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8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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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8 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6:19-34
요절 마태복음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삶은 소중합니다. 왜 우리의 삶이 소중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은 단 한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단 한번 뿐인 삶을 잘 살고 싶어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무엇이 성공적인 삶인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을까요? 안하셨을까요? 당연히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살면서 근심이 많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성공적인 삶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것이고, 둘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데 우리가 실패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순종해서 반드시 인생의 성공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나눠 보겠습니다.
제1장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19-24)
19절을 봅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돈이나 보석을 보관해 주는 은행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땅이나 방바닥에 묻어 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관을 하다보면 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녹이 슬어서 못쓰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때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할 때도 있고 전쟁이 일어나 보물을 모두 빼앗길 때도 있었습니다. 보물은 안전한 곳에 잘 보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땅은 우리의 보물을 보관하기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쌓아 놓은 보물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못쓰게 되거나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쌓아둔 보물이 좀이나 동록이 나고 또 도둑질을 당하는 것이 옛날 일만은 아닙니다. 여러분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고 들어봤나요? 리먼 브러더스는 미국의 굴지의 투자은행인데 2007년부터 불거진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2008년 결국 파산하게 됩니다. 리먼이 쓰러지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맞았는데 그때 주가가 폭락해서 하루만에 69조4,820억원의 자산이 증발했다고 합니다. 그때 치솟은 환율 때문에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고 그 때 유학생들 중에는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은 우리의 보물을 쌓아 두기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이 보물들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눅12:16-21)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밭에는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는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이렇게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런데 그날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는 자신이 모아둔 재물을 마음껏 쓰고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모아둔 재물을 하나도 써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의 재물의 누구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놓아도 죽을 때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고 또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땅의 보물은 이 땅에서 뿐입니다. 이 땅의 보물은 죽으면 그만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절을 봅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 땅에서 우리의 보물을 써야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쓸 때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쌓이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2:33 말씀을 봅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는 우리가 가진 보물을 구제하는 일에 쓰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물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우리의 보물이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쓰일 때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쌓인다는 것입니다.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보물을 쌓아 놓았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이 땅에 보물을 얼마나 잘 썼느냐? 하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은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24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며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은 보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두 주인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자신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세상적인 성공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의 삶은 이 땅에 보물을 열심히 쌓는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보물을 쌓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의 삶의 최고 보물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봅시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무엇이든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보물로 믿고 사는 사람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그는 재물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씁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는 일에 씁니다. 진정한 보물은 우리 자신을 위해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이 다음에 커서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바로 그것은 이 땅에 속한 보물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보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2장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25~34)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직업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자기의 직업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기 잡는 어부였고 어떤 사람은 세금을 걷는 세리였고 독립운동을 하던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직장과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월급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비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때론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매일 눈만 뜨면 오늘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자주 힘들어 하고 예수님만 보고 따라가야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근심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근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근심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목숨과 음식” 그리고 “몸과 의복”입니다. 목숨과 음식,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네 당연이 목숨이 중요합니다. 몸과 의복,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네 당연히 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자고, 좀 더 좋은 옷을 입자고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다 영육간에 탈진하여 건강을 잃기도 하고 때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이는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닫는 것은 이미 늦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33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는 좀 더 좋은 음식, 좀 더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보다는 좀 더 좋은 옷, 좀 더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먹고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을 염려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의 가치는 음식이나 의복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했는지 그것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33절을 다시한번 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되는 이유는 첫째로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성공학으로 유명한 스티브 코비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성공의 비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을 먼저 하라” 우리에게 중요하고 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라고요? 나중에 하라고 아니요 먼저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의미있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비결은 바로 마태복음 6:33절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에 순종하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져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과 반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의 나라와 자기의 의를 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성공의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허무감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삶의 종착역을 허무요 절망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분들은 어떻까요? 그들은 성공의 자리에 있던지, 실패의 자리에 있던지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들의 보화가 하늘에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 세상의 보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나라와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느라 오늘의 삶을 괴롭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괴로운 삶을 허무하게 마감합니다. 그런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늘을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다가 소망 가운데 삶을 마감합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미스테리이며 오늘은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오늘하루라는 멋진 선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번 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나요? 어때요? 염려가 많이 되나요? 예수님이 오늘 말씀에서 뭐라고 하셨죠? 우리에게 염려하라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중간고사를 봐 주실 것도 아닌데 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죠? 왜냐면 우리가 염려해서 더 잘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염려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염려한다고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염려하느라고 몸과 마음이 상하고 영적으로는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염려는 우리의 믿음을 갈아먹는 새앙쥐와 같다고 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나뉘게 합니다. 두 마음을 품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염려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염려는 내쫓고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믿음을 키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대학입시 공부를 할 때 이런 표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잠자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간다.” 이 표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염려가 밀려옵니다. 염려를 많이 하니까? 위염이 생기고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는 지금 시간에도 시험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겨야할 경쟁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공부하는 목적은 내 친구를 이기고 1등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에 순종하는 분들을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시고 여러분이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6:19-34
요절 마태복음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삶은 소중합니다. 왜 우리의 삶이 소중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은 단 한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단 한번 뿐인 삶을 잘 살고 싶어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무엇이 성공적인 삶인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을까요? 안하셨을까요? 당연히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살면서 근심이 많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성공적인 삶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것이고, 둘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데 우리가 실패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순종해서 반드시 인생의 성공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나눠 보겠습니다.
