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에스겔 특강 : 되살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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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에스겔서 특강
말씀 | 에스겔 47:1-47:12
요절 | 에스겔 47:8
되살아나리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우리는 지난 3주에 걸쳐 예수알기1,2,3강을 배웠습니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를 알려면 먼저 지난 3주 동안 반복하여 나온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알기 1강부터 3강까지 반복해서 나온 말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물과 성령”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그동안 배운 말씀을 다시 한번 간략히 살펴봅시다. 예수알기 1강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기적을 배웠습니다. 이 말씀에서 분명히 물은 나오는데 성령은 어디에 나온 거죠?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물로 만드신 새 포도주, 그것이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오직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느니라”하셨습니다. 이때 새 포도주도 동일하게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형식과 전통이란 헌가죽부대에 집착한 나머지 예수님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새 포도주의 역사 곧 성령의 역사를 담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강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물과 성령이 그대로 나옵니다. 3강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를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도 물과 성령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이 흘러 강이 되고 사해로 흘러 그 바닷물이 되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난 3주간동안 “물과 성령의 역사”에 여러 각도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물과 성령의 역사에 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지난 3주간 우리가 배운 물과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물로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제자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변화된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몇몇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사회, 또한 세상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물과 성령으로, 즉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 일이 이 사회와 역사에 얼마나 위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에스겔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붙잡고 이 세상을 향해 담대히 도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성전에서 스며 나온 물이 강이 되다(1-5)
1-2절을 봅시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의 근원이 성전이라는 사실에 중요합니다. 여러분 성전이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그곳은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왜 제사를 지내나요? 그것은 죄사함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는 죄인이 죄사함이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육년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전된 자신의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에스겔이 본 환상에 나오는 성전은 역사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신 것은 예수님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짐승의 피를 흘리는 성전의 제사가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자신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한 성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전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2절을 읽어 봅시다.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 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전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서 물이 그 오른쪽으로 스며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큰 명절인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이렇게 외쳐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여기서 그 배는 예수님의 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로마 군병들이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여러분 성전에서 스미듯이 나온 그 물은 바로 성전이신 예수님의 배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입니다. 최초 예수님의 배에서 나온 물은 스미듯이 아주 작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그 물은 샘물과 같이 끊임없이 솟아나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3~5절을 봅시다. 그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데 한 천 척 곧 450미터 가보니 발목까지 차올랐습니다. 다시 천 척 곧 450미터를 가보니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다시 천척 곧 450미터를 가보니 그 물은 사람이 능히 건널 수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흘러가게 될 것과 그 역사가 창대해질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전 500년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이 환상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적실만한 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극렬하게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제국을 삼킬 만큼 큰 강이 되었고 이 강물은 유럽으로 미국으로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물은 선교사님들을 통해 한국 땅에도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10년 전만해도 은둔의 나라라고 불리웠습니다. 한 선교사는 그의 보고서에 우리나라에 대해 이가 많고 미신과 인습에 젖어 있는 어둠의 땅이라고 쓰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초기에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흘린 피는 더 큰 강물이 되어 우리나라를 휩쓸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하여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서 약1,600만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성전이신 예수님이 배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입니다. 이 물은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는 성령의 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배에서 스며 나온 물이 생수의 강의 되어 온 세상에 흘러 적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배에서 스며 나온 이 물이 여러분 안에도 흐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이 생수의 강이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생수의 강이 여러분의 가정에, 학교에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여러분들을 통해 이 생수의 강이 홍대와 세계캠퍼스에 흘러넘치게 하기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둘째, 성전의 물이 사해 바다를 되살리다. (6-8)
6-8절을 봅시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건너지 못할 만큼 큰 강이 되자 그가 이번에는 에스겔을 데리고 강가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습니다. 그만큼 강가는 비옥하고 풍요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지니 공기도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였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아라바’는 ‘황량한 평지’를 뜻합니다. 아라바는 우리가 잘 아는 사해입니다(신3:17, 수3:16). 사해는 남북이 80Km, 동서가 18Km, 면적이 1,020Km²이며 최대 수심이 396m에 달하는 큰 호수입니다. 사해에는 요단강에서 매일 평균 약 500만톤의 물이 흘러 들어오고 또 그 외 몇 개의 강으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는데 흘러나가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물이 넘치기는커녕 항상 고여 있습니다. 이는 사해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395m나 낮기 때문입니다. 지표로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습니다. 또 사해는 연중 기온이 40°C로서 들어오는 물의 양만큼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해의 물은 지중해보다 5-6 배가 짭니다. 사해의 염분 농도는 표면수가 20%, 심층수는 30%나 되기 때문에 비중이 워낙 커서 사람이 물에 누워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특별한 묘기가 아닙니다. 사해의 물이 너무 짜기 때문에 거기서는 수영은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거나 눈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해에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해의 주변 지역은 그 짠 소금기가 배어서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합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서 성전에서 스며나온 물이 흘러 아라바 바다 곧 사해에 이르면 이 흘러내린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고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물고기가 살아나고 각처에 모든 것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비전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해 곧 죽음의 바다와 많이 닮았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사랑과 진리가 증발해 버린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과 탐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갈수록 짜디짠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사람들은 갈수록 짠돌이, 짠순이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고 여가를 즐기고 있지만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보다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로 많이 들어오시는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이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는 것이 무섭고 힘겹다며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해야 살 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아모스서 8:11절은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는 것이 왜 죽을 맛입니까? 