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제3강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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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빌립보서 제 3 강
말씀 | 빌립보서 2:1-11
요절 |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교훈과 기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하나될 때 세상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여러모로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리더들 간에 갈등과 다툼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각자 다르고 개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토요일 저녁에 모여 JBF모임을 할 때 어땠어요? 어떤 친구는 밴드를 제대로 하고 싶어하고 어떤 친구들은 그저 모여서 즐겁게 찬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름수양회는 어땠나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 일들이 있었죠? 다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하나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뭘까요? 우리 다같이 1절을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 안에서의 교제 그리고 긍휼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네 가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볼까요? 첫째 권면입니다. 우리가 죄에 빠져 있으면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또한 권면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를 세울 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위로입니다. 교회 안에 권면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주눅 들고 모임은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권면과 더불어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성령의 교제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도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인간적인 교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긍휼과 자비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특히 연약한 자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교제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되게 하는 네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봅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툼과 허영입니다. 먼저 ‘다툼’이란 영어로 ‘selfish ambition’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자기의 이기적인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허영’이란 ‘헛된 영광’이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알맹이 없이 치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과 인정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다툼과 분열만을 낳을 뿐입니다.
여러분, 다툼과 분열이 있는 교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관심은 없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왠지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이런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고 신앙생활은 기쁨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4절을 봅시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라.”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50점 밖에 안 됩니다. 우리는 자기 일을 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이게 무슨 뜻입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니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공부해서 남 주라” 왜냐면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자기를 뛰어 넘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한 마음이 되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한 네 가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자비와 긍휼이입니다. 그리고요? 우리는 자기 일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5절을 봅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과 자비 그리고 다른 사람들 돌아보는 이 모든 일들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 겸손의 마음입니다. 6절을 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란 말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에 한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에서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겸손히 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행하여 갈릴리로 가실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라고 하는 곳의 우물가에서 그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녀를 돕기 위해 한없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당신은 물그릇도 없으면서 어디서 수작이야,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라며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상처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선물로 그녀를 초청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가장 낮은 자의 마음에 찾아와 함께 하시는 겸손의 본체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때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높여 찬양합니다.
둘째, 섬김의 마음입니다. 7절을 봅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비워’를 영어로 보면 ‘made himself nothing’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 다투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제자들은 참으로 허물이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날에는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팔고자 작정한 가룟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하셨을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은 종으로서 폼만 잡은 것이 아니라 종의 마음을 가지셨고, 실제로 종처럼 낮아져 죄로 냄새나는 우리 죄인들을 섬겨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인생의 상처를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 8절을 봅시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아무도 낮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가장 낮은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의 멸시와 저주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 자리에 가셨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민망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a)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b)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예수님의 순종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사도바울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많은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목사로서 교회에서 신수비를 받으면서 사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텐트를 만든 일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영접한 후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스스로 자유함을 포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에서 자유로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판단하고 시험에 드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자유하지만 그 형제를 위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양들을 섬길 수 있었던 비결은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바울도 한때는 한 고집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1차 전도여행때 힘들다고 도망간 마가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를 2차 전도여행에 데려가는 문제로 그의 절친한 동역자인 바나바와 대판 싸우고 그는 실라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운 이후에는 마가를 영접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동역자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수록 다툼과 허영으로 교회가 분열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부디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비밀은 이것입니다. 9-11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엡1:21,22)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 있는 인간들이나 지하에 잠든 모든 자들 곧 모든 피조물들도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은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배리 선교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더배리 선교사님은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같이 우리 모임을 세우셨지만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리더들이 자라서 일을 담당할 때 자신의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녀는 뒤로 물러나서 일대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자 하나님은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돌아가시자 2대 총재가 되어 겸손히 우리 모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 분은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12팀 이상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로 양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는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겸손히 낮아져 양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많은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한국에 수많은 목자들과 선교사님을 세우셔서 전세계 125개국에 개척토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기를 비우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될 때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여기시며 자기를 비워 섬기는 자를 반드시 높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국의 최초 맹인 박사인 고 강영우 박사님은 13세에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중학생일 때 축구공에 맞아 망막 박리로 실명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아 8시간 만에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누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2년만에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그 후에 그의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그는 맹인재활센타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그는 잘 되어야 맹인 안마사나 되어 그럭저럭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어떻게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되고 7억 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그의 가진 것을 나눠 주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위대한 경험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을 만난 사람은 결코 평범하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는 반드시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낮고 낮은 자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가장 존귀하고 높은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강력히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JBF친구들이 모두 예수님을 만난 자로, 또한 그의 마음을 품은 자로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빌립보서 2:1-11
요절 |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교훈과 기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하나될 때 세상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여러모로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리더들 간에 갈등과 다툼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각자 다르고 개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토요일 저녁에 모여 JBF모임을 할 때 어땠어요? 어떤 친구는 밴드를 제대로 하고 싶어하고 어떤 친구들은 그저 모여서 즐겁게 찬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름수양회는 어땠나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 일들이 있었죠? 다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하나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뭘까요? 우리 다같이 1절을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 안에서의 교제 그리고 긍휼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네 가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볼까요? 첫째 권면입니다. 우리가 죄에 빠져 있으면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또한 권면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를 세울 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위로입니다. 교회 안에 권면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주눅 들고 모임은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권면과 더불어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성령의 교제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도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인간적인 교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긍휼과 자비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특히 연약한 자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교제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되게 하는 네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봅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툼과 허영입니다. 먼저 ‘다툼’이란 영어로 ‘selfish ambition’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자기의 이기적인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허영’이란 ‘헛된 영광’이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알맹이 없이 치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과 인정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다툼과 분열만을 낳을 뿐입니다.
