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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4강 주꼐 하듯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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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104회 작성일 14-02-0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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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골로새서 제 4 강 
말씀 | 골로새서 3:18-4:18
요절 | 골로새서 3:23
주께 하듯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오늘은 골로새서 제4강, 골로새서 마지막 강의로 말씀의 제목은 “주께 하듯 하라”입니다. 여러분 골로새서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골로새서의 주제를 한마디로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님”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또한 다리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우리는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의 안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님은 가정에서, 사회에서도 으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어떻게 예수님이 으뜸이 되셔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를 전문용어로 “크리스천의 윤리 혹은 기독교 윤리”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JBF 친구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하며 선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남편과 아내의 윤리(18-19) 18절을 자매님들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여러분들을 미래에 다 아내가 되실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아내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내된 자들이여, 아내될 자들이여, 남편을 따르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남편이 아내보다 우월하다거나 남편은 상전이고 아내는 그 아래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남자를 가정의 머리로 세우시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 하나님의 뜻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문용어로 창조질서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바울은 창조질서에 근거해서 아내들에게 “아내들이여, 질서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또한 남자를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으니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 안에서 남편을 가정의 가장으로 또한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돕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은 여성이 리더가 될 수 없다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이십니다. 여성대통령입니다. 요즘에는 여성 목사님들도 많고 사회 각계각층에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안에서 아내가 남편을 가장으로 인정하고 그를 돕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19절을 형제들이 읽어 봅시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기는커녕 아내를 괴롭게 합니다. 아내를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이런 남편은 아내를 잘 도와주지 않으면서 “집 안이 왜 이 모양이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뭐하는 거냐? 반찬은 왜 이리 맛이 없냐?”며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남편을 “간 큰 남편”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간 큰 남편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이런 남편은 나중에 삼식이가 되면 눈칫밥을 얻어 먹어야할지도 모릅니다. 삼식이란 은퇴하여 매일 하루 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남편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아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편도 있습니다. 이는 막장 드라마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는 아내를 가장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에게 돕는 배필로 아내를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내의 조언과 동역을 잘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존중하고 잘 들어줘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잘 들어주기만 해도 큰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아내를 존중하고 세워줄 때 가정이 견고히 서고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정태는 새벽 공사장에 갔다가 막막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이, 이제 일은 일주일이면 끝날 것 같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돌아 앉아 토끼 인형에 눈을 붙이고 있는 임신한 아내 미영에게 정태는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제 공사 일도 끝났어. 나 같은 놈 뭘 믿고 사니?” “그러지마, 여보. 우리 애기가 들어. 당신은 진짜 행복이 뭔지 알아요? 어느 소설 중에 가난한 부부가 서로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사고, 아내는 머리를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샀다는 얘기... 난 그 얘기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 가난한 건 불편한 거지 불행한 건 아니잖아....” 미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리고 몇 날이 지난 후 정태는 유아용품 가게에 들러 아기 목욕통과 아기 신발을 샀습니다. 좌판 할머니에게로 가 딸기 한 근도 샀습니다. “어머, 예뻐라.... 어디서 이렇게 예쁜 신발을 사왔어? 아기 목욕통까지...” “정말 예뻐?” “응...” 방긋이 웃고 있는 정태의 손을 잡으며 미영은 행복했습니다. 불룩해진 배와 딸기를 번갈아 보며 두 사람은 배시시 웃었습니다. 저녁노을이 딸기보다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기 목욕통과 신발, 딸기 한 근을 사기 위해서 정태가 몇 번이나 점심을 걸려야 했는지 미영은 몰랐습니다. 집에서 공사장까지 한 시간이나 넘는 거리를 정태가 매일 걸으며 차비까지 아꼈던 것을 미영은 몰랐습니다.

여러분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아내가 남편을 높여주고 또 남편이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섬길 때 그 안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언 말씀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잠21:9)는 말씀입니다. 반면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해 자기를 주심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은 다 남편될 사람들이고 또한 아내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물의 으뜸으로 고백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주님께 하듯 여러분들의 남편을 여러분들을 아내를 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우리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그러한 남편들이 되고 아내들이 되어 축복된 믿음의 가정을 다 이루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둘째, 부모와 자녀의 윤리(20-21)  20,21절을 읽어 봅시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은 제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약속이 있는 첫계명이라고 합니다. 다른 계명들은 순종할 것만을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은 유독히 제5계명만을 순종할 때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찬송가 뒤편에 있는 제5계명을 함께 읽어볼까요?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약속을 주시면서까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교양과 훈계를 가르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는 것입니다.

