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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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7 강
말씀 | 마태복음 6:1-18
요절 | 마태복음 6:6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경건생활의 3요소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구제, 기도, 금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한 이 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생활을 배우고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구제에 대한 교훈.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할 때,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기 쉽습니다. 내가 선한 일, 의로운 일을 해도 아무도 인정이나 칭찬을 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우리가 그런 일을 계속하고 싶을까요?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서 영광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사람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합니다. 구제하는 자가 나팔을 불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자기 이름을 내면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어집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구제를 은밀하게 해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갚아주십니다.
둘째, 기도에 대한 교훈.
예수님 당시 외식하는 자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길게 미사여구를 써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사람으로, 깊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이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의 첫째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시편50:23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가 내 안에 가득할 때 나의 삶은 달라집니다. 내 안에는 감사가 가득한가요? 아니면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가요? 우리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가요? 사실, 우리에게는 많은 감사제목이 있습니다. 그 중에 최고의 감사제목은 천지의 창조주되신 하나님께서 주홍같은 죄로 쓸모없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주님의 크신 사랑을 신뢰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자라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으로는 사탄과 흑암의 권세에 있던 영혼이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사회적으로는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정의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의 뜻이 다 이루어 지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때때로는 그것이 나에게 재앙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 기도제목은 시간이 지나보면 깨닫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안들어주신 것이 큰 감사제목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훨씬 내게 유익합니다.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루는 삶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삶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이를 통해 세상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한 후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먼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어떤 필요가 있습니까? 오르지 않는 수학이나 영어성적이 우리의 근심거리입니까? 친구와의 관계성을 맺는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여러 필요들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 모양으로 도우시고 공급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람이 먹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매우 깊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에 취약합니다. 또한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며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죄에 반복해서 넘어질 때 우리는 깊이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셔서 죄사함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할 때 먼저 나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12,14,15절에서 거듭하여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들의 행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용서해달라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자기에게 죄를 지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구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원한다면 먼저 나도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도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셋째, 금식에 대한 교훈. 16절을 보십시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자들은 금식할 때에 슬픈 기색을 보였습니다. 자신이 금식을 함으로 눈이 움푹 들어가고 힘이 없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은밀한 중에 나를 지켜보십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지라도, 은밀한 중에 내가 드리는 기도, 눈물, 금식, 헌신을 하나님은 다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신앙생활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영적인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은밀히 보고 계시며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은밀한 가운데서 선을 행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6:1-18
요절 | 마태복음 6:6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경건생활의 3요소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구제, 기도, 금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한 이 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생활을 배우고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구제에 대한 교훈.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할 때,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기 쉽습니다. 내가 선한 일, 의로운 일을 해도 아무도 인정이나 칭찬을 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우리가 그런 일을 계속하고 싶을까요?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서 영광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사람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합니다. 구제하는 자가 나팔을 불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자기 이름을 내면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어집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구제를 은밀하게 해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갚아주십니다.
둘째, 기도에 대한 교훈.
예수님 당시 외식하는 자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길게 미사여구를 써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사람으로, 깊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이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의 첫째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시편50:23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가 내 안에 가득할 때 나의 삶은 달라집니다. 내 안에는 감사가 가득한가요? 아니면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가요? 우리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가요? 사실, 우리에게는 많은 감사제목이 있습니다. 그 중에 최고의 감사제목은 천지의 창조주되신 하나님께서 주홍같은 죄로 쓸모없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주님의 크신 사랑을 신뢰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자라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으로는 사탄과 흑암의 권세에 있던 영혼이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사회적으로는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정의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의 뜻이 다 이루어 지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때때로는 그것이 나에게 재앙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 기도제목은 시간이 지나보면 깨닫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안들어주신 것이 큰 감사제목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훨씬 내게 유익합니다.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루는 삶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삶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이를 통해 세상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한 후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먼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어떤 필요가 있습니까? 오르지 않는 수학이나 영어성적이 우리의 근심거리입니까? 친구와의 관계성을 맺는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여러 필요들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 모양으로 도우시고 공급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람이 먹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매우 깊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에 취약합니다. 또한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며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죄에 반복해서 넘어질 때 우리는 깊이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셔서 죄사함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할 때 먼저 나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12,14,15절에서 거듭하여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들의 행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용서해달라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자기에게 죄를 지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구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원한다면 먼저 나도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도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셋째, 금식에 대한 교훈. 16절을 보십시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자들은 금식할 때에 슬픈 기색을 보였습니다. 자신이 금식을 함으로 눈이 움푹 들어가고 힘이 없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은밀한 중에 나를 지켜보십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지라도, 은밀한 중에 내가 드리는 기도, 눈물, 금식, 헌신을 하나님은 다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신앙생활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영적인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은밀히 보고 계시며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은밀한 가운데서 선을 행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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