세상의 짠물만 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창조자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씀의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그 말씀은 세상의 짠물에 쩔어 죽어가던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며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너진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힘이 있습니다. 사마라이 여자는 남편의 참된 사랑에 목말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참된 사랑을 받기는커녕 남편에 이용당하고 때론 학대를 당하거나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그로인해 그녀의 영혼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생수의 근원이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목마름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목마름은 남편이 채워줄 수 있는 목마름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깨닫고 다시금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삶에 이전에 없던 활력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그로인해 자신 안에 이전에 없었던 기쁨이 넘쳐났고 자신이 체험이 이 놀라운 체험을 사람들에게도 알리며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알면 알수록 세상을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는 죽을 맛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을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살맛나는 삶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이 짜디짠 사해바다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시급히 하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 생수의 강이신 예수님을 초청하십니까? 그 분이 여러분의 삶에 들오실 때 여러분의 삶을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사해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항상 나아가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리라 (9-12)
여러분 최근에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13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한국의 국력이 세계 9위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는 유일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삼고 배우려고 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 우리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북한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기독교를 모방한 주체사상을 개발하여 3대째 강력한 독재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탄압이 가장 심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생수의 강이 흘러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땅은 마치 진펄과 갯펄과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생명이 살 수 되었습니다. 최근에 북한에서 기아로 300만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북한 땅에도 생수의 강이 흐르면 그 땅은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도 번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아직은 어러지만 우리 때보다는 여러분들 때에 통일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통일한국을 위해서 지금부터 북한 땅에도 생수의 강이 흘러 되살아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위대한 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배에서 흘러나온 물은 생수의 강물입니다. 성령의 강물입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은 모든 것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번성케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환경이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환상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강물이 그렇게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그 성령의 강물이 여러분들을 살리고 여러분들의 삶을 번성케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강물이 여러분들을 통해 이 사회와 온 세계로 흘러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강물이 미치는 곳에서 생명이 되살아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에스겔 47:1-47:12
요절 | 에스겔 47:8
되살아나리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우리는 지난 3주에 걸쳐 예수알기1,2,3강을 배웠습니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를 알려면 먼저 지난 3주 동안 반복하여 나온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알기 1강부터 3강까지 반복해서 나온 말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물과 성령”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그동안 배운 말씀을 다시 한번 간략히 살펴봅시다. 예수알기 1강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기적을 배웠습니다. 이 말씀에서 분명히 물은 나오는데 성령은 어디에 나온 거죠?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물로 만드신 새 포도주, 그것이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오직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느니라”하셨습니다. 이때 새 포도주도 동일하게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형식과 전통이란 헌가죽부대에 집착한 나머지 예수님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새 포도주의 역사 곧 성령의 역사를 담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강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물과 성령이 그대로 나옵니다. 3강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를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도 물과 성령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이 흘러 강이 되고 사해로 흘러 그 바닷물이 되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난 3주간동안 “물과 성령의 역사”에 여러 각도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물과 성령의 역사에 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지난 3주간 우리가 배운 물과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물로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제자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변화된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몇몇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사회, 또한 세상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물과 성령으로, 즉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 일이 이 사회와 역사에 얼마나 위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에스겔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붙잡고 이 세상을 향해 담대히 도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성전에서 스며 나온 물이 강이 되다(1-5)
1-2절을 봅시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의 근원이 성전이라는 사실에 중요합니다. 여러분 성전이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그곳은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왜 제사를 지내나요? 그것은 죄사함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는 죄인이 죄사함이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육년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전된 자신의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에스겔이 본 환상에 나오는 성전은 역사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신 것은 예수님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짐승의 피를 흘리는 성전의 제사가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자신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한 성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전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2절을 읽어 봅시다.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 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전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서 물이 그 오른쪽으로 스며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큰 명절인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이렇게 외쳐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여기서 그 배는 예수님의 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로마 군병들이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여러분 성전에서 스미듯이 나온 그 물은 바로 성전이신 예수님의 배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입니다. 최초 예수님의 배에서 나온 물은 스미듯이 아주 작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그 물은 샘물과 같이 끊임없이 솟아나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3~5절을 봅시다. 