은 40세에 가나안땅을 정탐하였고 그곳에 무시무시한 철병거가 있고 거인족속이 살고 있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후 45년이 지나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도 그의 이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85세의 나이에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거인 족속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위험한 땅을 정복하고자 도전하였습니다. 갈렙이 지금 시대에 살았으면 85세가 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캠퍼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개척되지 않은 캠퍼스를 개척하며 전심으로 복음역사를 섬기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불가능한 싸움을 싸우며 정복하고 개척하는 삶을 일평생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갈렙의 믿음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고 그와 함께 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에 종된 삶을 살지 않고 대신에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도전하고 개척하며 정복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마가복음 16:1-20
요절 | 마가복음 16:6
그가 살아나셨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두 기둥입니다. 내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복음의 절정이라면 부활은 복음의 결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도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무덤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군병들에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급히 향품을 준비했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새벽에 무덤으로 가서 시신에 바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순수하게 사랑했고 예수님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심히 큰 돌이 무덤 문을 막고 있었고 군인들도 지키고 있었기에 그들은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대책 없이 무덤을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그들이 무덤에 들어서자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들이 찾고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는 멸시와 거절과 저주와 비천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너무나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소망했으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인들에 의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나사렛 예수입니다(눅 24:20,21). 여인들은 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심정은 슬프고 원통했습니다. 악의 권세, 죽음의 권세 앞에 짓밟히고 꺾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여인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과 원통함을 줍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렇게 슬프하는 여인들에게 청년은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이 있습니다. 또 그 무덤을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 놓고 기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주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믿고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죽음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가장 놀라운 승리의 소식, 구원의 소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7절을 보십시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아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14:28).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고,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14:71). 그들은 무덤에 면회 오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다시 만나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연약함과 잘못을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특히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의 처절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처음처럼 사랑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실패를 회복해 주시며 우리의 삶에 참된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가는 여자들이 임무 완수에 실패했다고 기록합니다. 여자들이나 제자들, 누구도 부활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번 이야기 하셨지만,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가서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전했지만 그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 상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도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나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증인들의 증거를 듣고 믿기를 바라셨습니다. 만약 그가 나타나야 한다면 승천하시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던 도마에게 나타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말씀과 증인들의 증거를 듣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믿음이 없고 완악한 제자들을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이들에게 놀라운 명령을 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은 갈릴리 출신이고 시돈과 두로 이상 멀리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여권이나 비자도 없었고,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온 세상 만민에게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만민을 위해 죽으셨고, 만민에게 구원을 주려고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좁은 마음을 넓혀 세계를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전 세계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습니다. 복음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가 개인의 구원과 심판을 결정합니다. 구원과 심판이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복음에 대한 반응에 있다면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믿고 세례 받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시급합니까? 제자들은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복음을 믿도록 힘써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게 됩니다. 곧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됩니다. 믿음은 공허한 것이 아니라 능력의 통로입니다. 복음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역을 계승하신 후 하늘로 올려 지셨습니다. 하나님 우편 영광과 능력의 자리에 앉으셨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순종해 나가 두루 복음을 전파할 때 함께 일하셔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의 변화된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그들은 슬퍼하며 울고 또 두려워서 문을 꼭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히면 그들 역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위협과 협박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떠는 옛 사람이 아니라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심으셨고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고 지금도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많은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저는 일용할 양식을 보다가 구약에서도 부활신앙으로 일평생을 살았던 한 믿음의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갈렙은 40세에 가나안땅을 정탐하였고 그곳에 무시무시한 철병거가 있고 거인족속이 살고 있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후 45년이 지나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도 그의 이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85세의 나이에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거인 족속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위험한 땅을 정복하고자 도전하였습니다. 갈렙이 지금 시대에 살았으면 85세가 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캠퍼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개척되지 않은 캠퍼스를 개척하며 전심으로 복음역사를 섬기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불가능한 싸움을 싸우며 정복하고 개척하는 삶을 일평생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갈렙의 믿음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고 그와 함께 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에 종된 삶을 살지 않고 대신에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도전하고 개척하며 정복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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