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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제24강(영생을 얻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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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웨슬레조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14-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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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제 24 강 
말씀 | 마태복음 19:16-35
요절 | 마태복음 19:21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영생을 얻으려면”입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에는 3사람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부자 청년과 제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부귀와 권세, 쾌락과 교만을 더 원하는 자는 아닌지 돌아보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구원이 어떤 조건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임을 깊이 깨닫고 은혜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한 사람이 나와 물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사람은 청년이요 부자였으며 율법을 매우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가 젊은 나이에 돈과 지위와 명성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성공의 성공의 대명사로 불릴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부자들은 영생이나 구원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되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이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끓어 앉았다고 되어 있습니다.(막10:17) 이는 그가 예수님께 달려 나와야 할 만큼 다급했고 무릎을 끓어야할 만큼 간절했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진정 영생 얻는 길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면 고뇌에 찬 이 청년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17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 예수님은 먼저 그의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십니다. 왜냐하면 무슨 선한 일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대답하십니다. 17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
여러분 과연 이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사람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이 청년은 그래도 이 계명들을 일반인들보다는 더 잘 지킨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생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시한번 고뇌에 찬 질문을 던집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이 청년을 통해 우리는 율법아래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그것은 모든 계명을 지키고도 항상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불의와 정죄감에 고뇌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청년을 돕고자 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이렇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고자 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맛보기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 말씀에 순종한다고 해서 그가 온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명이 요구하는 완전한 수준에 이르려면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늘에 보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는 영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오기 전보다 더 근심하며 영생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영생을 얻고자 하면서 영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자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이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이 청년의 딜레마이고 또한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영생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영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원히 사는 것, 죽음이후의 삶 우리는 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기도 가운데 영생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여기서 안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앎을 통해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정의하신 영생은 "시간"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시간적으로 모두 영원히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고 지옥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영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그 생명에 잇대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생이 있는 자의 삶에는 선한 열매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생의 사전적인 의미는 죽음 이후에 영원히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시간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교회를 하루만 다녔어도 하나님을 알면 영생이 있는 것이고 교회를 10년, 20년을 다녔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청년처럼 계명을 다 지키고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고자 나온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떠난 후에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외냐하면 당시 통념상 모든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었고 제자들도 주님을 따르면 언젠가는 부자가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놀란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구원에 관하여 심각한 회의에 빠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로 심각하게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이 말씀을 듣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는 선한 일을 해서 영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구원을 사람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로 구원에 이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죄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구원을 위해 사람이 할 일이 없습니다.부자라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자가 아니라 강도, 세리, 창기와 같은 죄인들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뿐입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과거는 역사이며 미래는 미스테리이지만 현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의 영생을 누리며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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