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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마태복음25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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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14-09-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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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F 마태복음 제 25 강 
말씀 | 마태복음 20:1-16
요절 | 마태복음 20:15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지난 주 우리는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묻는 물음을 통해 영생에 대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계명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계명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목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은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창기와 세리들이 구원하시고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이를 시기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계명을 지켜온 그들을 예수님이 부당하게 대우하신다고 분을 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떤 자가 진정 먼저 된 자인지를 깨우쳐 주십니다.

제1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1-15)

1절을 봅시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유대인들은 9월 경 포도를 수확합니다. 이때를 지나면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포도를 빨리 따야합니다. 그러다보니 일손이 급히 필요하게 됩니다. 이때 포도원 주인이 할 일은 단 한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데리고 와 최대한 빨리 포도를 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이런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장터에 나가 할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사람들을 품꾼으로 고용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온 사람이나 나중 온 사람이나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천국에 대해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천국은 일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놀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일은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은 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면 땀도 흘리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평안히 놀고 먹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막상 천국에 가 보았더니 과연 자기가 믿은 대로 놀고 먹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까 그 생활도 지겹고 견딜 수 없이 차라리 지옥에 가서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제발 지옥으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네가 있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평생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명퇴, 조퇴, 억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퇴는 명예퇴직입니다. 조퇴는 조기 퇴직, 억퇴는 억지로 퇴직시키는 것입니다. 회사의 오너는 이런 것이 없어 좋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회사가 망하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언제든 들어와 일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인생의 한 순간만 일하는 곳이 아니라 평생을 일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생 할 일을 찾은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로 천국은 차별이 없는 곳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일꾼을 부를 때 나이나  건강이나 재능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이는 품꾼들이 할 일이 없어서, 부르는 이가 없어서 놀고 있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부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포도원에 부른 주인의 마음은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도 우리가 재능이 많고 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 비유 말씀에 나오는 시간별로 부르심 받은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중표 목사님은 이른 아침은 유아 때의 부름 받은 자들로 보았고, 오전 9시는 소년시절, 12시는 인생의 반을 헤매다가 중년기에 주님 앞에 부름 받은 사람으로 보았고, 오후 3시는 인생의 장성기를 넘어서 부름 받은 사람들, 오후 5시는 인생의 황혼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이 세상일에는 늦는 법이 있고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하면 됩니다.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일이라고 생각할 때 소명이 됩니다.

프랑스 문호 룻소는 “인생은 두 번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살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하는 일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일이라 생각할 때 소명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은 인생의 시간대로 보면 오전 9시에 해당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일 할 시간이 많습니다. 이때 부르심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는 일이 곧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발견하시고 평생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시고 많은 열매를 맺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일한 만큼 품삯을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평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8절을 봅시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주인은 나중 온 자로부터 품삯을 주는데 모두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이 때 먼저 온 자들 안에 시기와 불평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들은 나중 온 자들보다 더 받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인과 약속한 품삯을 받았지만 나중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고 더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고 이 기대가 무너지자 불평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별로 한 일도 없이 자신과 똑같은 대우를 받은 그들에 대한 시기심이 생긴 것입니다.

둘째로 주인이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와서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뎠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가는 나중에 온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동일하게 대우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이치나 상식으로 볼 때 납득하기 힘든 일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한다면 누가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면 하루 종일 놀다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일을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이 아니면 죄인을 구원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서 한 데나리온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천국, 구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나중에 온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왔던지 묻지 않으시고 먼저 온 자와 동일하게 영생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때 우리는 참된 생명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모두 나중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천국포도원으로 초청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왔기 때문도 아니요 우리가 하루 종일 수고하고 더위를 견뎠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우리를 대우하시는 것은 불공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악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먼저 온자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예수님이 창기와 세리들을 초청하시며 그들과 천국잔치를 베푸실 때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하며 비난했습니다. 그들이 천국백성으로 초청받은 것을 시기하고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마음이 바로 먼저 된  자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은 먼저 된 자의 마음이 아니라 나중 된 자의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중 된 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열두 사도들보다 나중에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오늘의 영생을 건져 올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 된 나를 영생의 삶으로 초청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억하며 오직 그 은혜만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긴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2장 천국에서 먼저 된 자(16)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마친 후에 이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왔다, 나중에 왔다고 할 때 이것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시간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먼저 왔다고 하는 특권의식 때문에 하나님께 더 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불러 일할 수 있게 해준 주인의 은혜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시간적으로는 먼저 왔는지는 모르지만 주인과의 관계에서는 나중 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언제부터 왔는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대가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일 때 그 때 천국에서도 먼저 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먼저 왔다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나중 온자들을 귀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포도원에서 일하는 동안 나중 된 자들이 일하지 못해 얼마나 마음의 고통을 당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고 더위를 견딘 것에 대한 공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을 시기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먼저는 특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불러 주신 것, 천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 주신 것, 그 자체가 은혜요 감사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특권의식을 갖게 될 때, 공로의식을 갖게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나중 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먼저 된 것이 특권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 마음에 먼저 되어 야 할 것은 시간이 아니라 얼마나  일했느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이 비유는 제자들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때 베드로는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자 청년에 대해 우월감을 가진 것입니다. 이렇게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갖게 되면 나중 된 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천국은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들이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각자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헌신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대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만 나 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천국일꾼으로 초청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부르심을 받았건 하나님 앞에선 먼저 된 자도 나중 된 자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순서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먼저 된 것도 잊고 나 중 된 것도 잊고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일꾼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먼저 되게 함으로 오늘을 영생으로 건져 올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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