반면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면 그럴 때 자녀들은 낙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노엽게 한다는 말은 다른 성경에는 “격분하게 하다 혹은 못살게 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상대로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청소년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은 1위가 성적, 2위가 외모, 3위가 부모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부모님들과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나요?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내게 말할 시간은 있지만 내 말을 들을 시간은 없어요.” 우리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내 말은 들어주지 않고 잔소리만 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교육학자인 제임스 돕슨 박사가 6학년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시켰다고 합니다. 글짓기의 주제는 “나는 원한다 (I wish)"란 말로 시작하여 지금 바라는 최고의 것을 적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부모님이 싸우지 말고 잘 지냈으면” 하는 것이 제일 많았고, 위로부터 5가지가 모두 가정의 평화와 사랑에 대한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이 결과는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이가 나쁘고 또 싸우는 것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결과 많은 친구들이 마음이 상처를 받고 또 그로인해 부모님에 대한 반발심과 그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잘못인 것 같은 죄책감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펼칠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쓴 글입니다. 버려도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낡고 찌그러진 아빠의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습니다. 내가 이런 비참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빠가 실직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실직하신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셨습니다. 아빠는 새 직장에서 출장근무를 지원하셨고 처음에는 삼사 일이었던 출장이 요즘에 와서는 한 달에 한 번씩만 겨우 집에 들어오십니다. 아빠가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주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일 걸어다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그 구두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원래 낡았던 구두가 어느 샌가 굽이 다 닳고, 앞은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빠의 생신 때에는 반드시 구두를 선물해 드리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용돈을 따로 받아 모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오갈 때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세 2,000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소복이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중앙청 앞길을 걸어 집으로 향해 가던 중, 저 앞에 웬 키 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낙엽을 터벅터벅 밟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로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이었습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동생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너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니? 넌 아직 어려서 걸어다니면 피곤해져 성적이 떨어지니까 반드시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잖아?” 동생이 통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난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이야?” 나는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누나가 다 모을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랬잖아.” 갑자기 동생이 표정이 바꾸면서 물었습니다. “누나, 누나는 얼마나 모았어?” 7,500원이라 말을 들은 동생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모은 것과 합하면 웬만한 구두는 살 수 있겠다! 누나 나 그 동안 2,000원 모았어! 나 잘했지?” 나는 동생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하마터면 대로변에서 울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그 다음 토요일, 동생과 나는 남대문 시장에서 만원짜리 구두를 샀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며칠 남지 않은 아빠의 생신을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그날만큼은 꼭 집에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마침내 아빠의 생신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먼저 온 동생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빠가 오늘 못 오신대. 그러니까 구두를 드릴 수가 없잖아.” 동생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낡아 빠진 싸구려 구두를 신고 지금도 어느 길 위엔가를 걷고 계실 아빠를 생각하자, 어느새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한 방울씩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뿐 더 이상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빠에게 드릴 새 구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21:20b~21) 여러분 우리의 가정에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또 그런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셋째, 상사와 사원의 윤리(3:22-4:1) 22절을 보십시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직장에서 직원들은 상사가 눈앞에 있을 때는 긴장하여 열심히 하는 척하다 눈앞에 없을 때는 적당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상사가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 앞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 하듯이 마음을 다하여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상사가 같은 형제라고 생각하여 교만한 마음을 품고 적당히 일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첫째로 우리는 이미 기업의 상을 주께 받았기 때문입니다.(24) 둘째로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인이 직장 일을 성실히 하는 것,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가정주부가 집안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다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 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4:1절을 봅시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상전이라고 해서 종들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위에 하나님이 상전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의와 공평을 베풀 때 사원들은 불만이 없습니다. 사원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자기의 힘을 다해서 일할 것입니다. 똑 같이 일을 했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성실하게 일하기보다 잔머리를 굴리고 꼼수를 부리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 윤리의식이 높은 나라일수록 같은 노동력으로 벌어드리는 수입이 많습니다. 뇌물을 써야 일이 되는 나라는 같은 일을 하고도 자기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은 적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의와 공평이 강물처럼 흐를 때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됩니다.

3:23절을 봅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크리스천 윤리의 핵심은 한마디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4:2절을 봅시다. 우리는 이를 위해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4:5절을 봅시다.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주께 하듯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길 기회를 잡는다면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는 자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생명과 영원을 건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주로 받았으니 모든 일에 주께 하듯 하여 우리의 가정에 학교에 직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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