여러분, 다툼과 분열이 있는 교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관심은 없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왠지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이런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고 신앙생활은 기쁨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4절을 봅시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라.”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50점 밖에 안 됩니다. 우리는 자기 일을 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이게 무슨 뜻입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니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공부해서 남 주라” 왜냐면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자기를 뛰어 넘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한 마음이 되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한 네 가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자비와 긍휼이입니다. 그리고요? 우리는 자기 일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5절을 봅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과 자비 그리고 다른 사람들 돌아보는 이 모든 일들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 겸손의 마음입니다. 6절을 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란 말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에 한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에서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겸손히 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행하여 갈릴리로 가실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라고 하는 곳의 우물가에서 그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녀를 돕기 위해 한없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당신은 물그릇도 없으면서 어디서 수작이야,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라며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상처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선물로 그녀를 초청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가장 낮은 자의 마음에 찾아와 함께 하시는 겸손의 본체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때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높여 찬양합니다.
둘째, 섬김의 마음입니다. 7절을 봅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비워’를 영어로 보면 ‘made himself nothing’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 다투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제자들은 참으로 허물이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날에는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팔고자 작정한 가룟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하셨을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은 종으로서 폼만 잡은 것이 아니라 종의 마음을 가지셨고, 실제로 종처럼 낮아져 죄로 냄새나는 우리 죄인들을 섬겨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인생의 상처를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 8절을 봅시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아무도 낮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가장 낮은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의 멸시와 저주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 자리에 가셨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민망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a)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b)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예수님의 순종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사도바울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많은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목사로서 교회에서 신수비를 받으면서 사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텐트를 만든 일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영접한 후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스스로 자유함을 포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에서 자유로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판단하고 시험에 드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자유하지만 그 형제를 위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양들을 섬길 수 있었던 비결은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바울도 한때는 한 고집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1차 전도여행때 힘들다고 도망간 마가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를 2차 전도여행에 데려가는 문제로 그의 절친한 동역자인 바나바와 대판 싸우고 그는 실라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운 이후에는 마가를 영접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동역자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수록 다툼과 허영으로 교회가 분열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부디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비밀은 이것입니다. 9-11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엡1:21,22)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 있는 인간들이나 지하에 잠든 모든 자들 곧 모든 피조물들도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은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배리 선교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더배리 선교사님은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같이 우리 모임을 세우셨지만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리더들이 자라서 일을 담당할 때 자신의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녀는 뒤로 물러나서 일대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자 하나님은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돌아가시자 2대 총재가 되어 겸손히 우리 모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 분은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12팀 이상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로 양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는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겸손히 낮아져 양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많은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한국에 수많은 목자들과 선교사님을 세우셔서 전세계 125개국에 개척토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기를 비우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될 때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여기시며 자기를 비워 섬기는 자를 반드시 높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국의 최초 맹인 박사인 고 강영우 박사님은 13세에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중학생일 때 축구공에 맞아 망막 박리로 실명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아 8시간 만에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누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2년만에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그 후에 그의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그는 맹인재활센타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그는 잘 되어야 맹인 안마사나 되어 그럭저럭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어떻게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되고 7억 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그의 가진 것을 나눠 주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위대한 경험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을 만난 사람은 결코 평범하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는 반드시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낮고 낮은 자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가장 존귀하고 높은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강력히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JBF친구들이 모두 예수님을 만난 자로, 또한 그의 마음을 품은 자로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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