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강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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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11 강
말씀 | 창세기 15:1-16:16 /요절 | 창세기 15:5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오늘 본문말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브람이 중동 연합군을 물리치고 난 후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저런 생각속에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은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겠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속에서 자신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도 후계자로 세워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속에 묵상기도를 하다가 환상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에요 환상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 하시면 안심시키시고 4,5절에선 다시 한번 약속과 함께 비전을 붙잡도록 도우시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타협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큰 비전을 갖도록 도우시며 믿음을 심으십니다. 자식 한 명이 아니라 하늘의 뭇 별과 같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드려봅니다.
꿈이 있습니까? 그럼 비전은 있습니까?
꿈과 비전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런 수많은 질문을 드려봅니다. 꿈(Dream)은 ‘~하고 싶은 것, ~가 되고 싶은 것’ 과 같다면 비전은 ‘~까지는 반드시 ~할 것, ~까지는 반드시 ~가 될 것’ 처럼 기한이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꿈이 개인적인 것 이라면 비전은 하나님의 일 즉 사명을 말합니다.
양육과 교육의 선구자인 네비게이토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은 회심하기 전 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벌어서 즐겁게 사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이 면에서 그는 꽤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 중심에 들어오신 후,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이 그이 삶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후 물에 빠진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 들어 그 소녀가 구조될 때까지 물 속에서 그녀를 떠받치고 있다가 그 소녀가 구출되는 순간 물속에 가라앉아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타임지에는 “항상 누군가를 붙들어 주다가 간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하루에 한 영혼을 만나고, 하루 한 구절씩 암송하며, 하루 한 시간씩 개인적으로 경건의 시간을 갖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실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 즉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깨닫게 되었으며 마음에 불타는 세계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도슨은 세계 비전을 키우는데 있어 기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고 합니다.
도슨은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늘 당신의 기도 노트를 한번 보여 주십시오. 그것을 보면 당신의 영적인 삶의 깊이와 넓이가 어떠한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 노트에 나오는 기도 제목은 바로 그의 세계 비전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바로 거기에 당신의 마음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삶의 목표입니다.”
마틴루터 킹 목사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는 1963년 워싱턴으로 향한 대대적인 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비전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꿈을 꿉니다. 꿈은 좋은 것입니다. 꿈이 있는 한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꿈을 계획으로 만들고 실천하면 그 꿈은 비로소 비전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냥 휩쓸려 가는 세상입니다. 조금 노력한다고 말씀대로 살수 있는 세상도 아닙니다. 부단히 노력하고 싸우고 애써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자신의 꿈을 생각해보고 그 꿈을 비전으로 만들 때입니다.
필요한 건 치밀한 계획과 좌절하지 않는 실천입니다.
그러면 꿈과 비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꿈은 정적이며 비전은 동적이다
꿈은 자기의 행복이며 비전은 세상의 행복이다
꿈은 새벽을 깨우고 비전은 새벽을 기다린다
꿈은 잊혀지지만 비전은 항상 기억된다
꿈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비전은 인내가 필요하다
꿈은 욕구에서 나오고 비전은 가치에서 나온다
꿈은 자기 안에서 나온 것이고 비전은 외부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꿈은 유혹이 천적이고 비전은 두려움이 천적이다
꿈은 골목대장이고 비전은 리더다
꿈은 항상 자신이 돌봐 주어야 하지만 비전은 어느 순간 우리를 돌봐준다
꿈은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비전은 같은 모양을 찾기 어렵다
꿈은 침대위에서 일어나지만 비전은 책상위에서 펼쳐진다
꿈은 전염성이 없지만 비전은 강한 전염성이 있다
꿈은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없지만 비전을 위해 죽는 사람들은 많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비전을 이룬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다.
왜 하나님은 현실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시지 않고 이렇게 약속과 비전만 주시는 것일까요? 뒤에 보면 아브람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까지 이르도록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부활의 능력을 믿도록 까지 인도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메시야는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야 하십니다. 이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이 갖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이끌어 가시고 이 말씀을 주신 후 15년을 더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자 하시기 때문에 후손들이 보고 배우도록 믿음의 모델을 만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수준으로까지 자라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구체적이면서 놀랍게 큽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다 헤아리거나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갇혀서 하나님을 제한하기 쉽습니다. 현실을 중시하다보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꿈을 꾸고 비전을 갖는 것이 허황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꿈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방향이 생기고 목표가 생깁니다. 어렵다고 해서 현실에 매달리게 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꿈이 없으면 방자해 집니다. 되는 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음을 굳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나님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며 비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말씀 | 창세기 15:1-16:16 /요절 | 창세기 15:5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오늘 본문말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브람이 중동 연합군을 물리치고 난 후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저런 생각속에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은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겠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속에서 자신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도 후계자로 세워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속에 묵상기도를 하다가 환상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에요 환상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 하시면 안심시키시고 4,5절에선 다시 한번 약속과 함께 비전을 붙잡도록 도우시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타협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큰 비전을 갖도록 도우시며 믿음을 심으십니다. 자식 한 명이 아니라 하늘의 뭇 별과 같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드려봅니다.