그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데 한 천 척 곧 450미터 가보니 발목까지 차올랐습니다. 다시 천 척 곧 450미터를 가보니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다시 천척 곧 450미터를 가보니 그 물은 사람이 능히 건널 수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흘러가게 될 것과 그 역사가 창대해질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전 500년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이 환상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적실만한 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극렬하게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제국을 삼킬 만큼 큰 강이 되었고 이 강물은 유럽으로 미국으로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물은 선교사님들을 통해 한국 땅에도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10년 전만해도 은둔의 나라라고 불리웠습니다. 한 선교사는 그의 보고서에 우리나라에 대해 이가 많고 미신과 인습에 젖어 있는 어둠의 땅이라고 쓰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초기에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흘린 피는 더 큰 강물이 되어 우리나라를 휩쓸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하여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서 약1,600만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성전이신 예수님이 배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입니다. 이 물은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는 성령의 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배에서 스며 나온 물이 생수의 강의 되어 온 세상에 흘러 적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배에서 스며 나온 이 물이 여러분 안에도 흐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이 생수의 강이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생수의 강이 여러분의 가정에, 학교에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여러분들을 통해 이 생수의 강이 홍대와 세계캠퍼스에 흘러넘치게 하기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둘째, 성전의 물이 사해 바다를 되살리다. (6-8)
6-8절을 봅시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건너지 못할 만큼 큰 강이 되자 그가 이번에는 에스겔을 데리고 강가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습니다. 그만큼 강가는 비옥하고 풍요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지니 공기도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였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아라바’는 ‘황량한 평지’를 뜻합니다. 아라바는 우리가 잘 아는 사해입니다(신3:17, 수3:16). 사해는 남북이 80Km, 동서가 18Km, 면적이 1,020Km²이며 최대 수심이 396m에 달하는 큰 호수입니다. 사해에는 요단강에서 매일 평균 약 500만톤의 물이 흘러 들어오고 또 그 외 몇 개의 강으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는데 흘러나가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물이 넘치기는커녕 항상 고여 있습니다. 이는 사해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395m나 낮기 때문입니다. 지표로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습니다. 또 사해는 연중 기온이 40°C로서 들어오는 물의 양만큼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해의 물은 지중해보다 5-6 배가 짭니다. 사해의 염분 농도는 표면수가 20%, 심층수는 30%나 되기 때문에 비중이 워낙 커서 사람이 물에 누워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특별한 묘기가 아닙니다. 사해의 물이 너무 짜기 때문에 거기서는 수영은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거나 눈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해에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해의 주변 지역은 그 짠 소금기가 배어서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합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서 성전에서 스며나온 물이 흘러 아라바 바다 곧 사해에 이르면 이 흘러내린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고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물고기가 살아나고 각처에 모든 것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비전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해 곧 죽음의 바다와 많이 닮았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사랑과 진리가 증발해 버린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과 탐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갈수록 짜디짠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사람들은 갈수록 짠돌이, 짠순이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고 여가를 즐기고 있지만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보다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로 많이 들어오시는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이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는 것이 무섭고 힘겹다며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해야 살 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아모스서 8:11절은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는 것이 왜 죽을 맛입니까? 세상의 짠물만 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창조자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씀의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그 말씀은 세상의 짠물에 쩔어 죽어가던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며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너진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힘이 있습니다. 사마라이 여자는 남편의 참된 사랑에 목말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참된 사랑을 받기는커녕 남편에 이용당하고 때론 학대를 당하거나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그로인해 그녀의 영혼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생수의 근원이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목마름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목마름은 남편이 채워줄 수 있는 목마름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깨닫고 다시금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삶에 이전에 없던 활력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그로인해 자신 안에 이전에 없었던 기쁨이 넘쳐났고 자신이 체험이 이 놀라운 체험을 사람들에게도 알리며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알면 알수록 세상을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는 죽을 맛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을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살맛나는 삶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이 짜디짠 사해바다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시급히 하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 생수의 강이신 예수님을 초청하십니까? 그 분이 여러분의 삶에 들오실 때 여러분의 삶을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사해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항상 나아가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리라 (9-12)
여러분 최근에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13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한국의 국력이 세계 9위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는 유일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삼고 배우려고 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 우리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북한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기독교를 모방한 주체사상을 개발하여 3대째 강력한 독재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탄압이 가장 심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생수의 강이 흘러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땅은 마치 진펄과 갯펄과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생명이 살 수 되었습니다. 최근에 북한에서 기아로 300만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북한 땅에도 생수의 강이 흐르면 그 땅은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도 번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아직은 어러지만 우리 때보다는 여러분들 때에 통일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통일한국을 위해서 지금부터 북한 땅에도 생수의 강이 흘러 되살아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위대한 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배에서 흘러나온 물은 생수의 강물입니다. 성령의 강물입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은 모든 것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번성케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환경이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환상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강물이 그렇게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그 성령의 강물이 여러분들을 살리고 여러분들의 삶을 번성케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강물이 여러분들을 통해 이 사회와 온 세계로 흘러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강물이 미치는 곳에서 생명이 되살아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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