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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 2 강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행1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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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14-01-18 09:24

본문

2013년 신년2강
본문 | 사도행전 19:8-21
요절 | 사도행전 19:9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지난 주 우리는 신년1강 "묵을 땅을 갈아라"는 말씀을 통해서 묵은 땅을 갈아엎는 근본적인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면 하나님의 축복은 그 다음에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새해에는 더욱더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깊이 발견하고 회개함으로 마음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년2강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양성과 말씀의 능력에 대해 잘 배울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새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많지만 가장 사모하고 또한 집중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분명한 결단을 하고 예수님의 참제자로 성장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도바울은 아시아와 유럽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도바울의 선교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에 이방인에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원칙에 따라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반드시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고 유대인의 회당을 먼저 방문하여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유대인의 회당에서 강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당시에 가장 유명한 가말리인 문하에서 율법을 전공한 공인된 랍비였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는데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8절을 봅시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지식과 또한 수사학과 웅변술을 사용해서 정말로 열심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9a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비방하고 공개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힘들기만 하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일에 온 힘을 다 본 것이 있나요? 그런데 그 일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를들어 들어 밤을 새어가며 열심히 작업을 해서 간신히 과제를 완성했는데 제출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선생님이 과제를 받아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겠습니까? 정말로 허탈하고 힘들겠죠? 아마도 사도바울은 이런 경우와도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힘들다고 "그냥,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고 하면서 포기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9b-10절을 봅시다. "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여러분 교회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은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구경꾼입니다. 두 번째는 싸움꾼입니다. 세 번째는 예배자 곧 제자입니다. 사도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할 때도 바울이 말씀을 강론하는 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울이 전한 도를 비방하고 싸움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도 있었다고요? 네, 그들 가운데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을 잘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해 싸움을 거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도 악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역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9b절을 다시 봅시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사도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2년 동안 소수의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4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2년 동안은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시아에 전역에 복음이 전파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도바울과 말씀을 강론하며 변화된 제자들이 자신이 받은 말씀을 열심히 전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도바울 혼자서 복음을 전했다면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는데 몇십년이 걸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에게서 받은 복음을 전하니 2년만에 아시아 전역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사도바울이 시켜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자 자발적으로 자신이 받은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양성의 힘인 것입니다.

둘째 병든 사람들이 낫고 악귀가 떠나갔습니다. 11,12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제자양성을 하는 동안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매일 매일 많은 일들과 제자들을 섬기는 일들 때문에 바빴습니다. 누군가 아파도 그를 초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바울이 너무나 바빠서 오지 못함을 보고 그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었는데 그 사람의 병이 낫는 신기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에서는 악귀가 떠나가는 일이 많이 일어났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이곳은 악귀들이 득실거리는 어둠의 도시요, 이곳 사람들은 악귀에 눌려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에베소 도시에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7-19절을 봅시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놀라운 사실은 사도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할 때 그를 반대하고 비난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했고 마술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 값이 무려 70억원이나 되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어디서 시작한 것입니까? 그것은 사도바울이 두란노서원에서 2년 동안 제자양성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넷째 사도바울은 로마선교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21절을 봅시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당시 로마는 지금의 미국과 같이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이었습니다. 로마는 다신교문화로서 모든 종교와 문화를 녹여 버리는 용광로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그 로마개척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전달한 다음에 로마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이 가진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세계선교의 큰 비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말씀은 어떤 지역도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에베소 역사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서1: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을 때 그는 로마 선교를 위해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에베소에서 일어나 놀라운 일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도바울이 2년 동안 두란도 서원에서 제자양성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제자양성에 집중한 결과 제자들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어서 그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변화시킨 원동력, 악귀에 눌려 있던 어둠의 도시 에베소가 변화된 원동력은 바로 말씀의 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어떻게 하면 말씀의 힘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는 사도바울의 에베소 제자양성을 통해 말씀의 힘을 받는 제자양성의 원리에 대해 배워 보고자 합니다. 9,10절 말씀을 다시한번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첫째, 사도바울은 순종치 않고 비방하는 자들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일을 효과적으로 할려면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처음에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 방법은 한 번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깊이 도울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순종치 않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소원있는 사람들이 말씀을 잘 배우지 못한다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회당사역에서 소수제자양성으로 그의 사역을 전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도바울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할려면 반드시 말씀에 불순종하고 비방하는 사람들로부터 또한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여러분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고 싶다면 말씀에 순종치 않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떠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여러분의 삶은 이러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도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제자들을 따로 세웠다는 말씀이 영어로 보면 "He took them with hi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사도바울은 그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함께 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제자양성한다고 할 때 제자양성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회당사역이 아니라 소수 제자양성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소수의 제자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얼마나 함께 했습니까? 그들과 최소 2년을 함께 했습니다. 그들과 얼마나 자주 함께 했나요? 사도바울은 그들을 매일 만났습니다. 사도바울은 밤이고 낮이고 시간만 되면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말씀도 공부하고 밥도 같이 먹고 때론 탁구도 치고 때론 캠핑도 하면서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깊이 알 수 있었고 그들을 말씀으로 인격적으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그의 열두제자를 양성하실 때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제자양성이란 “떠남을 선택하고 함께 함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사도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우리는 앞전에 사도바울의 선택과 집중에 대해 배웠습니다. 사도바울은 회당사역이 아니라 소수 제자양성을 선택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따로 세워 그들과 2년 동안 함께 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제자들이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소수의 제자들을 선택해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정말로 집중한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제자들과 만나서 매일 같이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할 때는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려고 논쟁적으로 일방적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강론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자들과 말씀을 강론할 때는 우리가 목자님들과 공부를 할 때처럼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토론을 하면서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말씀을 깊이 배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자들이 갖고 있던 죄문제와 인생의 상처들 그리고 연약함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인격적으로 말씀을 받으니 그들은 더욱더 말씀에 대한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와 말씀을 배우는 양이나 모두 말씀에 집중한 결과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20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렇게 2년 동안 말씀에 집중하니 그 말씀이 힘을 얻어 제자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의 힘을 경험한 제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고 이렇게 말씀의 세력은 에베소를 뒤덮고 에베소를 넘어 아시아로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히브리서4:1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엔 활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의 힘이 역사할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려면 우리가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집중해야할까요? 사도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같이 제자들과 함께 모여서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매일같이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나요? 일주일에 한번 아니면 일대일할 때만 예배드릴 때만 단언컨대 그렇게 말씀을 받아서는 결코 말씀의 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힘을 경험할려면 매일같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이 매일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말씀의 힘을 경험한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에베소를 넘어 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 비결은 사도바울이 소수의 제자들과 매일 같이 말씀을 강론하는 일에 집중한데 있습니다. 말씀에 집중하면 여러분들도 말씀의 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힘을 경험하면 여러분들의 삶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에게 올 한해 도전적인 방향을 제안코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올해 말씀의 힘을 경험하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길 원한다면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밥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영혼이 말씀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그렇게 올한해를 산다면 그렇지 않는 친구들과 비교에서 엄청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해 한해를 살아간다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아브라함과 같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삶,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올 한해 말씀의 힘을 경험하는 한해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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