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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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말씀: 마태복음 17:1-27
요절: 마태복음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은 변형되신 사건을 통해 제자들의 심정에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모습을 심으시고 십자가의 도리를 마음으로 영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시간 변화산상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나봅시다.
Ⅰ. 변형되신 예수님(1-3)
1절을 보십시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엿새 후'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엿새 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은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은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 올라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산에 올라 오시기 전 예수님의 모습은 죄인들을 섬기느라 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비췬 예수님의 모습은 머리둘 곳이 없이
가난하신 예수님, 샌달을 신고 온 갈릴리를 심방하시는 예수님, 자주 굶으시는 예수님,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시느라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으시고
그 마음은 상할대로 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의 모든 죄악과 슬픔과 질고와 운명을 담당하시느라 그 영광스러운 모습이 변하여 마치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래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요한1:1-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존귀로 옷 입으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되신 분이십니다. 그의 얼굴은 해가 빛나는 것 같이 영광스럽고 힘있게 빛이 났습니다. 그의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변화산상에서는 졸다가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밧모 섬에서 환상 중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1:13-16)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신 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이는 그들이 영적 눈을 뜨고 또 그들 마음 속에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새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자들은 세상 욕심과 인간적인 야심으로 인해 영적 눈이 감기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의 마음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며 절규하시는 에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다분히 감상적입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생활을 하지만 심령에 별 기쁨이 없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다분히 운명적입니다.
이는 그 마음에 영광의 예수님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 빛나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질 때
우리의 신앙 생활은 기쁨과 감사와 승리와 희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우리의 심령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질 때 우리는 기쁨으로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의 예수님을
만나봅시다.
Ⅱ.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4-13)
변형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황홀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 분들과 영광 중에서 영원토록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헛소리를 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는 나를 위하여"라고 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9:33절에서는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영적 상태를 잘 말해 줍니다.
베드로는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산 밑으로 내려가서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 밑에는 문제 많은 양들로 가득 차 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꼴보기 싫은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만사를 다 잊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초막 집을 짓고 사랑하는 에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아기자기하게 영원토록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그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난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영광은 사모하지만 고난은 싫어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변형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로부터 계시가 임했으나 인간적인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5b)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했습니다(출16:10, 19:9, 24:15,16, 33:9, 40:34,35).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줍니다. 병사에게 있어서 장군의 말은 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히 십자가에 관한 말씀은 듣기 싫지만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생명이 있고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은헤와 축복의 말씀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고 잘 영접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세미하게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인이나 사명의 십자가, 회개, 희생, 헌신하라는 말씀은 듣지 않고 튕겨 버립니다. 신앙생활도 사명의 십자가 없이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죽은 신앙생활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몸에 익힐 때만이 부활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를 만난 후 이 진리를 깨닫고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3)
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심히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위로하셨습니다. 그들이 눈을 들고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수님의 변형되신 사건을 통하여 영적 눈이 조금 띄어졌습니다.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사건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였습니다(벧후 1:16,17).
오늘은 예수님은 변형되신 사건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참 모습은 하나님이셨음을 배워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배워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십자가는 잠시 힘들고 어렵지만 십자가 뒤에 있는 영광의 부활을 소망하면 어려움을 이길수 있습니다.
주님, 매일 저희에게 십자가를 바라보고 숨겨진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나게 도우소서.
말씀: 마태복음 17:1-27
요절: 마태복음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은 변형되신 사건을 통해 제자들의 심정에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모습을 심으시고 십자가의 도리를 마음으로 영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시간 변화산상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나봅시다.
Ⅰ. 변형되신 예수님(1-3)
1절을 보십시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엿새 후'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엿새 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은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은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 올라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산에 올라 오시기 전 예수님의 모습은 죄인들을 섬기느라 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비췬 예수님의 모습은 머리둘 곳이 없이
가난하신 예수님, 샌달을 신고 온 갈릴리를 심방하시는 예수님, 자주 굶으시는 예수님,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시느라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으시고
그 마음은 상할대로 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의 모든 죄악과 슬픔과 질고와 운명을 담당하시느라 그 영광스러운 모습이 변하여 마치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래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요한1:1-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존귀로 옷 입으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되신 분이십니다. 그의 얼굴은 해가 빛나는 것 같이 영광스럽고 힘있게 빛이 났습니다. 그의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변화산상에서는 졸다가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밧모 섬에서 환상 중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1:13-16)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신 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이는 그들이 영적 눈을 뜨고 또 그들 마음 속에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새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자들은 세상 욕심과 인간적인 야심으로 인해 영적 눈이 감기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의 마음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며 절규하시는 에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다분히 감상적입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생활을 하지만 심령에 별 기쁨이 없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다분히 운명적입니다.
이는 그 마음에 영광의 예수님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 빛나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질 때
우리의 신앙 생활은 기쁨과 감사와 승리와 희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우리의 심령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질 때 우리는 기쁨으로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의 예수님을
만나봅시다.
Ⅱ.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4-13)
변형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황홀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 분들과 영광 중에서 영원토록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헛소리를 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는 나를 위하여"라고 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9:33절에서는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영적 상태를 잘 말해 줍니다.
베드로는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산 밑으로 내려가서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 밑에는 문제 많은 양들로 가득 차 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꼴보기 싫은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만사를 다 잊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초막 집을 짓고 사랑하는 에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아기자기하게 영원토록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그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난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영광은 사모하지만 고난은 싫어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변형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로부터 계시가 임했으나 인간적인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5b)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했습니다(출16:10, 19:9, 24:15,16, 33:9, 40:34,35).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줍니다. 병사에게 있어서 장군의 말은 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히 십자가에 관한 말씀은 듣기 싫지만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생명이 있고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은헤와 축복의 말씀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고 잘 영접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세미하게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인이나 사명의 십자가, 회개, 희생, 헌신하라는 말씀은 듣지 않고 튕겨 버립니다. 신앙생활도 사명의 십자가 없이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죽은 신앙생활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몸에 익힐 때만이 부활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를 만난 후 이 진리를 깨닫고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3)
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심히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위로하셨습니다. 그들이 눈을 들고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수님의 변형되신 사건을 통하여 영적 눈이 조금 띄어졌습니다.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사건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였습니다(벧후 1:16,17).
오늘은 예수님은 변형되신 사건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참 모습은 하나님이셨음을 배워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배워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십자가는 잠시 힘들고 어렵지만 십자가 뒤에 있는 영광의 부활을 소망하면 어려움을 이길수 있습니다.
주님, 매일 저희에게 십자가를 바라보고 숨겨진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나게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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