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7강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페이지 정보

본문
2013년 창세기 제 27 강
본문 | 창세기 49,50장
요절 | 창세기 50:20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오늘 말씀은 창세기 마지막 강의입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범죄와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배웠습니다. 우리에게 창세기를 통해 귀한 진리를 배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형들을 용서한 요셉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JBF 친구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아들들을 축복한 야곱 (49장)
49:1,2절을 봅시다. 때는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내려온지 17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147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기력이 쇠하여 자신이 죽을 때가 된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들들을 불러 모이라고 하였고 그들을 축복합니다. 야곱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편히 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히 죽는 것이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혹은 자기 방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쓸쓸이 죽어갑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혼자가 아닌 그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에게 남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복을 받은 것 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부모님들에게 또한 여러분들에게 야곱과 같은 복을 허락해 주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야곱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 속에서 그의 아들들을 어떻게 축복합니까? 우리는 야곱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 49:28절 말씀을 봅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여기서 “분량”이란 축복받을 만한 그릇을 의미합니다. 이 그릇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입니까? 이 그릇은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과로 정해진 것입니다. 3,4절을 봅시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에서 장자였습니다. 그는 장자로서 야곱의 능력이요 기력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도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정욕에 약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감정과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자로서의 특권과 영광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8-12절을 봅시다. 유다는 야곱의 아들 중에 넷째였습니다. 그는 요셉을 애굽의 노예를 팔 때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며느리 다말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또한 며느리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은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이처럼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 아들을 잃고 또 며느리 다말의 일을 겪으며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요셉을 잃어버린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베냐민이 요셉이 점치는 잔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잡히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고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청원하였습니다. 회개한 유다는 이처럼 책임감 있고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유다를 위해 다윗 왕과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기도합니다.
야곱은 왜 유다를 이렇게 축복하신 것입니까? 왜냐면 하나님의 축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살아온 삶의 분량대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회개한 분량대로, 나누고 섬긴 분량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길 원합니다. 그런데 정착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받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받는 것입니다. “분량”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분량”은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큰 그릇을 준비하며 많이 받고 작은 그릇을 준비하며 작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해야할 그릇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믿음의 그릇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6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믿음의 그릇대로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그릇은 비전의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 비전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비전을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둘째로 회개의 그릇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회개의 그릇을 준비하여 다윗 왕과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기뻐하시며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을 심판하고자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선지자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니느웨 성을 심판하고자 하는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해하는 심령을 받으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 나눔과 섬김의 그릇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막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왜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것은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눔과 섬김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이 시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나누고 섬길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둘째, 책망과 경고의 말씀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르우벤이나 시므온과 레위 혹은 단이나 베냐민에게 한 말을 보면 이건 축복의 말이 아니라 저주의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또한 축복의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회개한 사람은 그 결과로 하나님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약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심판의 길, 멸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왜 하나님의 축복인지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돈이 많은 것이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그것은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일수도 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땅을 가졌지만 농사를 지어서는 그저 먹고 사는 정도로 밖에 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갖고 있던 땅이 개발이 되어 그는 어마어마한 돈을 보상금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명 졸부가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굽신거렸습니다. 룸사롱에 가면 예쁜 아가씨들이 오빠라고 부르며 갖은 애교를 부렸습니다. 처음에는 왠지 이런 것들이 낯설었지만 이것이 다 돈의 위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아내 몰래 젊고 예쁜 내연녀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로인해 단란하던 그의 가정은 파괴되었고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큰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에게 많은 돈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그에게 많은 돈은 저주가 된 것입니다. 그는 많은 돈으로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죄문제와 약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받고 회개한 후에 많은 돈을 받았다면 그는 그 돈으로 이렇게 방탕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로인해 반드시 시험에 들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달게 받고 난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축복이라고 하는 이름의 저주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와 악함을 먼저 고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달게 받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그릇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책망과 경고의 말씀은 저주의 말이 아니라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고 달게 받을 수 있는 믿음에서 성장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2.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요셉 (50장)