제1장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19-24)
19절을 봅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돈이나 보석을 보관해 주는 은행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땅이나 방바닥에 묻어 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관을 하다보면 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녹이 슬어서 못쓰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때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할 때도 있고 전쟁이 일어나 보물을 모두 빼앗길 때도 있었습니다. 보물은 안전한 곳에 잘 보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땅은 우리의 보물을 보관하기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쌓아 놓은 보물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못쓰게 되거나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쌓아둔 보물이 좀이나 동록이 나고 또 도둑질을 당하는 것이 옛날 일만은 아닙니다. 여러분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고 들어봤나요? 리먼 브러더스는 미국의 굴지의 투자은행인데 2007년부터 불거진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2008년 결국 파산하게 됩니다. 리먼이 쓰러지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맞았는데 그때 주가가 폭락해서 하루만에 69조4,820억원의 자산이 증발했다고 합니다. 그때 치솟은 환율 때문에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고 그 때 유학생들 중에는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은 우리의 보물을 쌓아 두기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이 보물들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눅12:16-21)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밭에는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는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이렇게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런데 그날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는 자신이 모아둔 재물을 마음껏 쓰고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모아둔 재물을 하나도 써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의 재물의 누구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놓아도 죽을 때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고 또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땅의 보물은 이 땅에서 뿐입니다. 이 땅의 보물은 죽으면 그만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절을 봅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 땅에서 우리의 보물을 써야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쓸 때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쌓이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2:33 말씀을 봅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는 우리가 가진 보물을 구제하는 일에 쓰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물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우리의 보물이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쓰일 때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쌓인다는 것입니다.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보물을 쌓아 놓았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이 땅에 보물을 얼마나 잘 썼느냐? 하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은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24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며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은 보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두 주인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자신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세상적인 성공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의 삶은 이 땅에 보물을 열심히 쌓는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보물을 쌓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의 삶의 최고 보물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봅시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무엇이든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보물로 믿고 사는 사람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그는 재물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씁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는 일에 씁니다. 진정한 보물은 우리 자신을 위해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이 다음에 커서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바로 그것은 이 땅에 속한 보물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보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2장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25~34)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직업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자기의 직업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기 잡는 어부였고 어떤 사람은 세금을 걷는 세리였고 독립운동을 하던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직장과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월급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비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때론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매일 눈만 뜨면 오늘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자주 힘들어 하고 예수님만 보고 따라가야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근심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근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근심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목숨과 음식” 그리고 “몸과 의복”입니다. 목숨과 음식,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네 당연이 목숨이 중요합니다. 몸과 의복,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네 당연히 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자고, 좀 더 좋은 옷을 입자고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다 영육간에 탈진하여 건강을 잃기도 하고 때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이는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닫는 것은 이미 늦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33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는 좀 더 좋은 음식, 좀 더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보다는 좀 더 좋은 옷, 좀 더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먹고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을 염려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의 가치는 음식이나 의복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했는지 그것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33절을 다시한번 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되는 이유는 첫째로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성공학으로 유명한 스티브 코비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성공의 비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을 먼저 하라” 우리에게 중요하고 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라고요? 나중에 하라고 아니요 먼저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의미있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비결은 바로 마태복음 6:33절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에 순종하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져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과 반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의 나라와 자기의 의를 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성공의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허무감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삶의 종착역을 허무요 절망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분들은 어떻까요? 그들은 성공의 자리에 있던지, 실패의 자리에 있던지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들의 보화가 하늘에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 세상의 보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나라와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느라 오늘의 삶을 괴롭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괴로운 삶을 허무하게 마감합니다. 그런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늘을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다가 소망 가운데 삶을 마감합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미스테리이며 오늘은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오늘하루라는 멋진 선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번 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나요? 어때요? 염려가 많이 되나요? 예수님이 오늘 말씀에서 뭐라고 하셨죠? 우리에게 염려하라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중간고사를 봐 주실 것도 아닌데 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죠? 왜냐면 우리가 염려해서 더 잘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염려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염려한다고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염려하느라고 몸과 마음이 상하고 영적으로는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염려는 우리의 믿음을 갈아먹는 새앙쥐와 같다고 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나뉘게 합니다. 두 마음을 품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염려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염려는 내쫓고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믿음을 키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대학입시 공부를 할 때 이런 표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잠자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간다.” 이 표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염려가 밀려옵니다. 염려를 많이 하니까? 위염이 생기고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는 지금 시간에도 시험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겨야할 경쟁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공부하는 목적은 내 친구를 이기고 1등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에 순종하는 분들을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시고 여러분이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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