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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3강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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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14-06-01 07:04

본문

2014년 마태복음13강 
말씀 | 마태복음 9:18-38
요절 | 마태복음 9:28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하니”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공생애 3년 반 동안 하신 일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Preaching), 치유(Healing), 제자양성(Disciple-Making)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열 두해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을 치유하셨습니다.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런 기적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치유를 받은 사람들의 믿음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아온 자들의 믿음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해 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으로 나아온 사람들,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여러 사람들이 나오는데 저는 그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 둘째는 예수님이 택하여 부르신 사람들, 셋째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디에 해당될까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예수님께 나아오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각자 해결해야할 다급한 인생문제가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외동딸이 죽었습니다. 한 여인은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맹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귀신들려 말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다른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는 이 세상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일 할 줄을 믿고 나아왔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생각해 봅시오. 만일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꼴찌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일등을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지금 내 키가 160도 안되는데 내일이며 180이 넘을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 일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이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평범한 일이 아니라 신비로운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떤 믿음을 갖고 나왔는지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불치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이 죽은 딸을 살리실 줄을 믿었습니다. 이제까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예수님께 앞에 나아와 간절히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혈루증 앓던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뒤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두 맹인의 부르짖음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두 맹인은 그로인해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이 계신 집까지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그 자신이 나아와 예수님께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를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으로 나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앞서서 요절 말씀을 한번 더 읽어 보겠습니다. 28절입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하니” 예수님은 처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다가 집까지 찾아온 맹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능히 이 일 하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까지는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일지라도 이제까지는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각자 처한 환경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나아가 옷가를 만졌습니다. 두 맹인은 예수님을 소리질러 불렀습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예수님이 계신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말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나왔습니다.

또 한 가지 믿음은 동사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 중에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찾았습니다.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믿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해 주길 원하시나요? 그것이 무엇이든 중요한 건 예수님이 능히 이 일을 하실 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각자의 처한 환경에서 예수님께 들고 나갈 최선이 무엇인가를 찾아야합니다. 그것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동사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가만이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움직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둘째 믿음을 축복해 주신 예수님
우리는 앞에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에는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백부장이 중풍병을 앓고 있는 하인을 고쳐달라고 하였을 때 집에 가서 고쳐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씀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도 하인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이스라엘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집에 오셔서 손을 얹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너는 왜,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집으로 가셔서 딸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문둥병자는 율법을 어기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너는 왜, 문둥병자들과 같은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가 믿은대로 그녀가 치유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예수님의 허락도 없이 예수님을 부정케 하고 또 예수님의 능력을 흠쳐다는 정죄감을 갖지 않도록 야이로의 집에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녀를 찾아 그녀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수님은 각자의 믿음을 존중해 주시며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22절 말씀을 봅시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은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신 후에 “네 믿음이 너의 병이 나게 했다”고 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녀를 병에서 낫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녀의 죄와 인생의 상처도 치유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그녀의 삶이 전인격적으로 회복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축복은 단지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전인격적으로 회복하시며 온전케 하십니다. 29절을 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예수님은 두 맹인의 눈을 고치시는데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 맹인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오해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믿으면 그대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믿어도 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로인해 자치 우리는 믿음에 대한 회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 예화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얼마나 축복해 주시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 하이랜드파크 고등학교에 한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너의 꿈이 뭐니?”  그 학생을 대답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가 제 꿈이에요.” 메이저리그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이루기 힘든 꿈임을 알기에 대답 후 그 학생은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수 있는 백만 명 중의 한 명이 바로 자신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게 중요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가 그 한 명을 만든단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그때의 경험은 그 학생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바로 그 학생이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중에 가장 사랑받고 있는 투수 클레이튼 커쇼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LA다저스팀의 에이스 좌완투수로 20살에 메이저 리그에 입성후 현재 “1점대의 방어율”로 최연소 방어율에 빛나는 메이저 리그 빅스타입니다. 그는 2011년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 투수3관에 올라 그해 메이저리그 투수에게 수여하는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전세계 야구 팬들의 이목을 LA다저스에 집중시켰습니다. 그러나 커쇼의 실력과 함께 팬들이 그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스포츠 스타답지 않은 그의 독특한 행보 때문입니다. 

학창시절, 커쇼는 우연히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던 중 아프리카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거리와 확연히 대비되는 영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에 커쇼는 이유 모를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그후 5년의 기다림 끝에 두근거림의 이유을 알기 위해 비시즌 집중 트레이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프리카 잠비아로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그곳에서 잠비아 소녀 호프와 만남은 커쇼의 삶을 송두채 바꾼 계기가 됩니다. 눈부시도록 밝고 영리한 아이, 10살의 호프 그러나 선천적인 에이즈 감염자이자 고아인 호프에게 현실은 재능과 꿈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자신의 선행도 이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중, 꿈이 현실이 되는 기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고 커쇼는 확신하게 됩니다. 클레이튼 커쇼는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으로 잠비아를 다시 찾아 수도 루시카에 예수님을 전하는 고아원을 설립합니다. 고아원의 이름은 HOPE'S HOME (희망의 집) 살아있는 예배와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집은 이 땅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백만 명중의 한 명”의 아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주님은 커쇼의 심장을 뛰게 하셨고 그리고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커쇼를 세우셨습니다. 

커쇼의 천문학적인 연봉과 성실한 훈련자세보다 팬들 사이에서 더 유명한 것은 잠비아 아이들을 위한 “탈삼진 기부”라고 합니다. 탈삼진 1개당 500달러씩 기부 그의 스폰서도 100달러씩 기부를 합니다. 팬들 사이에서도 커쇼가 삼진을 잡을 때마다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질을 연구하지 않는데 커쇼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연구해서 얻은 실력으로 마운드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들어 사랑이 식은 이 시대에 직구를 던지시는 주님의 지혜로 마운드에 선다는 것을 커쇼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스포츠 스타, 커쇼는 지금도 비시즌 때마다 아내와 함께 한 달간 잠비아에 머무르며 주님께 받은 생명이 빛을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어둠과 눈물의 땅이 생명과 기쁨의 땅이 되는 그 날까지 주님의 선발투수, 커쇼가 던지는 사랑의 직구는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셨을 때 커쇼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것이라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는 그가 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비아에서 HOPE라는 아이를 만난 이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은 바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만일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커쇼와 같이 이루고 싶은 그런 꿈이 있나요? 이 물음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릭의 꿈이 무엇이든 우리가 믿어야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꿈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을 축복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꿈을 예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예수님은 우리의 꿈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로 나의 꿈을 넘어 하나님의 꿈을 보게 하시고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능히 이 일을 행하실 예수님을 믿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꿈을 갖기에 주저 하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구두수선공에서 근대선교의 아버지가 된 윌리암 캐리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들도 클레이튼 커쇼처럼, 윌리암 캐리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꿈을 꾸시고 믿음으로 도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셋째 추수할 일꾼을 부르시는 예수님
35-3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이처럼 열심히 말씀을 전파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원동력은 바로 죄인들을 향한 사랑, 그들을 향한 긍휼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도울 일꾼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예수님을 제자들을 부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우리의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참으로 문제는 많은데 이를 해결할 지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나라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총체적인 부패와 부실의 문제가 들어났습니다. 관피아를 개혁해야할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큰 돈을 번 것 때문에 결국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총리를 뽑고 싶은데 합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대한민국호도 길을 잃고 헤매이다 언제 암초를 만나 좌초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 주님의 마음을 품고 국민을 섬길 지도자를 보내주소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주님의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이 시대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이 시대의 주님의 일꾼들로 부르심을 받아서 여러분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섬기며 헌신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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