50:1-14절을 봅시다. 야곱의 장례는 애굽 왕 바로의 특별한 배려로 애굽의 국상으로 치러졌습니다. 가나안 땅의 무명의 부족장에 불과하던 야곱의 장례가 당시 초강대국인 애굽의 국상으로 치러졌다는 건 야곱의 삶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마무리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에서 아무리 극진한 대접을 받을지라도 그는 애굽에 묻히기보다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의 뜻을 받들어 그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혔던 마무레 상수리 나무 밑에 있는 막벨라 굴에 그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 안에 머물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장사한 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15절을 봅시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야곱이 죽자 야곱의 아들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혹시 그들을 미워하여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죄와 그로인한 고통이 얼마나 해결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요셉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미 형들을 용서했고 그의 마음에는 형들에 대한 미움이나 상처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은데 형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죄와 그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떻게 형들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까? 19-21절을 봅시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는 요셉이 형들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형들이 그를 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많은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접했습니다. 그때 그는 형들에 대한 미움과 상처들이 치유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에게 행한 형들의 죄악을 분명히 기억하면서도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12월 5일 남아프라카의 첫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가 95세의 일기로 운명했습니다. 그는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다 27년간 기나긴 옥살이를 했습니다. 1964년 4월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서서 그는 이렇게 최후 변론을 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는 석방된 후 1994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남김없이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는 대사면의 결정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무서운 인종차별정책의 나라를 모든 인종, 나아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울려 사는 화해의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하시려는 일이 용서와 화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는 자신이 당한 차별과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는 과거 백인들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차별과 그로인해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내셔널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첫째,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몸이 약했기에 늘 운동에 힘써 건강할 수 있었고,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삶의 현장’은 글자 없는 책입니다. 로마서 8: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하나님 편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은 요셉처럼, 넬슨 만델라처럼, 고노스케처럼 자신의 과거와 고통의 웅덩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멋진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현재적으로 나에게 있는 고통과 상처들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그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여러분들의 미래, 그의 비전을 향해 담대히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책망하시고 훈련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죄와 그로인한 고통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이를 바라볼 때 우리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한 힘찬 날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야곱과 같이, 또한 요셉과 같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또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 가운데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 창세기 49,50장
요절 | 창세기 50:20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오늘 말씀은 창세기 마지막 강의입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범죄와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배웠습니다. 우리에게 창세기를 통해 귀한 진리를 배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형들을 용서한 요셉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JBF 친구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아들들을 축복한 야곱 (49장)
49:1,2절을 봅시다. 때는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내려온지 17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147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기력이 쇠하여 자신이 죽을 때가 된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들들을 불러 모이라고 하였고 그들을 축복합니다. 야곱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편히 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히 죽는 것이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혹은 자기 방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쓸쓸이 죽어갑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혼자가 아닌 그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에게 남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복을 받은 것 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부모님들에게 또한 여러분들에게 야곱과 같은 복을 허락해 주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야곱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 속에서 그의 아들들을 어떻게 축복합니까? 우리는 야곱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 49:28절 말씀을 봅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여기서 “분량”이란 축복받을 만한 그릇을 의미합니다. 이 그릇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입니까? 이 그릇은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과로 정해진 것입니다. 3,4절을 봅시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에서 장자였습니다. 그는 장자로서 야곱의 능력이요 기력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도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정욕에 약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감정과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자로서의 특권과 영광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8-12절을 봅시다. 유다는 야곱의 아들 중에 넷째였습니다. 그는 요셉을 애굽의 노예를 팔 때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며느리 다말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또한 며느리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은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이처럼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 아들을 잃고 또 며느리 다말의 일을 겪으며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요셉을 잃어버린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베냐민이 요셉이 점치는 잔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잡히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고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청원하였습니다. 회개한 유다는 이처럼 책임감 있고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유다를 위해 다윗 왕과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기도합니다.
