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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6강 푯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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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138회 작성일 13-09-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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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빌립보서 제 6 강
말씀 | 빌립보서 3:12-21
요절 |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러분 학교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생을 열심히 사시는 분들과 그렇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확고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열심히 합니다. 최선을 다해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분야에서 성공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기독교 역사가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룬 분입니다. 그는 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로마서를 비롯한 많은 서신을 써서 기독교 교리를 확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열심히 예수님을 배워서 그의 인격은 거의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일을 이루고 또한 신앙의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에게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바울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자세로 달려갔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 안에서 내가 바라봐야할 분명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일생 달려가시고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상을 얻은 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1장 목표가 이끄는 삶 (12-17)
여러분 사도바울에게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목표는 첫째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메시지를 통해서 배운 것이 이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자 이전에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둘째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베드로나 요한같은 열두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소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그리고 지금은 비록 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이지만 로마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이 목표들은 어떻게 갖게 된 것입니까?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 목표에 비추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12절을 읽어 봅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라간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도바울은 그의 목표를 다른데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목표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목표를 나의 목표를 갖게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네게 주신 목표일때 그것은 변할 수 없는 확고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도바울처럼 모두 예수님 안에서 확고한 목표를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을 위해 여러분들도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그 목표에 대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그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는 아직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볼 때 사도바울은 얻은 것도 많고 이룬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고 말씀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얻은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그의 높은 목표 때문입니다.

여러분 70점을 목표로 하는 학생과 100점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의 목표가 더 높은가요?  100점을 목표로 하는 학생의 목표가 더 높습니다. 그러면 이 둘 중 누가 더 열심히 공부를 할까요?  100점을 목표로 하는 학생입니다. 그러면 한 문제 틀린 것에 대한 이 두 학생의 평가는 어떨까요? 같을까요? 다를까요? 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70점을 목표로 한 학생은 한 문제 틀려도 상관 없습니다. 한 문제 틀려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70점을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0점을 목표로 한 학생은요? 한 문제를 틀리면 난리가 납니다. 왜요? 백점을 맞지 못하니까요. 여러분 사도바울의 목표는 점수로 하면 몇 점일 것 같습니까? 70점일까요? 100점일까요? 사도바울의 목표는 100점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룬 것이 99점일지라도 그는 결코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3-14절을 읽어 봅시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러분 사실 사도바울은 이룬 일도 많고 그의 신앙은 완숙의 경지에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자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이렇게 계속하여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의 성공, 성과, 업적, 체험들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 좌절, 상처, 방황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서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앞에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히12:2)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셨습니다. 우리가 앞서 가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에 이르도록 자라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앞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주실 부름의 상입니다. 이 목표에 대해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7,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주실 상을 바라봤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상을 얻지 못할지라도 때로는 그들에게 미움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목표를 향한 그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강영우 박사님은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로 미국 장애인 정책 차관보로 또한 UN세계장애인 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고문으로 7억명에 가까운 세계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많은 활동과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자신에게는 “석은옥”이라는 30년의 비젼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석은옥”이란 석의 시대 10년, 은의 시대 10년, 옥의 시대 10년을 말합니다. 석의 시대 10년간은 돌밭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처럼 고난과 역경의 시대겟지만 믿음으로 극복해 시각장애인으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고 은의 시대 10년간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정에서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양육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옥의 시대 10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은 눈 뜬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지만, 그때는 사회에 유익을 주며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가 이끄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책인데 리차드 바크가 지은 갈매기의 꿈이란 책을 아시나요? 읽어 보셨나요?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 나오는 갈매기의 꿈은 이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리속에 사는 것이나 먹이를 찾기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빨리, 좀 더 높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을 위해 갈매기 조나단은 배움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그 결과 그는 어떤 갈매기도 경험하지 못한 고공비행을 성공하고 깃털사이에 묻은 눈 결정체가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것에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사도바울처럼 내가 누구이며 내가 달려가야할 목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생동안 이 목표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길을 다 달려간 후에 그를 위해 상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일생 많은 일들을 이루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도바울처럼 예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의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발견하시고 일생 그것을 향해야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 목표를 향해 계속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와 우리 선생들은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제2장 소망을 품은 목표 (18-21)
여러분 세상에는 사도바울처럼 예수님 안에서 분명한 목표를 향해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목표가 없거나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서양속담에 인생은 항해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에는 항해하는 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표류하는 배도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똑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똑같은 두 척의 배가  있는데 하나는 항해하는 배고 하나는 표류하는 배라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들에게 배의 선장들에게 한마디 질문을 통해 이 배가 항해하는 배인지 표류하는 배인지를 맞춰보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어떤 배가 항해하는 배인지 표류하는 배인지를 맞출 수 있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배의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왜 그렇죠? 여러분 항해하는 것과 표류하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목적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배의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라고 물으면 항해하는 배는 바로 대답이 나옵니다. 이 배는 인천을 갑니다. 이 배는 시드니를 갑니다. 이 배는 뉴욕을 갑니다. 그런데 표류하는 배는요? “저희 배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에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너의 목적지는 어디야?”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인생을 항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은 반드시 여러분이 확신하고 있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15절은 우리에게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으셨나요?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우리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망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20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여러분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많은 베트남 국민들이 목숨을 걸고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습니다. 그때 나온 용어가 "보트피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보트피플들이 바다에서 표류하다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왜냐면 주변국가들이 시민권이 없는 그들의 입국을 거절하고 구조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트피플과 같이 인생의 바다를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항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여러분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은 우리는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진정한 인생의 항해사들입니다. 그 목적지가 어디라고요? 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20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그곳에 누가 기다리고 있다고요? 예수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곳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상함도 없고 해됨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수님을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열굴과 얼굴을 맞주대하고 보듯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는 얼마나 좋은 곳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둘째 우리의 소망은 영광스런 부활입니다. 21절을 읽어봅시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가면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실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의 몸은 영광스럽고 신령하며 강하고 자유로운 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가진 하신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소망입니다.

여러분들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으셨나요?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스런 부활의 소망을 발견하셨나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목표는 분명해 진 것입니다. 그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예배하고 계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사시기바랍니다.  예수님을 목표로 삼고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사는 여러분들은 진정한 인생의 항해자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항해에 예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생동안 예수님 안에서 받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사시고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진정한 승리자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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