꿈이 있습니까? 그럼 비전은 있습니까?
꿈과 비전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런 수많은 질문을 드려봅니다. 꿈(Dream)은 ‘~하고 싶은 것, ~가 되고 싶은 것’ 과 같다면 비전은 ‘~까지는 반드시 ~할 것, ~까지는 반드시 ~가 될 것’ 처럼 기한이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꿈이 개인적인 것 이라면 비전은 하나님의 일 즉 사명을 말합니다.
양육과 교육의 선구자인 네비게이토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은 회심하기 전 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벌어서 즐겁게 사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이 면에서 그는 꽤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 중심에 들어오신 후,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이 그이 삶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후 물에 빠진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 들어 그 소녀가 구조될 때까지 물 속에서 그녀를 떠받치고 있다가 그 소녀가 구출되는 순간 물속에 가라앉아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타임지에는 “항상 누군가를 붙들어 주다가 간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하루에 한 영혼을 만나고, 하루 한 구절씩 암송하며, 하루 한 시간씩 개인적으로 경건의 시간을 갖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실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 즉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깨닫게 되었으며 마음에 불타는 세계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도슨은 세계 비전을 키우는데 있어 기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고 합니다.
도슨은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늘 당신의 기도 노트를 한번 보여 주십시오. 그것을 보면 당신의 영적인 삶의 깊이와 넓이가 어떠한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 노트에 나오는 기도 제목은 바로 그의 세계 비전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바로 거기에 당신의 마음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삶의 목표입니다.”
마틴루터 킹 목사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는 1963년 워싱턴으로 향한 대대적인 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비전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꿈을 꿉니다. 꿈은 좋은 것입니다. 꿈이 있는 한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꿈을 계획으로 만들고 실천하면 그 꿈은 비로소 비전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냥 휩쓸려 가는 세상입니다. 조금 노력한다고 말씀대로 살수 있는 세상도 아닙니다. 부단히 노력하고 싸우고 애써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자신의 꿈을 생각해보고 그 꿈을 비전으로 만들 때입니다.
필요한 건 치밀한 계획과 좌절하지 않는 실천입니다.
그러면 꿈과 비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꿈은 정적이며 비전은 동적이다
꿈은 자기의 행복이며 비전은 세상의 행복이다
꿈은 새벽을 깨우고 비전은 새벽을 기다린다
꿈은 잊혀지지만 비전은 항상 기억된다
꿈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비전은 인내가 필요하다
꿈은 욕구에서 나오고 비전은 가치에서 나온다
꿈은 자기 안에서 나온 것이고 비전은 외부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꿈은 유혹이 천적이고 비전은 두려움이 천적이다
꿈은 골목대장이고 비전은 리더다
꿈은 항상 자신이 돌봐 주어야 하지만 비전은 어느 순간 우리를 돌봐준다
꿈은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비전은 같은 모양을 찾기 어렵다
꿈은 침대위에서 일어나지만 비전은 책상위에서 펼쳐진다
꿈은 전염성이 없지만 비전은 강한 전염성이 있다
꿈은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없지만 비전을 위해 죽는 사람들은 많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비전을 이룬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다.
왜 하나님은 현실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시지 않고 이렇게 약속과 비전만 주시는 것일까요? 뒤에 보면 아브람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까지 이르도록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부활의 능력을 믿도록 까지 인도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메시야는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야 하십니다. 이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이 갖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이끌어 가시고 이 말씀을 주신 후 15년을 더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자 하시기 때문에 후손들이 보고 배우도록 믿음의 모델을 만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수준으로까지 자라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구체적이면서 놀랍게 큽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다 헤아리거나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갇혀서 하나님을 제한하기 쉽습니다. 현실을 중시하다보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꿈을 꾸고 비전을 갖는 것이 허황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꿈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방향이 생기고 목표가 생깁니다. 어렵다고 해서 현실에 매달리게 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꿈이 없으면 방자해 집니다. 되는 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음을 굳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나님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며 비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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