야곱은 왜 유다를 이렇게 축복하신 것입니까? 왜냐면 하나님의 축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살아온 삶의 분량대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회개한 분량대로, 나누고 섬긴 분량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길 원합니다. 그런데 정착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받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받는 것입니다. “분량”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분량”은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큰 그릇을 준비하며 많이 받고 작은 그릇을 준비하며 작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해야할 그릇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믿음의 그릇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6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믿음의 그릇대로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그릇은 비전의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 비전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비전을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둘째로 회개의 그릇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회개의 그릇을 준비하여 다윗 왕과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기뻐하시며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을 심판하고자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선지자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니느웨 성을 심판하고자 하는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해하는 심령을 받으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 나눔과 섬김의 그릇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막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왜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것은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눔과 섬김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이 시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나누고 섬길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둘째, 책망과 경고의 말씀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르우벤이나 시므온과 레위 혹은 단이나 베냐민에게 한 말을 보면 이건 축복의 말이 아니라 저주의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또한 축복의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회개한 사람은 그 결과로 하나님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약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심판의 길, 멸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왜 하나님의 축복인지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돈이 많은 것이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그것은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일수도 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땅을 가졌지만 농사를 지어서는 그저 먹고 사는 정도로 밖에 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갖고 있던 땅이 개발이 되어 그는 어마어마한 돈을 보상금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명 졸부가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굽신거렸습니다. 룸사롱에 가면 예쁜 아가씨들이 오빠라고 부르며 갖은 애교를 부렸습니다. 처음에는 왠지 이런 것들이 낯설었지만 이것이 다 돈의 위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아내 몰래 젊고 예쁜 내연녀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로인해 단란하던 그의 가정은 파괴되었고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큰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에게 많은 돈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그에게 많은 돈은 저주가 된 것입니다. 그는 많은 돈으로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죄문제와 약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받고 회개한 후에 많은 돈을 받았다면 그는 그 돈으로 이렇게 방탕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로인해 반드시 시험에 들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달게 받고 난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축복이라고 하는 이름의 저주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와 악함을 먼저 고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달게 받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그릇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책망과 경고의 말씀은 저주의 말이 아니라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고 달게 받을 수 있는 믿음에서 성장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2.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요셉 (50장)
50:1-14절을 봅시다. 야곱의 장례는 애굽 왕 바로의 특별한 배려로 애굽의 국상으로 치러졌습니다. 가나안 땅의 무명의 부족장에 불과하던 야곱의 장례가 당시 초강대국인 애굽의 국상으로 치러졌다는 건 야곱의 삶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마무리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에서 아무리 극진한 대접을 받을지라도 그는 애굽에 묻히기보다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의 뜻을 받들어 그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혔던 마무레 상수리 나무 밑에 있는 막벨라 굴에 그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 안에 머물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장사한 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15절을 봅시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야곱이 죽자 야곱의 아들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혹시 그들을 미워하여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죄와 그로인한 고통이 얼마나 해결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요셉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미 형들을 용서했고 그의 마음에는 형들에 대한 미움이나 상처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은데 형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죄와 그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떻게 형들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까? 19-21절을 봅시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는 요셉이 형들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형들이 그를 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많은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접했습니다. 그때 그는 형들에 대한 미움과 상처들이 치유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에게 행한 형들의 죄악을 분명히 기억하면서도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12월 5일 남아프라카의 첫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가 95세의 일기로 운명했습니다. 그는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다 27년간 기나긴 옥살이를 했습니다. 1964년 4월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서서 그는 이렇게 최후 변론을 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는 석방된 후 1994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남김없이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는 대사면의 결정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무서운 인종차별정책의 나라를 모든 인종, 나아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울려 사는 화해의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하시려는 일이 용서와 화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는 자신이 당한 차별과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는 과거 백인들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차별과 그로인해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내셔널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첫째,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몸이 약했기에 늘 운동에 힘써 건강할 수 있었고,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삶의 현장’은 글자 없는 책입니다. 로마서 8: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하나님 편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은 요셉처럼, 넬슨 만델라처럼, 고노스케처럼 자신의 과거와 고통의 웅덩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멋진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모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현재적으로 나에게 있는 고통과 상처들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그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여러분들의 미래, 그의 비전을 향해 담대히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책망하시고 훈련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죄와 그로인한 고통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이를 바라볼 때 우리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한 힘찬 날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야곱과 같이, 또한 요셉과 같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또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 가운데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