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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태복음 11:1-30 요절 | 마태복음 11:28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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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14-06-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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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마태복음 15강
말씀 | 마태복음 11:1-30
요절 | 마태복음 11:28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날 우리의 삶은 참 피곤합니다. JBF 학생들도 참 피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잠도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해서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면 더 이상 피곤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다음엔 취업준비하느라 피곤하고 간신히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상사들과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피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피곤함을 잊고자 술도 마시고 다양한 오락활동을 하지만, 도리어 더 피곤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 인생들을 다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참된 쉼을 얻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가 배우므로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쉼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천국은 침노를 당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여행을 보내신 이후에 자신도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을 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감옥속에서 세례요한의 믿음에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헛되이 살아온 것인가, 다른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는가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가서 그들이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십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 사역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요한이 얼마나 큰 자인지 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말씀은 천국에 들어가고자 열정적으로 애쓰는 자들에 의해 그 나라가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요한의 천국 복음 전파 이후, 세리와 창기와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은 이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요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영접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이 믿음은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든 개의치 않고  굳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예를 많이 접하였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뚫어 병든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천벌로 알려졌던 나병환자가 목숨을 걸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맹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좇으며 은혜를 구했을 때,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용기 있는 자들이 그 나라를 얻습니다. 천국은 그 가치를 알고 온 힘을 다하여 얻고자 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열정을 보시고 놀랍게 일하십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어린 아이같이 겸손한 자를 만나주십니다. 21-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지역에서 행하였다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그들보다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교만한 가버나움은 음부에 까지 낮아질 것입니다. 심판 날에 소돔 땅이 그들보다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받을 형벌이 더 무겁게 됩니다.  주님은 받은 것이 많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십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세례 요한 보다도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숨겨진 복음의 비밀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감추어졌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죄사함과 구원의 기쁜 소식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잘 믿고, 회개도 잘 하고 마음이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잘 믿고 따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자신의 부족함, 연약함, 죄악됨을 잘 알고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천국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어린 아이의 겸손한 마음을 주셔서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를 배울 때 마음에 쉼을 얻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이라고 하십니다. 창3:17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있는 무거운 짐은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 JBF학생들에게는 어떤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학업이 가장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무거운 짐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염려로 큰 압박감이 있습니다. 여러 스펙을 쌓아보지만 취업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래에 대한 염려가 큰 짐이 되어 누릅니다. 취직하면 직장에서 죽도록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됩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느라 피곤합니다.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여러 모양의 죄문제입니다. 자신만의 은밀한 죄로 인한 죄책감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특히 죄는 내게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어서 살만 할 때 나를 찾아와서 넘어뜨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며 힘든 삶을 살 때는 더욱 하나님을 찾고 많은 시편을 쓰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는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죄를 숨기고자 충신 우리야를 전쟁터 최전방에 두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의 죄를 지적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깊이 회개하며 시편 51편을 썼습니다. 7-12절을 보면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나에게 모든 것이 있어도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나를 짓누를 때,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죽기까지 헌신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명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그는 못된 짓을 많이 해서 그 형벌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벌을 받았는데, 간신히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다시금 바위를 산으로 올리는 일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시지푸스의 모습에서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인간의 깊은 허무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쌓고 온 힘을 다해 쌓은 것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바위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 처럼 사라지는 날이 옵니다. 내가 일생 추구할만한 가치있는 사명이 없으므로 허무주의가 나를 사로잡을 때, 사는 것이 너무나 피곤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 모두를 초청하십니다. 28, 29절을 다시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은 초청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날마다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죄짐과 모든 무거운 짐들을 예수님께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면 우리 마음에 쉼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멍에는 말이나 소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 모양의 막대인데 한 마리에 멜 수도 있고 두 마리에 멜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멍에는 소 두 마리가 함께 메고 마차를 끄는데 쓰는 도구입니다. 어미 소는 무거운 멍에를 지고 새끼 소는 가벼운 멍에를 메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무거운 멍에를 다 지고 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옆에 와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멍에를 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그 혜택을 받아서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멍에는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가리킵니다. 내게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 삶이 가볍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예수님이 주신 멍에를 메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몸에 딱 맞는 멍에를 메어주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짐을 지던지 예수님이 주신 짐을 지던지 멍에를 지고 가야 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것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짐을 져 주시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짐을 져 주시면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어렵게 보여도 예수님이 함께 져 주시는 짐이 훨씬 더 가볍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는 것이 참으로 복된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쉼을 주십니까? 이 쉼은 마지막 날의 영원한 안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 가운데 누리는 쉼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그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율법의 속박에서 자유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나를 짓누르는 염려와 무거운 죄짐이 점점 더 작아지고 힘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면 허무가 떠나가고 내 마음이 쉼을 누리게 됩니다. 일평생 먹고 살기 위해 무거운 짐진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참 쉼을 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컴퓨터게임이나 드라마나 기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 짐을 내려놓으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쉼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주1편의 소감과 일용할 양식을 통해 예수님께 나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배우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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